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껍데기 20
"지난번에 빌려간 돈 있지? 00한테 내가 빌려준 돈이 있는데 걔한테 받아라. 내가 얘기해 두었다."
살면서 이런 사람이 서너 명 있었다.
1번은 그냥 넘어가 주는데, 2번 이상 안 봐준다.
이런 관계는 바로 손절 각이다.
"옛날에 너한테 잘못해 줘서 말이야~ 술 먹으니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
평소 맨 정신으로는 전화 한 통 없다가 꼭 술 먹고 취하면 전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술을 취하게 먹지 않으니 이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렵고 그럴 시간도 없다.
맨 정신일 때 나를 생각해 주면 좋겠다.
"누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대. 나는 못 가니 네가 가서 위로 좀 전해주라."
10년간 얼굴 한번 보지 않은 옛 지인의 모친상을 나한테 알려준다.
이런 사람이 꼭 있다. 깊은 관계도 아닌데 타인의 경조사 소식을 보란 듯 열심히 공유한다.
그런데 자기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못 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위로의 마음만 대신 전달해 달라고 한다.
나도 바쁘다. 다음에는 같이 만나서 위로의 마음과 조의금을 같이 전하자.
"그 사람은 MBTI가 그런 성향이라 그렇게 결정한 거야~
그 친구는 애니어그램이 이러저러하니 결국 그렇게 행동할 거야~"
세상 모든 사람을 혈액형, 애니어그램, MBTI에 몰아넣고 규정해 버린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보조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이 도구에 맞춰 살아간다고 믿는다.
타인을 MBTI로 규정하고 그 사람의 행동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본인은 MBTI를 넘어서 예전과 달라졌다고 하는 친구들이 꽤 있다.
볼 때마다 안타깝다.
사람 잘 안 바뀐다.
인생의 고마운 사람들에게 자주 전화하고 안부 물어야지 생각하면서
1년간 전화 한번 안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핑계로 연락을 잘하지 않는다.
남 뭐라고 할 것 없다.
내 껍데기도 잘 안 바뀌는 껍데기일 뿐이다.
어디다 쓰려나. 나중에 벗겨서 구워 먹기나 하겠지.
안쓰러운 내 돼지++ 껍데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