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몬산토 시골마을 어귀에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국경 언저리를 따라 관광객이 잘 가지 않는 외진 시골을 찾아 여행을 했었다.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게 포르투갈의 시골에서도 인적은 꽤나 드물었다.
아주 드물게 집 앞 계단에서 처량하게 쪼그려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노인들을 지나치다가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다.
대학교와 군대 그리고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집을 떠나 독립한 후부터는 명절이나 가족 모임 등이 있을 때에나 시골 고향집에 들렀다. 주말이나 연휴, 휴가는 자취방에서 뒹굴거나 친구들과의 술자리로 채워졌다.
그렇게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보내고 일 년에 겨우 몇 번 간헐적으로 고향집에 가게 될 때면 할머니는 언제나 풍경처럼 처마 아래 의자에 앉아 계셨다.
날씨도 추운데 왜 나와 계시냐고 물으면 "집안이 답답해서"라는 늘 같은 대답을 하셨지만, 그 이유가 아님을 가족 모두는 알고 있다.
아마 할머니는 매번의 주말 내내를, 연휴나 명절의 며칠 전부터를 진득하게 앉아 기다리셨을 것이다. 모퉁이를 돌아들어 오는 모든 차 소리에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셨을 것이다. 실망이 반복되었어도 이내 기대를 버리진 않으셨을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집에 들를 때엔 모퉁이를 돌면 제일 먼저 처마 밑에 있는 빈 의자로 눈이 갔고 꽤 쓸쓸하고 먹먹했었다. 그래서 한 동안은 멀리서부터 집의 전경이 먼저 보이는 다른 길로 돌아서 다니기도 했다.
할머니가 떠나신 지 십 년 정도가 흐를 무렵 어찌하다가 제주에 살게 되었는데 뒷마당에 아주 근사하고 푸근한 오래된 팽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할머니의 바글바글한 파마머리가 떠올랐다. 해 질 녘에 팽나무 아래 있으면 할머니랑 같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해서 종종 그 아래에서 멍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빌려 쓰던 땅이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며 땅주인은 나무는 따로 팔았는지 옮겨 심으려는지 서둘러 팽나무를 다른 곳으로 캐갔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는 마음이 일었다.
이웃의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도 그들의 평생 옆에 있던 동무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아련한 서운함과 미안함, 모를 이를 향한 원망을 며칠을 두고 보탰다.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멘도롱 배지근한 바람이 담겼다.
바글바글 머리를 지진 할머니가 노을을 보기 위해 웅크려 앉으셨다.
나는 빈자리를, 비어진 휑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무던히 애쓰며 살았는지 모른다. 그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더 버둥거렸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잃어버린 존재를 대체하기 위해, 그 상실을 상쇄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빈자리를 무언가로 채운다면 빈자리가 채워지지 것이 아니라 빈자리는 그대로 사라지는 버리는 것, 즉 메워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 나를 대신하는 무언가가 채워지면 나는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서운함이 들었다.
빈자리는 그대로 두어야, 비로소 그것이 허전함과 빈자리를 기억하는 방법, 잃지않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팽나무가 있던 자리 아래 쓸쓸한 의자 하나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