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실에서 태어난 따봉이와 밤톨이는 1주일 후에 5학년 교실로 보냈다. 처음 약속은 1~2주 관찰하고 담임의 텃밭 닭장으로 보내는 것이었지만 그게 어려울 거라는 것을 이미 직감했다.
병아리들은 5학년들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무럭무럭 자랐고 전교생들의 마스코트로 온갖 사랑을 받았다. 삑삑거리며 수업도 함께 하고, 쉬는 시간에는 풀숲을 돌아다니며 자연 속을 거닐었다. 아이들은 등교하자마자 병아리들의 보금자리를 들여다보고 모이를 주고 닭똥을 치우면서도 신나 했다. 특히 무뚝뚝한 줄 알았던 민재가 관심을 보이더니 마치 아빠라도 된 듯 병아리들을 거느리고 정성을 쏟았다. 그 사이 커져버린 몸집에 맞게 커다란 박스를 구해 앞이 환한 투명 비닐 집도 새로 지어주었다.
5학년들은 병아리를 주제로 프로젝트 학습을 시작했다. 커가는 모습을 관찰일기를 쓰고,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고 수업 공개의 날엔 그 과정과 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했다. 아이들이 뮤직비디오로 만든 "꼬끼오"라는 노래를 참관한 사람들 모두 신나게 손뼉을 치며 따라 불렀다. 수업의 마지막에 아이들이 외쳤다.
"교장선생님, 따봉이와 밤톨이, 학교에서 키우게 해 주세요."
난감했다.
녀석들은 이미 닭 특유의 진한 냄새를 풍기며 쉴 새 없이 삑삑 재잘대고 주말에는 집을 탈출해서 복도를 종횡무진하며 똥을 싸 놓기도 했었다. 무조건 반대할 수만도 없었고 예견되는 문제들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아이들에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고 키우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해보라고 했다.
그로부터 열흘 후, 5학년들이 학교장 면담을 요청하고 잔뜩 긴장한 얼굴로 차트를 들고 교장실로 찾아왔다.
"따봉이와 밤톨이를 학교에서 키우게 해 주세요."
라며 애교 섞인 멘트로 시작하더니 설문조사를 통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학교에서 키울 때의 장점과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한 계획, 예견되는 문제점과 해결방법을 발표했는데 제법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었다.
1주일 동안 전체 학교 구성원을 대상으로 현관에서 진행했던 설문조사 결과도 언급해가면서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발표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장점으로 병아리들을 키우면서 감기도 나았다는 다소 황당하지만 귀여운 이유에는 크게 웃고 말았다. 냄새가 나는 것은 학교 텃밭에서 키우면 해결할 수 있고 방학에는 당번을 정해서 돌보겠다고 했다.
발표 후 아이들 주장의 허점을 들어가며 해결방법을 질문했다. 좀 더 크면 이른 새벽에 꼬끼오 울어서 민원이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동네에는 어르신들이 많아서 오히려 깨워드리는 알람 역할을 할 것이라 했다. 이미 닭을 키우는 집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왔다며 치밀함을 보였다. 닭 모이 비용을 물으니 5학년 선생님이 많이 갖고 계셔서 걱정 없지만 모자라면 용돈을 모아서 사겠단다.
나의 기습적인 질문에도 또박또박 근거를 들어 설명하고 논리적인 발표와 병아리들을 사랑하는 진심 어린 모습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얼토당토 하지 않은 말로 우겼어도 병아리들을 딴 데로 보낼 수는 없었을 거다. 이미 따봉이와 밤톨이는 우리 모두의 가족이 되어 버렸으니까.
"얘들아, 생명을 키우는 일은 책임이 따르고 때론 큰 슬픔이 찾아올 수도 있단다. 감당할 수 있겠니?"
물었다. 아이들은 학교가 떠나갈 듯 대답하고 자신들이 이룬 성과에 기뻐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운동장이 시끌시끌하다. 내려다보니 따밤랜드 건축을 위해서 동네 철물점에 간 아이들과 선생님이 목재와 철망을 사들고 낑낑대며 오고 있었다. 내일부터 뚝딱뚝딱 닭장을 만들 꿈에 부풀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