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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징검다리

아일랜드, 도네갈 슬리브 리그 절벽에 앉아

by 숲속의조르바


강아지 오름이와의 산책길 중 탄천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30대 초반 즈음 이런저런 고민의 늪에 빠져 갈등하던 나를 보며 선배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새로운 징검다리가 놓인 거야."


"뛰느냐 마느냐 선택의 순간이지. 앞에 놓인 돌이 흔들릴지, 멀리 있어 보여 힘껏 뛰어도, 혹은 아주 작아서 제대로 밟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할 수도 있어. 뛰어서 밟아보기 전까진 아무도 모르지. 그러면 그냥 서 있으면 돼. 그런데 문제는 밟고 있는 돌이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흔들린다는 거잖아?”


“징검다리를 건널 때는 앞에 보이는 돌만 보면 돼. 그다음 돌도 그렇고. 바로 앞에 것에만 집중하고 순서대로 가면 돼. 아무리 잘 뛰는 사람도 두 개를 한꺼번에 뛰어넘지는 못해. 그럴 필요도 없지. 머물기 싫은 돌은 재빠르게 스치듯 밟고 지나면 되니까."


"내가 보기에 네가 쉽게 뛰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 돌, 그다음 돌들이 제대로 놓였는지, 경로가 완벽한지 확인하려 하고 그것을 확신할 수 없으니 주저하는 것 같애. 확실한 경로가 없다는 것은 너도 잘 알잖아? 그리고 망설이고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밟고 서 있는 돌에 대한 미련과 미안함!!


내 속을 들여다보듯 선배는 말을 이었다.


“이미 밟고 지나온 돌은 곧 잊히더라. 헤어졌던 여자 친구들 생각해 봐. 그땐 힘들고 죽을 것 같았지만 지나고 나니 기억도 가물하잖아. 그렇게 징검다리를 건너며 온 것 아닐까. 미안함이나 미련을 떨치지 못했으면 아직도 머물러 있겠지. 새로운 징검다리에 선 후 진작 뛸 걸 한 적도 있잖아? 물론 아닌 적도 있었을 테고”


“살다 보니 불쑥불쑥 돌멩이가 하나씩 솟더라. 고맙게도 새로운 징검다리가 하나씩 놓이는 거지. 그렇게 건너며 살면 되지 않을까?”


이제 와서야 선배가 말했던 것이 순조로운 순서, 즉 순리(順理)라는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사랑도, 일이나 여하의 변화들 그리고 나이 들고 병들고 죽는 것 또한 그렇게 건너게 되는 순조로운 순서, 자연스러운 순서의 징검다리인 것을 선배는 나에게 그리 쉽게 말해주었던 것 같다.


살다 보니 예측불가의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변곡점들이 생긴다. 여전히 예상치 못한 어떤 좋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 현실을 부정하기도 하며 [순리]라고 순순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의식적으로라도, 혹은 기계적으로라도 ‘그래 이게 순리인가 보다. 이제 그 순서인가 보다’ 라며 주문처럼 말해보도록 해야겠다.


무엇이든 그렇게 하나하나 건너다보면 이내 저 편에 다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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