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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살아있는 뿔

스페인, 바르셀로나 생각하는 소 동상을 보며

by 숲속의조르바


Cogito, ergo sum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학창 시절 데카르트라는 철학자가 저런 말을 했다고 배웠다. ‘생각’을 하며 살아야 비로소 이성적인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쯤으로 외웠던 듯하다. 누가 한 말 정도로만 외운 것이 고작이고 시험 대비는 그걸로 충분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저 문장이 내게 다르게 다가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저 명제에 응당하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지천에 널려 깨닫지도 못했던 소나무나 들풀 같은 존재들과 사랑, 미움, 후회처럼 추상적이며 감정적인 것들은 내가 어떠한 생각이나 인식이 있을 때에서야 비로소 실제로 나에게 존재하는, 즉 실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어쭙잖은 나만의 깨달음 같은 것이 온 것이다.


까맣게 잊고 있던 헤어진 애인을 생각하면 그 순간은 ‘그녀’가 나에게 존재한다. 온전히 잊히면 그 모든 존재는 소멸하고 만다. 사소한 것이든 중요한 것이든 [생각]해야지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럭저럭 별일 없이 살아가는 날 중에 시답잖게 들던 생각들을 끄적여본다. 그리고 그 짧은 생각의 순간들에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모아보려 한다.



[생각]이 어떤 한자로 이루어졌나 찾아보니 순우리말이다.

한자를 잘 모르지만 억지로라도 한자로 바꿔 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 生角. 살아 있는 뿔 ]



호랑이나 사자, 표범 같은 맹수들은 뿔이 없다. 강한 이빨과 날카로운 발톱을 가졌기에 굳이 뿔이 필요 없는 이유일게다. 반면 소나 양, 사슴 등 비교적 온순한 성격을 가진 초식 동물들이 뿔을 가지고 있다.


수컷들이 서열을 결정할 때나, 누군가 먼저 자기 영역을 침범했을 때를 제외하곤 이들이 뿔을 가지고 선제적으로 타 존재를 공격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지극히 방어적인 도구로 보인다. 뿔은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들이 고안해 낸 외형적으로나마 도움이 될 만한 도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발톱과 이빨은 숨겨져 있지만 뿔은 항상 드러나있는 이유가 아닐까도 싶다.


태어나면 몇 시간만 지나도 걷거나 뛰는 동물들도 있고, 자신의 털과 가죽만으로도 그대로의 제 생을 살아갈 수 있는 대부분의 여타 동물들과 다르게 안타깝게도 인간은 가장 나약한 존재이다. 두어해는 걷거나 뛰지도 못할뿐더러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없고 털도, 뿔도 없다. 이런 나약한 인간을 지구상의 먹이사슬의 정점에 서게 해 준 것이 지능, 즉 생각이라고들 한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간다고 질타를 받기도 했고 스스로를 질책하기도 했다. 때론 생각이 너무 많다며 충고를 듣기도 했다. 적정한 중간점이 어디쯤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제껏 나는 살아 있는 뿔 없이 살아왔을 수도 있다. 무딘 발톱과 하찮은 이빨로 누군가를 물어뜯고 상처를 주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애써 합리화를 해보자면, 나름 스스로는 불안하고 치열하다고 느꼈던 경쟁의 세계 속에서 뿔보단 발톱과 이빨이 더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고 보고 배운 이유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비루한 청춘들이 그래야만 했을 수도 있다. 나름의 합리화인 동시에 스스로 보내는 위로이다.


이제는 누구를 할퀼 발톱보다는 스스로를 보호할 뿔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것이 비록 크고 멋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살.아.있.는. 그런 뿔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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