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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롱 Jan 09. 2024

다차원 주름

마음에 새기다

토스트에 썰어진 피망과 옥수수, 뿌려먹는 치즈를 뿌리고 케첩으로 덮는다. 오전 7시에 일어나 준비된 조식과 아메리카노를 마시니, 사람들이 북적이는 서울역 입구를 지나 출근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커피 한 잔의 여유라니, 마시지 않으면 하루 종일 기운이 없는 그대에겐 여유 있는 한 잔이었는가.

광택 나는 초록색 원두 포장지에서, 급하게 부어 만든 핸드메이드 아메리카노를 싱겁게 홀짝인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북적이는 인파 중 한 명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 당시엔 알지 못했다.

그저 해방감을 느끼며, 마로니에 공원을 찾아 나설 뿐이었다.





다차원 주름

걷다 보니, 보인 것은 아르코미술관이다. 공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마침 당일부터 전시를 시작했던 것이 내 발걸음을 옮겼다. 서로 연결성이 다른 작가들은 연결하여, 미술관의 공간에서 확장된 인적 네트워크를 보이는 것이 이번 50주년전이 지니는 의미이다.






작품들은 '주름'이라는 것을 통해 삶의 흔적을 보이고, 그런 흔적들로부터 만들어진 현재를 함축한다.

우리의 인생에서 주름은 얼마나 새겨졌을까. 앞으로 얼마나 더 생겨날 것인가.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먹을수록 중요하면서도 현명한 선택의 기로에 자주 놓이는 듯하다. 그 선택 한 번으로 얼마나 많은 미세한 주름이 생겨날까.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그것과 연결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것은 마치 다차원 속에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중화권 영화였는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다중 유니버스를 다루는 한 편의 작품을 보았다. 선택 한 번에 수많은 자신의 삶이 다중 유니버스로 뻗쳐나가는 것이다. 주름도 저마다 수많은 미세한 주름들과 이어져있지 않을까 싶다.



모든 것이 오브제, 내가 작품을 보며 느끼는 감정들도 하나의 주름이 되어 새겨진다. 파괴적이지만 정교하고, 난해하지만 다채롭고, 디스토피아적이지만 유토피아적인 여러 작품들을 보며, 유의미한 파장을 느끼고 경험한다.






요술 달팽이가 저마다의 집을 가진 것처럼.



우리가 지나온 길에는 얼마나 많은 주름이 남아있을까. 굵직한 주름이 되기까지, 지나온 여정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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