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백수 남편의 일기 (15)
새벽 5시. 두 개의 핸드폰이 동시에 괴성을 지른다. 평소와는 다른 아침 풍경. 교대로 샤워를 하고 나와 옷장을 뒤져 적당한 옷을 골라 입는다.
“준비 다 됐어요.”
반쯤 감겨오는 눈을 부릅뜨며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새벽안개가 짙다.
“피곤하지 않아요?”
아내가 시트 깊숙이 몸을 기대며 묻는다.
“괜찮아요. 눈 좀 붙여요. 도착하면 깨워줄게요.”
아내가 과로로 쓰러졌을 때, 의사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충분한 휴식과 안정을 취할 것을 주문했다. 그게 가능한 회사원이 있다면 둘 중 하나다. 회사를 취미로 다니고 있거나, 아니면 오늘만 보며 사는 월급루팡이거나.
우리는 어느 것도 해당되지 않으니, 아내는 스트레스도 받아야 하고 휴식과 안정도 취할 수 없다. 그래서 출퇴근 길이라도 편안하게 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내의 출퇴근 기사 노릇을 자청했다. 백수 남편의 셔터맨 선언 같은 것이리라. 아내를 바래다주고 독서실로 가면 오픈 시간과도 딱 맞는다.
이 말을 꺼냈을 때 아내는 미심쩍어하는 표정이었다. 벌써 반년 넘게 불규칙한 생활을 하는 남편이 새벽 5시에 일어나겠다는 것이 그다지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 출근이 빠르기로 회사 열 손가락 안에 꼽혔던 나다. 아무리 밤낮이 바뀌었다고 해도 못할 리가 없지. 이렇게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쳤지만, 머리 한 구석에서 '정말? 할 수 있다고?'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예전처럼 일어날 수 있을까? 요즘은 새벽 5시나 되어서야 잠드는 일이 더 많은데.
하지만 걱정이 무색할 만큼, 나는 새벽 5시에 눈을 떴고, 이렇게 아내를 태우고 운전을 하고 있다. 대견하다.
안개 낀 도로가 낭만적인 데이트 코스로 변한다.
새벽안개가 짙은 회색빛 커튼처럼 시야를 가린다. 왕복 4차선 도로 전체가 영화 미스트의 한 장면 같다. 들릴 듯 말 듯 조용하게 음악을 켠다. 조지 윈스턴의 앨범 December. 순식간에 안개 낀 도로가 낭만적인 데이트 코스로 변한다. 모처럼 하는 새벽 드라이브.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각인지.
촉촉한 안개 너머를 읽어가며 운전에 집중한다. 넓은 국도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서자 드문드문 길가에 얼굴을 열어가는 코스모스가 눈에 띈다. 안녕. 좋은 아침이지? 코스모스가 대답한다. 안녕? 이제 운전에 집중하는 게 좋을 거야. 이 앞으로는 길이 정말 장난이 아니거든.
농담이 아니다. 덜컹거리는 차체를 향해 자잘한 돌멩이가 맹렬하게 달려든다. 포장도로를 표방한 비포장도로. 이건 사기에 가깝다. 생긴 건 아스팔트인데, 바퀴를 통해 전달되는 감각은 바위 많은 등산길이다. 게다가 급격한 경사로가 아까부터 계속되고 있다.
이게 정말 회사 가는 길이 맞는 건가. 내비게이션에 누군가 장난질을 쳐놓은 건 아닐까. 안개 너머 목적지에 칠흑 같은 선팅을 한 검은 벤 한 대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길이 좀 험하죠.”
요동치는 차 때문에 아내가 깬 모양이다. 액셀을 밟을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인다.
“회사가 산 중턱에 있어서 길이 좀 이래요.”
알고 있다. 아내의 사무실은 화학 연구소 부지에 있어서, 인가에서 한참 떨어진 산 중턱을 깎아 만든 곳이라고 들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외진 곳 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의 빈약한 상상력은 열대 우림 같은 길을 뚫고 올라가는 등산코스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설마 회사가 산골에 박혀있을 줄이야. 여긴 노루가 아니라 삵이나 멧돼지가 튀어나와도 그러려니 싶을 것 같은 느낌이다.
회사의 출입구를 나타내는 안내표지판을 지나쳐 500미터를 더 올라가서야 회사의 주차장 출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등록된 차가 아니면 못 들어가요. 여기서 내릴게요.”
아내가 말한다. 아내가 내비게이션에 찍어준 건물까지는 아직도 500미터가 더 남아있다.
“회사 주차장에서부터는 걸어서 올라가야 해요. 어차피 임원이 아니면 차로 건물 앞까지 못 들어가요. 고마워요. 퇴근하기 30분 전에는 연락할게요. 있다가 만나요.”
볼에 입을 맞추며 아내가 차에서 내린다. 종종걸음으로 회사 입구를 통과하며 경비원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뒤로하고 고민에 빠진다. 이 좁아터진 왕복 2차로 길에서 어떻게 유턴을 해야 할까.
독서실에 도착해서도 수풀이 우거진 아내의 출근길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출퇴근이 많이 힘들어요. 아무래도 회사가 산에 있어서 걸어 올라가는 게 쉽지 않아요.”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기 전, 분당에 신혼집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 차를 한 대 더 사는 건 좀 무리겠지?”
아내의 말에 지도 앱을 켜고 경로를 검색해본다. 집에서 회사까지 왕복 15km. 서울의 회사까지 하루 왕복 60km를 소화해야 하는 나에 비하면 매우 훌륭하다. 신혼집 위치도 아내의 출퇴근 버스를 고려해 이 비싼 동네로 잡은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지금은 대출이 많아서 무리일 것 같은데. 우리 차 산지도 얼마 안 되었잖아요. 이제부터 열심히 모아서 빚 줄여나가야죠. 아니면 내 차를 타고 다닐래요? 출근시간이 좀 늘어나긴 하겠지만 버스랑 지하철 갈아타면 나도 대중교통으로 회사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내는 됐다며 손을 젓는다. 조금만 일찍 출발하면 차로 40분이 걸리는 남편의 출근길을 배려한 것이리라.
그때는 아내의 불만이
철없는 투정처럼 느껴졌다.
이런 아내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한 것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때는 아내의 불만이 철없는 투정처럼 느껴졌다. 대중교통으로 왕복 3시간을 써야 하는 나의 출퇴근에 비하면 아내의 출퇴근 거리는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은가. 게다가 바로 집 앞에 회사 정문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약간의 도보는 감수해주면 안 되는 걸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도보가 인도도 갖추어지지 않은 왕복 2차선의 가파른 등산길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 회사가 정말 회사는 맞나 싶은 의문이 샘솟는다. 정부 특수요원을 훈련시키는 현대판 실미도라고 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아내는 이 길을 1년 반 동안 걸어 올랐다. 5센티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아내 특유의 종종걸음으로.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아내에게 문자가 온다. 곧 퇴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데리러 와 줄 수 있나요? 응, 갈게요. 당장 갈게요.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회사 주차장에는 여전히 들어갈 수 없다. 회사 출입구 근처 편의점에 차를 대고, 아내가 늘 걸어 다녔던 길을 나도 걸어 오른다. 500m. 학교 앞에서 자취하던 시절, 집과 학교까지의 거리가 그 정도 되었었지. 그렇게 부담되는 거리는 아니었었던 것 같은데, 평지가 오르막으로 바뀌자 500이라는 숫자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숨이 차오르며 심장 박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중간중간 쏜살같이 달려 내려오는 차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그리고 아주 가끔 걸어 내려오는 정장 차림의 회사원들과 어깨를 스쳐 지나가면서, 뭐 이딴 길이 다 있어,라고 중얼거린다. 인도 정도는 만들어주지. 그러고 보니 너네 건설 법인도 있잖아. 도로 중간에 뱀 한 마리가 쥐포처럼 납작, 내장을 쏟아낸 채 바닥에 붙어있다.
발모제 광고 모델의 ‘Before’ 사진처럼 듬성듬성 서있는 가로등을 지나쳐 주차장 입구에 다다른다. 이미 해는 자취를 감추었다. 오후 6시 45분. 산속의 해는 인내심이 그리 길지 않은 모양이다.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나 주차장 입구에 도착했어요. 나와요.]
입구 근처를 서성이며 이런저런 뉴스를 검색하다가 다시 메시지 창을 확인한다. 지워지지 않는 카톡의 숫자 1.
이제는 주차장을 나오는 차도 드물다. 빼꼼히 주차장 안을 들여다보지만 어둠 속에 남아있는 차들의 실루엣만 흐릿하게 보일 뿐 사람의 흔적은 없다.
오후 7시 반. 여전히 카톡의 숫자는 지워지지 않는다. 다시 문자를 보낸다. 아직 멀었나요.
[미안해요. 이제 나가요. 어디예요?]
아내가 메시지를 보낸 것은 8시 30분이 넘어서였다. 어둠 속에서 아내의 구두굽 소리가 울려온다. 탁탁탁, 아스팔트를 차는 소리.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죠.”
갑자기 이사님이 회의를 하자고 하시는 바람에,라고 아내는 말끝을 흐린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나의 손을 잡는다. 어떡해, 손 찬 것 좀 봐. 두 손을 맞잡고 입에 가져다 대고 숨을 불어넣는다. 호오. 호오.
“내려가자. 여기 차를 댈 곳이 없어서 밑에 편의점 앞에 세워놨어요.”
아내의 손을 잡고 길을 내려간다. 고요한 산속에 발자국 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린다. 말이 없는 나의 얼굴을 살피며 아내가 말한다.
“미안해요. 화났어요?”
“아니에요.”
“미안해요, 정말로. 그런데 나도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아내가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저녁은? 저녁 아직 못 먹었죠?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가는 길에 오빠가 좋아하는 도넛 사갈까?”
이마저도 대답이 없자 아내는 풀이 죽어 입을 다문다. 내리깐 눈에 어둠처럼 근심이 깔린다.
집에 돌아오자 10시가 되었다. 보통 아내는 이 정도 시간에 돌아오곤 한다.
“화 풀어요. 내일부터 다시 나 혼자 출근할게요. 매일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리고 나 이제 몸도 많이 좋아졌어요. 괜찮아.”
화장을 지우며 아내가 말한다.
“아냐, 괜찮아요. 아까는 좀 추워서 그랬어. 산이라 그런지 밤에는 아직 많이 춥더라.”
침대에 걸터앉아 아내의 화장 지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넌지시 말을 건넨다.
“여보.”
“응?”
“내 차, 당신이 타고 다닐래요?”
“갑자기 왜요?”
“거기서 2시간을 서있으면서 걸어서 퇴근하는 사람을 거의 못 봤어. 거기 길도 너무 어둡고, 또 내가 데려다주고 데리러 갈 때 차를 댈 곳도 마땅치가 않고. 그냥 당신이 차를 가지고 다니면 출퇴근 시간도 많이 줄어들고, 버스보다 훨씬 편하지 않겠어요?”
“그럼 오빠는? 독서실 어떻게 가려고요?”
“독서실 그만 나갈까…”
독서실 그만 나갈까...
아내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천천히 조금씩 내뱉는다.
“갑자기 왜요?”
“아무래도 왔다 갔다 시간도 아깝고, 거기서 공부하나 집에서 공부하나 조용하기도 매한가지고…”
“그리고?”
목소리 끝에 날이 섰다. 공기를 타고 긴장감이 흐른다.
“독서실 비용이나 주차장 비용이나 굳이 그 돈을 들여서 다녀야 되나 싶기도 하고…”
“오빠. 여보.”
아내가 말을 끊는다. 또렷한 두 눈동자가 나의 눈을 응시한다. 연애 시절 참 많이 보았던, 하지만 줄곧 잊고 지냈던 아내의 진심으로 화난 표정. 결혼 이후에는 처음이다.
“응.”
“말했잖아요. 나 괜찮아요. 나 대학생 때 당신도 봤잖아. 시험기간이면 이틀이 멀다 하고 밤을 새우고도 멀쩡했어요.”
안다. 아내의 장학금에 대한 집념이 광신도에 가까웠던 그 모습을 잊을 리 없다. 다만 그때의 아내는 바위도 씹어먹을 이십 대 초반의 건강한 대학생이었고, 지금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가는 이십 대 후반의 지친 직장인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내의 말에 이렇다 할 대꾸도 못 한 채,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다.
“그리고, 그 차 어차피 회사에 못 가져가요. 우리 대리님 경차 타고 다니고, 과장님은 준중형이에요. 우리 차 중형이잖아. 오빠가 다니던 회사랑 달라요. 우리 회사는 사무실을 산골짜기에 처박아놓고 사원들 똥개 훈련시키는 60년대 반공정신으로 무장한 특전사 부대 같은 곳이에요. 주차장에 외제차라도 들어오면 임원회의에서 그 차가 누구 차 인지, 어떻게 그런 차가 회사로 들어올 수 있는지를 놓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그런 회사라고요.”
한 풀 누그러진 아내의 화는 회사로 향한다. 평소 같았으면 나왔을 “그 회사 참…”으로 시작하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아내가 잠든 후, 발로 찬 이불을 덮어주고 거실로 나온다. 새벽 1시. 천장에 난 창으로 달빛이 스폿 조명처럼 거실 한 구석을 비춘다. 어둠 속의 달빛이 아내의 출퇴근길 가로등 같다.
“화난다.”
식탁 의자에 기대어 앉아 말한다.
“나 화났어요. 사실 많이 화나.”
미안해요, 아내의 음성이 귓가에 스민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그런데, 누구한테 화를 내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도, 나는 모르겠어요,라고 중얼거린다.
누구한테, 무엇때문에
화가 났는지 모르겠어요
내일도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날 것이다. 내일은 조금 더 살살 운전해야지. 덜컹거리는 도로에 아내가 깨지 않도록. 밤에 데리러 갈 때는 핫팩을 미리 사둬야겠다. 아내의 바람막이도 한 벌 챙겨야지,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어둠을 뚫고 아내가 구두굽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모습이 아른거린다. 점점 선명해져 가는 아내의 얼굴, 걱정에 찬 눈동자. 숨결을 따라 나오던 입김. 차가운 공기에 식은 어깨 위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희미한 열기.
그리고 도로 한가운데 납작 엎드려 내장을 쏟아낸 채 축축한 이슬에 젖어가던, 그 뱀 한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