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이면 2010년 5월 9일이다. 달력을 보니 일요일이다. 그때는 일기를 쓰거나 하루를 기록하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ROTC에 입단하고 2월에 기초군사훈련을 갔다와서 두 달을 빡빡머리에 학군단복을 입고 수업을 들었을 때다. 익숙해진 듯 익숙해지지 않은 애매한 상태라 여전히 기숙사 내부가 아니면 완전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주변을 살폈다. 당장의 ROTC 생활에 적응이 우선이었기에 다른 것에는 눈 돌릴 틈이 없었을 시기였다. 10년 전 오늘은 아마 중간고사는 끝나고 기말고사를 보기 전이라 기숙사에서 게임하고 있었을 것 같은데... 우연히 10년 전의 나를 만난다면 어떤 대화를 했을지 생각해 보았다.
※10년 전 나 : B (Before의 약자)
현재의 나 : P(Present의 약자)
툭툭
B : 누구?세요???
P : 어... 믿을지는 모르겠는데 너의 10년 후의 모습이야
B : ???
P : 안 믿기겠지만 사실은 사실이거든. 못 믿겠으면 모태솔로에 재수 전과 생각만 하고 실천에 안 옮겼고 FC바르셀로나를 좋아하게 된게 Football Manager라는 게임 때문이라는 광범위한 사실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을까?
B : 헐... 그렇긴 그렇네.....요. 근데 왜요??
P : 진짜 내가 살아왔지만 지금 너가 너무 답답해서 잔소리 좀 할라고. 커피나 한잔 하면서 이야기 좀 하자. 안 따라오면 한달 후에 있는 월드컵 결과 다 말해버린다.
B : 알았어요. 근데 나 커피 안 먹는데?
P : ㅋㅋㅋㅋㅋ 나도 그랬는데 3년 후에 너 거의 커피 중독자 처럼 된다. ㅋㅋㅋ 가자
P : 아직도 선배들 눈치 보느라 만만치 않지?
B : 아 그러니까요. 진짜 기숙사 문을 나가기가 무서워요. 어디서 선배들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계속 주변 봐야되고 군사학에서 만나면 넥타이 제대로 안 묶냐고 누구 한명 연락 제대로 안된다고 집합시켜서 뭐라하고... 진짜 동기들 없었으면 못 버텼을거에요... 근데 궁금한게 있는데 10년 후 나라고 했자나요 그럼 지금 어떻게 살아요? 나 취업은 제대로 했어요? 여자친구는 있어요?
P : 야 이거도 안 믿을거 같은데... 너 10년 후에 대기업에 들어가고 여자친구가 아니라 아내가 있어. 지금 너가 생각하는 삶의 모습은 아니지만 꽤 행복해
B : 와 다행이네요 그래도 취업도 하고 결혼도 했네요. 난 못할 줄 알았어요 둘다 ㅋㅋㅋㅋ
P : 근데 너가 생각하는거 만큼 무난하진 않아. 너 생각보다는 다사다난했어. 전역하고 바로 취업이 될 줄 알았는데 1년 반을 준비하다가 간신히 일본계 중견기업에 들어가거든? 근데 거기서 하루 14시간씩 일하고 지금 학군단 선배 같은 사람들이 쫙 깔려있었어. 거기서 버티면서 다시 취업준비 해서 대기업 들어간거야. 결혼도 중간에 여자친구 한명 만났다가 헤어지고 한참 후에 아내 만나서 결혼했고. 인생이 막 스무스하게 흘러가지는 않더라 ㅋㅋㅋ
B : 아 근데 하고 싶은 말 있다면서요. 뭔데요?
P : 일단은 제일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지금 너가 공부하는 전자공학은 전자공학보다는 물리쪽에 가까워. 다른 학교 커리큘럼 한번 봐봐. 우리 학과랑은 좀 달라. 왜 이 말을 하고 싶었냐면 그냥 교수님이 시키는거, 숙제 내주는거만 대충하고 시험만 대충 보는게 끝이 아니기 때문이야. 사실 시험 본 내용도 일주일 후면 다 까먹자나? 지금 나도 전자공학 잘 생각이 안나거든. 2학년 때 전자회로 실습 했었자나? 그때 마지막에 브레드보드에 7세그먼트랑 IC랑 막 조합해서 전자시계 만들었던거 기억나지? 그게 어떤 원리로 만들었는지 알아? 아마 모를거야. 그때 그냥 회로도보고 부품 연결하고 켜보고 안되면 다시 회로도만 보고 이랬으니까. 그게 왜 그렇게 동작하는지, 동작을 안하면 왜 안하는지는 몰랐자나. 그치?
B : 와 진짜 찔리네요. 근데 다들 나처럼 했는데요? 그걸 다 공부하고 알아서 하는 사람 없어요. 4학년 선배도 나랑 똑같던데.
P : 근데 그게...그렇게 공부하고 알고 더 발전시키는 사람들이 너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 많아. 그런거 조합해서 회로도 자기가 그리고 제품 만들어서 테스트 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되. 딱 너 나이인데도.
P :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벗어나서 좀 더 깊게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 내가 취업 준비를 할 때 제일 크게 느낀게 내가 너무 실력이 없다는거야. 다른 사람들이랑 비교해서 그렇지만, 남들은 무슨 대외활동이다 공모전이다 대회다 하면서 이력서에 쓸게 많아. 오히려 뭘 쓸지 고르고 있는데 나는 정말 쓸게 없어서 자격증에 운전면허 하나 들어가있었어. 그게 진짜 너무 쪽팔렸어. 그래서 대학원도 생각했는데 그것도 전공 실력이 없으면 안되더라?
B : 아 그래요? 아 이거 심각하네... 그러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되요? 알다시피 고딩때는 문제집이나 학원 그런 것들이 있으니까 거기서 공부하면 되는데 대학교 공부는 교과서 하나랑 교수님 수업밖에 없자나요.
P : 너 중학교 때 생물 엄청 잘한거 기억나? 아직도 소화가 되는 원리 막 그렸던거 그 그림은 기억이 나. 그때 너가 했던게 그 내용을 이해하고 이해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가면서 너가 설명할 수 있었자나. 그 방법이야. 너 이미 옛날에 했었던 방법인거야. 그때처럼 그림은 안 그려도 되지만 남한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보고 읽고 그걸 다시 안보고 내뱉어보는거야.
B : 아 맞네. 그때 그 그림 기억나요. 아 그렇게 하면 됐었네!!
B : 근데 행복하다고 했었자나요? 진짜 행복해요? 난 지금까지 행복하다는 느낌도 불행하다는 느낌도 없었거든요. 그냥 매일이 그래요. 평탄하고 무난하고 특별한 일 없는거.
P : 응 행복해 근데 모든게 행복한 건 아니야. 결혼이나 가족관계는 되게 행복한데 일은 좀 불만족스러운 면도 있어. 너 나 못만났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전역해서 뭐하고 싶어?
B : 어?어....글쎄요.....H사 연구원?
P : ㅋㅋㅋㅋ 그럴줄 알았다 ㅋㅋㅋ 내가 처음에 아무것도 생각안하고 첫 취업 준비할 때 그거 되고 싶었어 ㅋㅋ 그럼 연구원 되면 행복할까?
B : 글....쎄요?? 안 행복해요?
P : 아니 그건 모르지. 근데 내 생각에는 별로 안 행복할 거 같다. 그게 진짜로 너가 원하는 일이야? 연구원이 되면 끝이 아니고 시작이자나. 회사에 들어가서 신입사원이 되고 열심히 일해서 승진하면서 지내다가 나중에 은퇴하면 인생이 끝나? 그건 아니거든. 게다가 10년 후에는 정년 퇴직이 당연한게 아니더라고. 그래서 나는 직장이라는 타이틀을 때고 나 자신이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
B : 오 쫌 멋있네요. 근데 왜 직장이라는 타이틀을 때요? 그럼 사업해요? 난 무서운데 그거... 다른 회사 가면 되자나요.
P : 아니 회사를 다니면서 나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은거지. 그러면서 일을 즐겁게 하고 싶은거야. 너가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학교 다닌 기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일 하면서 살아야되는데 그 시간이 힘들기만 하고 재미는 없고 의미 없다고 느끼면 인생이 어떨까? 별로겠지?
B : 네...
P : 그래서 나는 너가 지금보다 더 다양한 활동을 해봤으면 좋겠어.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음 학기 정도부터는 선배들 간섭도 약해지고 너도 익숙해지거든. 그때 학교에서 하는 공모전이든 과에서 하는 랩뷰 동아리든 뭐 모의주식투자대회든. 아니면 주말에 혼자 당일로 여행가서 맛있는거 먹고 즐기고 와도 괜찮고. 과 연구실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거 같아. 지금 너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 내가 너 때를 생각하면 제일 아쉬운 점이야.
P : 지금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은데 지금 딱 그 시기의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 할께. 사실 이만큼도 너한테는 쉽지 않을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좀 바뀌었으면 좋을 거 같아. 이제 슬슬 난 갈 시간이 된 거 같은데 물어보고 싶은건 없어?
B : 음... 지금까지 나한테 한 조언? 이런 것들이 많은거 보면 10년이 아쉬웠던거 같은데요... 쭉 안 좋기만 했어요?
P : 아니. 내가 2016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인생의 전환점을 만났거든? 그때 아내를 만난건 아니고 내가 그때부터 책을 엄청 읽기 시작했어. 책 읽고 좋은 내용 적용하려고 노력하면서 내 삶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많이 바뀌었어. 공부하고 노력하면서 내가 바뀌는게 보이니까 그때부터 행복하다는 말도 나오더라. 내 지식 뿐만 아니라 나라는 사람까지도. 그래서 그 전에는 열심히면서 재미있게 못 살았던게 아쉬운거야. 그래서 지금 너한테도 다양한 활동도 하고 깊게도 파보라고 한거지. 재미있게 좀 살아 ㅋㅋㅋ 운동 하나 잡아서 미친듯이 한번 해보고 공부도 빡쎄게 해보고 동기끼리만 놀지 말고 서울도 가고 딴 사람들도 좀 만나고 ㅋㅋㅋ 이제 난 간다. 열심히 재미있게 좀 살아~
오그라든다. 근데 재미있고 후련하다. 어떤 사람은 10년 전의 자신을 만나면 위로를 해줄 것이고, 다른 사람은 부럽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성격에 맞지 않는 잔소리 폭탄을 퍼부었다. 나란 사람은 강한 충격이나 환경설정이 되지 않으면 잘 안 움직이려 한 다는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회하지는 않지만 아쉬운 점들은 많기 때문에 더더욱 잔소리를 했다.
애정이 있으니까 잔소리도 하는거야!!
10년 전 나를 만난 지금의 나는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렇다면 10년 후의 나는 지금의 나를 만나서 뭐라고 할까? 지금의 나를 부러워할까? 아니면 잔소리 잔소리 하면서 넌 알면서도 그따구로 살았냐?라고 몰아붙일까? 적어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라도 살았고 결과는 쬐끔 나왔네 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러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노력하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