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궤도 이탈
. 어느 날 만나는 함정 – 사랑의 궤도 이탈
”나에게도 첫사랑은 있다. “
당신의 아빠, 엄마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아내와 딸, 아들 이렇게 4명이 살고 있다. 언젠가 가족끼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 부부가 서로 만나기 전에 있었던 연애 흑역사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막 20살을 넘긴 딸아이의 반짝이던 눈이 생각난다.
청춘들에게 첫사랑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이다. 교회에서 16년간 청춘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하면서 여러 차례 인생 특강을 해 봤지만, 언제나 가장 흥미롭고 많은 질문이 쇄도하는 주제는 역시 사랑 이야기였고, 그중에서도 첫사랑 이야기를 할 때의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 있다.
사춘기를 지나고 풋풋한 청춘의 시기에 들어서면 동화 속 또는 영화 속 이야기 같은 사랑을 기대하며 누군가 앞에 나타나 줄 사랑을 찾게 된다. 그 시절 우리는 첫사랑을 만난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운이 좋아서 이 첫사랑이 평생 사랑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첫사랑을 통해 사랑의 감정에 입문을 한다.
”사랑에 빠진다 “는 표현은 참 멋진 표현이다. 서로 아무 감정 없이 10여 년을 알고 지내던 여사친, 남사친이 어느 날 내 마음 한편을 가득 메워 버리는 일, 매일매일 스쳐 가던 직장 동료가 어느 날 나를 설레게 하는 이성으로 훅 다가오는 일, 원수같이 서로 아웅다웅하던 학교 선후배 사이에 어느 날 핑크빛 안개가 피어오르는 일. 이런 일은 예고 없이 우리 삶에 불쑥 끼어드는 일이다. 그래서 사랑하게 되는 인생 사건을 "사랑에 빠진다"라고 표현한다면, 헤어짐은 ”사랑 궤도 이탈”로 표현할 수 있을까?
. 첫사랑의 아픔
나의 첫사랑은 중고등부 시절 같은 교회를 다녔던 1년 후배였다. 숫기가 없던 나는 1년 후배 앞에서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어리바리 학생이었다, 초등학교부터 10여 년을 크지도 않은 교회에 같이 다니면서도 말 한번 제대로 붙여보지 못하고,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나는 재수를 해서 같이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애사는 시작됐다. 어떤 연인처럼 참 많이 붙어 다녔어. 각자의 학교 축제에 초대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교회 안에서 붙어 다니고, 우리 주변에서는 모두 우리의 연애질을 질투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어느 날 뚝 끝나고 말았다.
”나는 더는 오빠가 필요하지 않아 “ 비 오는 날 연인을 배웅하고 그 집 대문 앞에서 내가 들었던 최후통첩이었지. 그 자리를 떠나 집으로 가는 길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이 말은 내가 기억하는, 내가 받아들인 최후통첩일 뿐, 그 사람이 진짜로 한 말은 더이상의 ‘더’가 아니라 ’ 지금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관계는 끝났다. 10여 년을 알고 지냈고, 2년 정도의 연애 기간이 이 한마디로 궤도 이탈해 버린 것이다. 혹시 이 글을 과거의 그 사람이 본다면 사과하고 싶다. 나는 너무 어렸고, 경솔했다.
. 실패의 징조
사랑의 감정이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영향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인간의 신비로운 감정을 화학적 작용과 연관시키는 게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배가 고프고, 잠이 오고, 피로감을 느끼는 게 우리의 생리적 반응이듯이 인간의 고귀한 감정인 사랑도 하나의 생리적 반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애써 외면한다고 해서 그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신체로부터 사랑을 주관하는 호르몬 수치를 검출하고 분석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사랑의 크기와 생각에서의 비중을 측정할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사랑을 하기 전과 후의 호르몬 수치 변화가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물리적으로 알 수 있는 사랑의 측정 한계는 거기까지 이다. 인위적으로 호르몬 수치를 조절함으로써 궤도 이탈을 향해 달리는 사랑의 관계를 조절할 수는 없다.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고난이 예고 없이 찾아오듯이, 헤어짐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게 되는 걸까? 연인과의 사별(죽음에 의한 이별)은 인생에서 만나는 고난의 함정이니까, 예외의 문제로 생각한다면 '헤어짐' 다시 말해서 '사랑의 궤도 이탈'은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궤도 이탈의 조짐은 조금씩 너의 연애사를 삐걱 이게 만들 었다. 이 삐걱임을 눈치채고 손질하는 예민함이 사랑에도 필요하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순간일 수 있지만, 사랑의 이탈은 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기대와 기다림이 서서히 지쳐가고, 그 피로감이 쌓여가다 어느 균열 점을 만나는 순간 그게 이별이라는 결과로 표출되는 것이다. 불행히도 어느 경우는 삐꺽임을 손볼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쳐서, 그리고 어떤 경우는 순간의 사랑에 빠진 충격을 서서히 벗어나는 과정에서 이별을 결정하게 된다.
. 헤어짐, 성장, 그리고 또 만남
헤어짐은 실패가 아닌 성장과정의 계단이다. 만날 때 헤어짐을 걱정하고 고민하며 시작하면 안 된다. 그렇지만 헤어짐이 현실화되었을 때 미련을 가지고 매달려서도 안 된다. 당신은 아직 출발점도 통과하지도 않은 상태이다. 20년, 30년쯤 살고 연애를 5년, 10년 했다고 사랑의 모든 요인을 다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나는 결혼 20년쯤이 지났을 때 아내의 친구들에게 불타는 질투심을 느끼는 이벤트가 생겼다. 그리고 비로소 아! 이게 사랑이구나를 깨달았다.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들과 1박 2일 산행을 떠났다. 남자 동창들 틈에서 지리산 종주를 하며 비와 땀에 흠뻑 젖어 웃고 있는 사진을 카톡으로 전해받았을 때, 내가 아닌 낯선 남자들 틈에서 해맑게 웃는 아내를 보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질투심을 느꼈다, 그 후 나는 아내를 다르게 대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경험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삶에서 만나는 한구비 한구비 변곡점의 의미를 잘 새겨 두는 게 필요하다.
사랑의 궤도 이탈을 경험했다면, 그것을 가슴에 묻고 썩히기보다는 앞으로 다가오는 사랑에서 성공하기 위한 경험 능력치를 쌓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균열의 징조를 알지 못하고 대처하지 못해 이탈한 사랑이라면, 좀 더 예민하게 이탈의 징조를 살피고, 유지하기 위해 발판으로 삼고, 성급한 사랑의 늪에서 눈을 떠서 궤도 수정을 했다면 다음에는 좀 더 신중하게 사랑 열차를 살피고 탑승하는 지혜를 얻게 된 것임을 기억하자.
헤어짐을 앞둔, 이제 막 헤어짐을 경험한 당신을 위한 제안
사랑의 궤도 이탈이 인생의 궤도 이탈로 이어지도록 방치하질 말 것, 그리고 다가올 사랑 열차를 기다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