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아이 방을 만들어야겠다는 아내
“아이 방을 만들어야겠어요.”
아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서재로 쓰던 방을 비워줘야겠어요.”
이어지는 아내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울린다. 아득히 멀어져 가는 정신의 끝자락을 간신히 움켜쥐고 나는 생각한다. 왔다. 올 것이 왔다. 알고 있었다. 무자비한 현실이 나의 평화를 무참히 짓밟을 것이라는 걸. 사납게 벼린 손톱으로 갈가리 찢어놓을 것이라는 걸.
내놔요, 서재.
“일하러 가는 사람은 잘 쉬어야 해요. 그러니까 꼬물이가 어느 정도 혼자서 통잠을 잘 수 있을 때까지 따로 자는 게 맞아요.”
굳이 아이 방을 따로 만들 필요가 있겠냐는 물음에 아내가 답한다. 아이 방은 사실 아이와 아이의 주 양육자가 함께 자는 방이다.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물품을 수납하는 것에도 의미가 있지만, 아이가 밤새 보채는 바람에 다음날 일터에 나가 일해야 할 사람이 충분히 쉬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지쳐 쓰러져도 어느 정도 대신 도와줄 사람을 찾기 수월해요. 당장 내가 쓰러지면 엄마나 아빠, 아니면 동생들이라도 와서 도와주겠지. 하지만 돈 벌어오는 사람은 달라요.”
아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벌어오는 사람이 굳건해야 한다고. 누가 대신해 주기 어렵다고. 그러니, 아이 방을 꼭 만들어야겠다고.
이 이야기를 들은 두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회사 동료가 웃으며 말한다.
“내 와이프도 그렇게 말했었는데. 그런데, 일단 해보세요.”
세상일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거든. 호탕하게 웃는 그의 표정이 묘하다.
누구에게나 심리적 안정공간이 존재한다.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심리적 안정공간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온수가 가득 담긴 욕조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푹신한 1인용 리클라이너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점심시간의 아무도 없는 창고 비품실 구석 간이의자일 수도 있다. 서재는 내게 그런 곳이다. 나의 모든 취미생활의 역사와 열정을 쏟았던 시간의 기록이 남아있는 곳. 그곳에서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히고 멍하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집에 들여야 할 것이 한가득이라는 것을. 내 팔뚝보다 조그마할 꼬물이는 엄청난 파급력을 갖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유모차와 아기침대, 바닥매트와 범퍼침대처럼 생소한 것들이 집에 자리 잡아야 함을. 분유제조기와 미니 건조기, 젖병 소독기 같은 낯선 이름의 물품부터 사소하고 작지만 한 트럭을 쌓아놓아도 부족하게 될 물티슈와 기저귀까지.
꼬물이가 말한다. 아이가 작다고 필요로 하는 물품의 종류와 양도 작은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 아빠, 서재를 내놓으세요라고.
우리 집은 소형 평수에 속한다. 실평수 18평 남짓한 오래된 소형 아파트. 그마저도 확장공사가 전혀 되지 않아 작은 방 2개와 비교적 큰 안방 1개, 그리고 화장실 하나와 작고 단출한 거실이 있는 낡은 아파트. 아내와 단 둘이 살기에는 너무도 쾌적하고 훌륭한 집이다.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물품들이 갈 곳이 없다. 아무리 빈 공간을 찾아 둘러보아도 사방이 온통 빨갛게 물든 레드 오션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만 한다. 물건을 들이려면 어딘가를 비워야 했고, 아주 합리적인 이유로 아내는 내게 당당한 요구를 한다. 내놔요, 서재.
대공사가 시작되었다.
방 하나를 비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재에는 20년 넘게 모아 온 나의 보물들이 가득했다. 컴퓨터, 노트북, 게임기, 카메라 등을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소중히 묻어둔 곳, 서재. 만화책과 소설책 등을 합치면 대략 500권을 넘어가는 상황. 나의 소중한 보물들이 진열된 모습을 둘러보면서, 나는 이 방을 어떻게 비워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 이상 집 안에 둘 수 있는 곳이 없는 이 물건들을 어째야 좋을까?
답은 하나였다. 처분. 어느 것 하나 아깝지 않은 물건이 없었지만, 취미와 생존을 같은 선에 두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꼬물이의 방을 만드는 것은 생존과 관련된 것이고, 여기 있는 이 물건들은 취미와 관련된 것이다. 지금의 내게 취미는 아마도 사치일 것이다. 그러니 답은 간단하다. 처분해야 한다.
당근과 중고나라를 통해 그동안 모아 왔던 거의 대부분의 물건들을 처분했다. 노트북 하나, 모니터 하나, 태블릿 하나, 그리고 글을 쓸 때 쓰는 가장 아끼는 키보드 2개를 남기고 모든 전자기기를 처분했다. 병적으로 물건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성격이 도움이 되었는지 나의 소장품들은 꽤 좋은 값에 팔렸다. 수백 권의 만화책이 팔렸고 취미로 사용했지만 이제는 사양이 떨어지는 카메라와 렌즈들도 처분했다. 전자기기는 올린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모두 팔렸고, 어떤 사람은 상태가 너무 좋다며 약속했던 금액에 수십만 원을 더 얹어주기도 했다.
기왕 시작한 작업이라는 생각에 거실과 주방 배치도 바꾸기 시작했다. 거실 소파와 TV 위치를 바꾸고 거실에 있던 낡은 수납장들을 모두 무료로 나눔 하거나 버렸다. 안에 있던 잠들어있는 물품들도 대부분 처분하거나 버렸다. 1년 이상 꺼내어보지 않은 물품은 과감하게 처분했다.
소파테이블 같은 예쁘지만 실용성이 떨어지는 가구도 팔아치우거나 무료로 나눠주었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운동기구도 팔아버렸다. 신혼 때부터 함께했던 추억이 깃든, 하지만 이제는 너무 낡아버린 가구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식탁의 위치가 바뀌고 서재에 있던 책장이 박스 수납장으로 변신해 베란다로 자리를 옮겨갔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맞벌이 부부가 작업을 할 수 있는 날은 거의 주말뿐이었다. 새벽 5시 반이면 출근해서 저녁 8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하는 우리 부부에게 평일은 중고거래 만으로도 벅찼다. 평일에는 물건을 부지런히 내다 팔았고, 주말이면 부지런히 집의 물건들을 정리했다.
목표가 생기자 아쉬움도 사라졌다.
“이번 달이 가기 전에 꼭 다 마무리 지어야 해요.”
아내가 말했다.
“더 몸이 무거워지면 절대 못할 거야. 그러니 이번 달에는 반드시 다 끝내야 해요.”
나는 아내의 굳은 결의에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물건들을 처분하는 것이 아쉽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다급해진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빨리 달성해야 할 성과이자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물건들을 이렇게 바라보았다. 저게 빨리 팔려야 저 방을 비울텐데라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즈음, 우리 부부는 팔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물건을 팔아치웠다. 버리기로 마음먹은 가구도 완전히 비워서 이제는 갈 곳을 잃은 잡동사니들만 임시로 덩그러니 방에 남았다. 그쯤이 되어서야 겨우 한시름 놓은 우리는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집안을 둘러보았다. 거실과 베란다의 배치가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꽤 오랫동안 지니고 있으면서 들여다보지 않았던 물건들은 대부분 버렸다.
우리 수중엔 물건들을 팔면서 들어온 수백만 원의 현금이 생겼다. 우리 두 사람이 일주일쯤 호화스러운 휴양지로 여행을 갈 수도 있는 수준의 돈이었다. 우리는 얼마 뒤 크리스마스를 맞아 랍스터를 먹었다. 2kg의 거대한 버터구이 랍스터로 두둑이 배를 채웠고 물건을 판 돈으로 값을 치렀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작은 생크림 케이크 두 조각을 사서 함께 집으로 왔다.
그게 전부였다. 남은 돈 중 일부는 아내의 산부인과 진료비에 쓰였고, 또 일부는 꼬물이에게 필요한 물품 몇 가지를 사는 데 사용했다. 그러고도 남은 현금은 아내의 산후조리원 잔금에 보태기로 했다.
이제는 나를 위한 낭비가 없을 것을 안다.
텅 빈 공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나를 위한 낭비가 없을 것이라고. 나의 취미가 설 자리를 잃은 집은 조금 낯설어 보인다.
하지만 이 빈 공간에 머지않아 새로운 물건들이 자리를 잡을 것이다. 알록달록한 아기 물건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고 나면 그곳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웃음이, 미소가, 행복이 있을 것이라는 걸 막연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그렇기에 이 낯섦이 싫지 않다고. 오히려 어쩌면 새로운 어떤 기쁨을 기대하는 그런 기대감이 있다고.
그런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