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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Feb 04. 2023

아내는 지금이 임신의 황금기라고 한다.

32. 이제부터는 언제 태어나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지금이 임신 황금기라고 해요.”


아내가 말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쩐지. 납득이 간다. 


“24주부터 28주까지가 임신 황금기라고 부른대요. 몸이 아주 무겁지도 않고 입덧은 끝났고, 또 웬만한 검사도 다 끝난 시기라서. 지난주에 했던 임당검사가 마지막 고비였어요. “


임당검사에서 문제가 생기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난 결과가 좋았으니까 지금이 임신 황금기가 맞아요. 아내가 말하며 웃는다. 아내는 최근 들어 부쩍 활력이 생겼다. 


지금이 임신 황금기라고 해요.


임신 27주가 되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고생했던 것도 벌써 한 달 전이다. 4주 남짓한 그 시간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연말을 맞아 묵직한 회사일이 여럿 겹쳤고, 소중한 사람들과 연락하고 얼굴을 보는 자리를 가져야 했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특별히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던 사이에 아내는 완전히 임신 안정기로 접어든 느낌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오르는 배의 크기와는 정 반대였다. 임신 초기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잘 먹고 잘 잤으며 활동도 편해 보였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인해 망가졌던 체력도 눈에 띄게 호전되어 이제는 언제 또 쓰러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두꺼운 옷 위로도 불룩 솟아오른 배가 아니었다면 임산부라는 걸 완전히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아내는 안정을 되찾고 임신 전처럼 활동적인 일상을 보냈다. 


26주 차를 맞아 임당검사를 했을 때, 꼬물이는 35센티미터 정도 크기가 되어있었다. 의사 말로는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주수에 비해 여전히 머리가 큰 편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내의 출산을 걱정했다. 아내와 나 양쪽 집안사람들은 모두 평균보다 머리가 살짝 작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저 우리 아이의 머리가 크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인간의 적응력은 참 대단하다.


내 배가 부른 것이 아니기에 그 변화를 체감하는 아내와 달리, 남편인 나는 아내의 부른 배가 생활 속에 녹아내려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았다. 배 위에 손을 올리면 힘차게 올려 차고 어깨빵을 치는 꼬물이의 태동도, 튼살크림을 바를 때마다 보면서 신기해했던 아내의 달라져가는 배꼽 모양도 더 이상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아내는 자신의 몸이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놀라워했고, 조금은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배꼽을 뚫고 나올 것 같아요. 이거 보여요? 배꼽에 구멍이 사라져 버렸어. 이러다가 완전히 뒤집어질 것 같아. 그리고 꼬물이가 배꼽을 집중적으로 밀고 찰 때가 있어요. 여기 피부가 얇아서 빛이 비치나? 아니면 여기 계속 밀면 뚫고 나올 수 있을 것처럼 만만한 건지도 몰라요. “


아직 안돼. 기다려. 좀 더 있어야 해. 아내가 배를 토닥토닥 다독이며 말한다. 


이제부터는 언제 태어나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이제 곧 임신 8개월 차를 마주하게 된다. 시간이 어느새 그렇게 흘러버렸다는 것이 놀랍다. 10개월의 임신기간은 어쩌면 무척 짧을지도 모르겠다던 나의 예상이 맞았다. 아직 우리는 해야 할 준비가 정말 많이 남아있다. 


“이제는 꼬물이가 당장 태어나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요. 하루하루 지날수록 생존 확률이 높아져요.”


아내가 말했다. 이제는 꼬물이의 장기 대부분이 완성되었고 피부가 생겼으며 그 아래로 살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장기기능이 잘 작동되는지 시운전을 한다고. 이 시기에 엄마 뱃속에서 충분히 시운전을 한 후, 태어나서 실수 없이 뇌가 몸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로 아내의 몸이 아이를 만드는 공장이라도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신비로운 비밀로 둘러싸인 공장. 찰리의 초콜릿 공장처럼, 저 뱃속에 작은 난쟁이들이 아이를 만들고 있다. 작은 두 손으로 조물 조물 손가락과 발가락을 빚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에 색을 입힌다. 


감히, 지난 4주가 평온했다고 말하고 싶다. 모든 임신 기간을 통틀어 가장 임신에 대해 잊고 지낼 수 있을 정도로. 어쩌면 임신 후 내가 아내의 임신에 가장 무신경할 수 있었을 정도로 평온했던 시간. 물론 아내에게는 다를 수 있겠지만. 


내게 주어진 마지막 평온이 끝나감을 안다.


하지만 이 평온함이 마지막이고, 곧 무자비한 현실이 짓밟을 평화임을 알고 있다. 세상은 늘 파도 같아서 둥실 두둥실 흐름에 쓸려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우리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 해안가에 있다. 파도마저 잦아들기 시작한 저 지평선 너머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물이 수면 아래에서부터 쭉 빨려 들어가고 있다. 정신을 차려보면 우리는 거대한 산처럼 우리를 덮쳐오는 높은 파도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내는 준비가 철저한 편이다. 안일하게 시간을 보낼 성격이 되지 못하는 아내는, 거대한 파도가 오기 전 잠수함이든 벙커든 뭐라도 준비해야 마음이 놓일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내가 내게 말했다. 


“아이 방을 만들어야겠어요.”


아삭아삭 사과를 씹으며 드라마를 보던 내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답한다.


“아이 방?”


“응. 우리 꼬물이 방.”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방이 필요할까? 지평선 너머에서 들려오는 열차의 기적소리처럼 생각이 고요하게 흐르던 찰나에, 아내의 한 마디가 나의 전두엽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그러니까, 당신이 서재로 쓰던 방을 비워줘야겠어요.”


알고 있었다. 이 평온함이 마지막이라고. 곧 무자비한 현실이 무참히 짓밟을 평화임을 나는 알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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