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헤어진 후에 알게 되었다.
그리움이란 것이 이토록 지독한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렇게 계속 후회 속에 살아가는 것은 너무 힘이 들었다.
하루빨리 다시 고백을 해야 했다. 그게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었다.
'어떻게 다시 고백을 해야 하나...'
나는 철저히 '을'의 위치였다.
만나서 얘기를 한다면 그녀는 끝없이 추궁을 할 것이고,
나는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수 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을'인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진심' 그리고 '허세'밖에는 없었다.
진심을 담은 편지
그녀는 내게 이별통보를 받았고, 상처가 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하는 말들은 구구절절하고 질척거리는 말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렇게 구구절절하고 질척거리는 것들은 편지에 쓰기로 했다.
이틀을 꼬박 편지를 쓰며 보냈다.
지우고 쓰고, 쓰고 지우고를 거듭했다.
멋지게 쓰고 싶었건만... 다시 읽어보아도 정말 구구절절하고 짠하다 싶을 정도로 질척거렸다.
하지만 그게 진심이었다.
그렇게 질척거리고, 짠하게 보여서라도 그녀를 다시 붙잡고 싶었다.
그렇게 영혼을 바쳐 편지를 쓰고, 그녀에게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냈다.
첫 메시지를 뭐라고 보내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다만 그 첫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데 '음...... 음......' 거리며 쓰고 지우기를 꽤나 많이 반복했던 것은 기억이 난다. 그렇게 메시지 하나하나를 내 모든 세포에게 검열받은 후 보냈다.
'내일 잠깐만 만나줄 수 있을까요?'
예상대로 답장의 시간은 길었고, 그녀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 이후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꽤나 애절하게 만나 달라고 구걸했던 것은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열심히 질척거린 덕분에 이틀 뒤 10시,
학교 중앙도서관 정자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받아 낼 수 있었다.
쿨한 척, 허세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은 매력이 없다.
나의 마음은 편지에 다 적어 놓았으니 미련을 버리고 담백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어차피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이고 선택권이 나에게 없다면 내가 할 일은 한 가지뿐이다.
'재회' 혹은 '완전한 이별' 이 두 가지의 경우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뿐이었다.
두 가지 상황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과 얘기를 했다.
인연이 아니라면 그래서 안될 것이고, 인연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날 것이다.
이틀 동안 스스로 마음을 정리했고, 두 가지 경우를 모두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덕분에 만나기로 한 그날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덤덤한 마음으로 장미꽃 한 송이를 샀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만남을 위해 꽤나 신경 써서 옷을 입고 나갔다.
"안녕?" / "안녕"
"잘 지냈어?" / "뭐... 그냥저냥 지냈지 ㅎㅎ"
"이거 받아줄래? / "고마워"
말하고도 어이가 없었다. 헤어진 사이에 잘 지냈냐니...
잘 못 지낸다 해도, 잘 지낸다 대답 하기도 난감한 질문이었다.
머쓱하게 준비해온 꽃은 건넸지만, 할 말이 없이 머쓱하게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래서 그냥 준비해온 허세의 말을 바로 꺼냈다.
"많이 생각해 봤는데, 그걸 말로 하면 너무 길 것 같아서 편지에 적어놨어."
"편지 읽어보고, 너무 길게 생각하지 말고, 내일까지 답장해줘."
"길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냥 생각나는 대로 바로 답장해 줘.
내일까지 답장 없으면 그냥 끝난 거라고 생각할게."
"편지 잘 읽어보고, 잘 읽어보고~?... 잘 읽어봐야 돼 알겠지?"
더 이상 말하면 허세가 깨질 것 같아서 3번만 말했다.
"갈게. 빠이~ "/ "안녕~"
재회
다음날 저녁,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학교 후문에서 보자는 메시지였다.
그녀는 이미 근처에 와 있다고 했다. 나는 그때 아마 순간이동을 해서 갔지 싶다.
열심히 달려가서 그녀를 만났고, 근처 카페로 안내했다. 그리곤 어색하게 말을 나눴다.
이쯤 되니 자기가 불리한 기억은 지우려 하는 방어기제가 있다는 것,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 내게 남아있는 기억은 딱 2가지뿐이다.
하나는 그녀의 추궁에 어색한 변명을 하던 나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내가 듣고 싶었던 그녀의 말이다.
"오빠가 편지에 지금 다시 만나면 평생 함께 하고 싶다고 적었는데...
오빠랑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생각으로 고백을 받아주는 건 아니고...
그냥 내가 나중에 후회를 안 하고 싶어서 받아주는 거야. "
"다시 만나자는 말이지?"/ "...."
"그러니까... 다시 만나자는 말 맞지??" / "응..."
나는 고맙다고 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남을 시작했다.
다시 만난다는 것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은 쌍방향일 때가 많다.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으면 상대방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 가능성이 크다.
나는 나의 부족함과 미래의 불안함을 그녀가 확신을 주지 못한 탓으로 돌렸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녀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로 성격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미래가 어찌 될지 모른다는 것,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그런 불안함을 밖으로 내 보이지 않았고,
나보다 더 넓은 마음으로 나를 받아주고 있었다.
다시 만나면서 나는 그녀의 이런 면을 좀 더 존경하게 되었다.
헤어진 이유였던 '다름'이 다시 만나고 난 후엔 가장 소중한 것이 되었다.
외향적인 나는 내성적인 그녀가 할 말을 하지 못할 때 대신 나서서 말해 줄 수 있다.
내성적인 그녀는 나의 순간적인 행동을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도록 잡아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평생 함께 가야 할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축복일 수도 있다.
처음 고백하던 심정으로, 나는 그녀에게 다시 고백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진심을 받아주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의 다짐,
평생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나의 마음은
더욱 단단해져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면서 달라진 점이 몇 가지가 있는데,
무엇보다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존경심이 더해졌고,
그리고 노래 한 곡을 끝까지 다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사귀던 때 낯 부끄러워 끝까지 다 부르지 못한 노래 한 곡이 있는데,
이젠 진심을 담아 마지막 소절까지 부를 수 있게 되었다.
you're my angle, my soul, 나와 결혼해줘요
- 포맨 '고백', 마지막 가사 -
사진작가 : 정민호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mejmh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