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 <내 집짓기>
설계 도면이 완성되면서 쉴 틈 없이 본격적으로 공사 준비가 시작됐다. 인부들이 숙식을 이곳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전기 인입과 우물을 파는 작업이 가장 먼저 진행되었다. 공사용 전기 인입은 조로 님께서 신청해 주셨고 우물을 파는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우물을 파는 중간에 단단한 암반층이 있어 평소라면 3일이면 끝낼 작업이 일주일 가까이 걸렸다. 시간이 며칠 더 걸렸지만 그만큼 지반이 튼튼하다 의미이니 긍정적으로 받아 들 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내가 임대한 토지는 앞서 말했다시피 하수로가 없는 필지였다. 그래서 본격적인 공사 시작 전에 옆집 이웃을 만나 이미 만들어 놓은 이웃집 하수로와 우리 집 하수로를 잇는 부분에 대해 협의를 해야 했다.
이웃집은 하수로 파이프들을 묻고 그 위를 타일로 마무리를 해 놓은 터라 내가 하수로를 이으려면 이 타일들을 모두 드러내야 했다. 게다가 공사를 진행하는 약 일주일 동안은 이웃집 차가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이 어려울 수 있었기에 이웃집에서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 많은 공사였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무조건 되게 해야 하는 부분인지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안되면 무릎이라도 꿇을 비장한 각오로 이웃집 아저씨를 만났다.
이웃집 아저씨는 일본인이셨는데 인도네시아어와 영어가 아주 유창하셨다. 고등학교 때 배운 일본어로 인사와 자기소개를 하고 조심스럽게 자초 지종을 설명해 드렸다. 다행이게도 커뮤니케이션은 아주 우호적으로 이루어졌고 덕분에 하수로 공사를 별 탈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드디어 필지 옆에 임시로 지어진 인부들의 숙소에 불이 켜졌고, 생활에 필요한 물을 쓸 수 있도록 물 펌프와 호수를 연결했다. 큰 일들은 그래도 잘 넘어간 것 같아 안도하고 있었는데 그다음 날 아침, 조로님에게 다급한 연락이 왔다.
"어젯밤에 누군가가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이곳에 버리고 갔어요."
조로님은 고양이들이 이미 사람의 손을 탄 아이들인 것 같다고 했다. 버려진 두 고양이는 검정고양이 남매였는데 발리에서는 검정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간혹 이렇게 버려지는 경우가 있다 했다. 나는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두 고양이의 집사인 조로님은 능숙하게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시고 고양이들의 상태를 이리저리 봐주셨다. 털 상태도 좋지 않고 너무 마르고 게다가 너무 어리기도 해서 곧 죽을지, 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나의 빈 땅에
건물이, 생명이
하나, 둘 씩
채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