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자신감은 만들어 가는 것이고 노력하면 못 할 것이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세상은 할 수 없는 일 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고,
어떤 어려움도 스스로 노력하면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존감이 높았고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학교 밖의 세상은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는 많이 달랐다.
자신감은 함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며,
자존감은 구겨서 주머니 속에 넣어둘 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깎고 잘라 작아져야 했다.
그렇게 스스로 작아져 가는 과정에서
세상은 내게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곳이 되어 버렸다.
나는 할 수 없는 게 더 많은 사람이었고,
현실을 버티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꽤 많이 힘들어했다.
그 악순환의 끝에서 내게 남은 것은 자존심뿐이었다.
자존심은 건드려선 안 되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한때 나는 조금만 자존심을 건드려도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일종의 자격지심 같은 것이었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신해철_민물장어의 꿈 중>
유 퀴즈 '박진영 씨'편을 보았다.
과연 박진영 씨는 자기 관리의 최고봉 다웠다.
자신은 60살 때까지 노래, 춤 실력이 늘 것이고, 지금이 최고라고 한다.
그렇게 몸 관리를 위해 일주일 중 반 이상을 20시간 금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먹는 즐거움이 사는 이유의 반인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런 박진영 씨가 평소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배고파, 죽겠어"라고 한다.
금식에 배고파 죽겠고, 매일 아침 운동에 힘들어 죽겠다는 것인데,
일 년에 한 번 무대에 서기 위해 그렇게 자기 관리를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저 사람들이 저렇게 성공하지. 내가 하는 노력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담을 듣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도 나 역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나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고, 회식도 하고,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출근을 하고,
그러면서 건강도 챙기려 운동도 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그렇게 한다고 잘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해야만 하는 것 들'을
매일 하며 살아가고 있다.
못 해내는 것을 아쉬워하지 말고, 해내고 있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비교하며 불행해지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해서 좀 더 행복해지기로 했다.
자신을 아끼니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시행착오가 참 많았다.
오랜 기간 준비했던 무언가가 무산되기도 했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 투성이었다.
그나마 조금 이룬 성취라는 것도, 자신의 무지는 숨긴 채 허세만 드러내기 일쑤였다.
작은 성취와 많은 실패, 조그만 기쁨과 많은 부끄러움,
분명 내가 하려고 하는 어떤 것들은 고통이 좀 더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는 것이었다.
실패의 장점을 꼽자면 좋지 않은 나의 행동을 삶에서 빼준다는 것이다.
성취의 장점을 꼽자면 계속 그렇게 나아갈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를 계속해서 해나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반복할수록 삶의 방향이 명료해지고 군더더기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좀 더 명확히 알게 된다.
자신을 좀 더 알아갈수록 삶은 좀 더 행복해진다.
과거의 나보다 조금 더 행복해졌다면,
지금의 나는 좀 더 '성공'한 사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해낼 수 있는 만큼만
무리하지 말고, 그렇다고 늘어지지도 말고,
실패해도 괜찮아 과정이니까.
그렇게 하려고 했던 하나를 해내는 것.
그렇게 꾸준히 하나씩 해내는 모습,
그 모습이 오롯이 자신의 일상이 되는 것.
지금의 나는 '성공'이라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 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 (故) 신해철_민물장어의 꿈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