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굶어 죽을까
제목은 친구가 얼마 전 내게 건넨 말이고, 부제는 나의 답변이다. 이 양반은 대체 나를 뭘로 생각하길래 저런 질문을 하는 건지. 내가 무슨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도 되는 줄 아나?
무슨 뜻으로 그런 걸 묻냐고 했더니 뭔가 자유로운 영혼 같아 보여서 그랬다고 했다. 재밌는 일이다. 나는 내가 자유롭다고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고 자유롭고 싶다고 바라본 적만 수없이 많은데 말이지.
왜 그렇게 나를 바라보는지는 알 것도 같다. 나는 언제나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무신경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것저것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보여왔다.
스무 살 때는 연극에 몰두했다. 전공은 하등 상관없는 것이면서 연극영화과 학생이라도 되는 양 연극, 뮤지컬 연습에만 매달리면서 살았다. 전공 서적에 먼지만 쌓여갈 동안 대본은 너덜너덜해지도록 읽어댔고 스물한 살까지도 비슷하게 살았다.
그러다 스물두 살이 되던 해 군대를 갔고 군대에선 취사병이 됐다. 전역을 하던 스물셋의 연말엔 친구들을 열 명이나 불러 모아 상다리가 부러질 듯 음식을 차려 대접하기도 했다. 그런 날 보며 사람들은 입을 모아 물었다. 식당 차릴 거냐고. 그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그냥 요리가 즐겁고 내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을 뿐. 스물넷이 되곤 조용히 학교만 다니다 휴학하고 카페에서 알바했다. 교환학생 준비라는 핑계를 대고 휴학을 했고, 유럽 여행 자금을 모으려고 알바했지만 최저시급을 간신히 넘기는 알바비는 쥐꼬리더라.
스물다섯 봄에는 교환학생을 갔다. 역시 전공과는 하등 상관없는 국가인, 무려 크로아티아로. 왜 난데없이 크로아티아로 교환학생을 가냐는 물음엔 사실 답하기가 민망했다. 나도 거기로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었으니까. 그냥 교환학생은 한 번쯤 가고 싶었는데 그 김에 유럽여행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유럽권 대학을 찾아보다가 낮은 성적으로도 갈 수 있는 학교를 찾아낸 거였다. 그게 하필 크로아티아였던 거고. 교환학생은 크게 감흥이 없었지만 난생처음 혼자서, 그것도 해외에서 살아본다는 것과 역시 처음 해보는 유럽 여행은 정말로 즐거웠고 방황하던 내게 큰 위로가 됐다.
여름에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는 항상 배우고 싶었던 영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니고 그냥 동아리에 들어간 수준이지만 처음 해보는 영상 편집과 기획은 흥미로웠다. 이때쯤 브런치에도 글을 쓰기 시작했고. 역시 나는 창작적인 일을 좋아하나 보다. 요리도 영상도 글도, 결국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이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하긴 조금 모자라겠지만.
굳이 창작이 아니라 ‘창작적인 일’이라는 비경제적 표현을 사용한 것은, 내가 창작자로서 내세울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서 그렇다. 요리에 있어선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해 내는 게 아니라 좋은 레시피를 따라하는 게 전부고, 영상은 다른 사람의 영상과 다른 사람의 음악을 내 맘대로 해체해서 재배치한 게 다고, 글은.. 이건 온전히 내 것이긴 하지만 각잡고 문학 작품을 집필하는 것도 아닌 그냥 에세이를 빙자한 넋두리라 별로 자부심 없다.
다만 요즘은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별로 없다. 내가 뭐 언제부터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요리고 영상이고 글이고 다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것뿐인데. 하고 싶을 때 하고, 아니면 좀 쉬고 다시 하고 싶어지면 또다시 하고. 그럼 되지. 좋아하는 일들로 나를 채우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실용적이고 생산적이어봤자 나는 나일뿐이지. 내가 무슨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할 것도 아닌데 말이야.
https://youtu.be/ESKaJojgDdo?si=fsgSAMp_UE5sqDkr
최근에 너무 몰입해서 봤던 쿠팡플레이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과 요네즈 켄시의 Lemon이라는 곡을 섞어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봤는데 퍽 마음에 든다. 드라마에 너무 빠져서 원작 소설도 읽어봤는데 소설도 정말 재밌더라.
예전에 블로그를 한창 쓸 때는 영화/드라마 리뷰 아니면 음악 얘기도 많이 했었는데, 어째 요즘은 그걸 할 엄두가 안 난다. 예전에 블로그에 그런 글을 한 번 쓰면 최소 열흘은 붙잡고 심혈을 기울였던 기억이 있어서, 지금은 그렇게까지 투자할 자신이 없다. 대충 써서 올리긴 또 싫고. 그런데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너무 좋아서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과연 이 변덕이 어떻게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