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남자의 죽음
독일은 어떤 나라인가?
대부분 강대국과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주류다. 맞는 얘기다. 실제로 유럽연합의 경제와 사회를 쥐고 흔드는 것도 독일이다.
미국에서 살다 온 친구는 '미국은 자본주의가 팽배한 강대국이고, 독일은 문화적으로 앞선 선진국이다'라는 표현을 썼다. 강대국이라는 표현보다 선진국이라는 꼬리표가 더 근사하게 들린다.
30년 전쟁을 치렀고, 1,2차 세계대전에 패한 독일이 이렇듯 21세기 선진국의 자리를 꿰차고 올라온 저력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그것은 기본부터 다지는 견고함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에 기인한다고 본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철학과 신학, 그리고 음악에 진심이다. 내가 아는 독일인들은 하우스 콘서트를 열고 클래식 사랑에 빠진 이들이 많다. 그 깊이는 남다르다. 물론 요즘 독일 젊은이들은 글로벌 영향으로 다양성을 띠고 있지만 말이다.
예로부터 그들은 형이상학적 가치와 철학을 중시한다. 어쩌면 철학자들이 많이 양산된 게 우연이 아니다.
어디서나 의자만 있으면 책을 읽고, 토론을 벌인다. 다소 답답해 보이지만 그 안에 느림의 철학이 미덕이다. 그런 이성의 나라에서 히틀러의 만행이 자행되었다는 것은 이성의 내면에 도사리는 광기와 망상이 또다른 그림자로 공존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여성의 백치미에 숨어 있는 비극적 팜므파탈과도 같은?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치가 패망한 후 68운동을 거치면서 국민들 스스로 자기 반성과 사유로 이어졌기에 오늘의 독일이 가능했다.
어쨌든 다이나믹 코리아에서 온 나에게 여전히 느림의 철학은 어색하다.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나 싶게 느리다. 물론 지금까지는 슬로우가 먹혔던 시간이었다. 백년 전에는 어찌어찌 적응했을 법하지만 지금처럼 디지털 사회에서는 정체된 느낌이다. 물론 이면에는 독일이라는 나라가, 무엇이든 오랜 검토와 검증 후에 도입을 하는 편이라 나중에는 잽싸게 기술력이 급성장할 수도 있다.
코로나 혁명이라 할 정도로 독일은 코로나 전과 후가 달라졌다. 디지털 시스템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정서적인 면에서는 어떨까?
독일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으면서도 남을 의식하진 않는다. 독일에는 이웃 노인들이 CCTV를 대체한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왜냐하면 베란다에서 밖을 쳐다보는 무료한 노인들이 카메라가 되어 주변을 감시한다는 것이다. 신고정신도 탁월하다. 나치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또 생각보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상황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다가오는 사회적 분위기는 남의 신상털기는 되도록 안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출신이 어디인지? 이혼했느니? 대학은 어디를 나왔느니, 무슨 일을 했느니 등등....
물론 대화가 무르익고 서로의 벽이 무너지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겠지만 그 시간은 자못 길다.
한 가지 더, 나이 많다고 꼰대노릇을 하진 않는다. 물론 거리에나 대중교통에서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노인들을 보곤 한다.
하지만 이건 나이의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 인격의 문제다. 나이 때문이 아닌 그 사람의 됨됨이가 판단의 기준이다.
우리나라 세대간의 갈등을 보면, 이곳 파독 근로자들과 다음세대들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다.
이곳에 사는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2세들은 부모와 소통이 힘들다는 고백을 한다.
2세들 스스로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가장 크지만, 무엇보다 부모가 한국에서 자신들이 자라났던 시대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자식들에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미 독일화 되어 자신의 의견을 눈똑바로 뜨고 이야기한다. 학교에서 배운 논리적 사고로 대응한다.
하지만 해방 전후에 태어나 살았던 부모들은 가난에 대한 결핍과 자존심의 혼합으로 자식 세대가 못마땅하다.
정서적 소통의 부재다. 아이들을 자기들의 방식으로 바로잡으려 애쓴다.
요즘 것들은 틀렸다고 비아냥거린다.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을 보는 시각도 탐탁치 않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마치 '내가 번 돈을 보내서 한국인들 너희들 잘 살고 있다'라는 자위적 의식도 팽배하다.
하지만 어느 시대건 힘들지 않은 때는 없지 않은가?
태생부터 넉넉했던 젊은 세대들은 오히려 그들 스스로의 상대적 박탈감으로 정서적 우울감을 표현한다. 꼰대어르신은 젊은 것들이 배불러서 그렇다고 애둘러 말한다. 하지만 과거 세대는 가난과 배고픔이라는 기본 결핍으로 모두 공평했다.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의 밑바닥처럼 그저 배고픔만 해결하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결은 다르지만 제각각 상실의 시대를 걷고 있다. 그러기에 모두가 아픈 세대를 살았고 살고 있다.
잠깐 삼천포로 샜다.
하여튼 독일은 타인에 대한 객관적 정보의 탐구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서다. 상대방이 말하기 전까지 쉽게 묻지 않는다. 안물안궁을 실천하지만 근본은 남에 대한 배려다.
그래서일까?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오히려 친구가 될 수 있다. 부모자식 간에도 이름을 부르거나 호칭을 'Sie'(경어의 의미의 당신)가 아닌 'Du'(너)를 사용하기도 한다. 'Du'는 친구 사이나 가까운 사이에서 부르는 2인칭 대명사다.
나에게는 동년의 나이를 넘어 여러 세대의 친구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친구의 중요성을 느낀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모두 죽음의 문턱을 넘을텐데 나이 고하 막론하고 죽음의 번호표를 받은 입장에서 우리는 동등하다.
친구는 정확히 사회적, 내면적 친구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친구는 정확히는 말동무다. 언제고 내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한 명쯤은 인생에서 꼭 필요하다. 특히 사회적 위치가 줄어드는 중년의 시기에는 내 맘 알아주는 친구는 절실하다.
또 하나 내면적 친구는 바로 책이다. 책 속에서 진정한 친구를 찾을 수 있고, 그 친구는 때론 답을 찾아준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자유와 연대라고 누군가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자유롭고 사회적으로는 타인과 연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자유를 책 속에서,
연대는 사회적 친구를 통해 찾았다.
독일에서 만난 절친 중에 68세된 엘리와 39세 된 라우라가 있다.
내가 말하는 친구는, 그나마 규칙적으로 만난다는 전제를 두는 것이다.
'라우라'는 내 이웃의 여자다.
그녀는 쌍둥이 형제를 둔 이혼남과 결혼했다. 그것도 처녀인 상태로. 현재 자신의 아이도 없다.
그녀가 십여 년 전에 결혼했을 땐 아이들이 아직 어린 아가들이었다. 그래서 그럭저럭 새엄마의 정체성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잘 지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쌍둥이들이 성장하면서, 그들이 생모와 자주 만나게 되자 라우라는 많이 힘들어 했다. 키워봤자 생모 찾아가는 꼴도 싫었다. 아이들을 만난다는 이유로 자기 집인 양 초인종을 누르고 비집고 들어오는 생모를 본 적이 있다. 관리를 잘했는지 날씬한 몸매에 독일인 특유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처와 라우라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때 라우라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있었지만, 나중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너무 힘들었노라고"
자신도 독일인이지만 이런 가식적인 자존심이 몸서리치게 싫다는 것이다.
참고로 독일인들은 이혼하고 살아도 아이들 문제로 자주 만나고 아이들 행사 때는 꼭 함께 만나곤 한다.
전아내나 남편도 새로운 아내나 남편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대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주말마다 생모나 생부에게 가는 그야말로 펜델킨더(Pendelkinder/전자추처럼 헤어진 부모집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아이들)가 많다.
우리의 경우 이혼하면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가 허다한데(지금 한국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독일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아이들 조차도 그걸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 멘탈 트리트먼트를 잘하는 것인가 의아했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사람이다.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어릴 때부터 이성적인 판단을 교육받은 터라 상황에 대해 너무 좌지우지 않아야 한다고 배우는 것 같다.
며칠 전 라우라가 나에게 말했다.
"너, 그거 알아?"
"뭐?"
"저 건너편 봐봐. 창문에 예쁜 장식용 조화(造花)들 장식해 놓은 집 있잖아?"
"응. 알지. 저게 생화가 아니라 조화였어? 근데 왜?"
"글쎄, 그 집에 남자 한 명이 살았거든?"
"그래. 육십대 정도로 보이는 그 남자."
"응, 늘 베란다에 의자놓고 앉아 있더라고."
난 원래 주변에 관심 없던 사람이라 눈여겨보지 않았다.
"..."
실베스타는 한 해의 마지막날인 12월 31일을 말한다. 이때는 독일인들이 폭죽도 터트리고 한 해의 마지막날을 보내면서 안녕했다는 것을 자축하곤 한다. 주변 사람들과 만나 샴페인을 마시는 등 파티를 한다. 나는 주변에 폭죽 터지는 소리가 귀가 아팠지만 몸이 안좋아 일찍 잠자리에 들었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카운트다운을 세는 것을 먼 울림처럼 들었을 뿐이다.
"그 남자가 몰랐는데,,, 장애인이었어. 나무로 된 다리를 가지고 있었나봐. 나는 진짜 몰랐지 뭐야. 늘 긴 바지를 입고 다녔으니."
"에효. 자살한 이유가 뭐래?"
"당연하지. 함께 하고 싶은 날에 친구도 없고, 남들은 가족끼리 즐겁게 사는데 혼자 외로우니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아까운 목숨을 버렸겠니?"
이웃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 신고해서 사망소식을 알았단다. 평소에도 그의 눈빛은 항상 우울해 보였었다.
라우라는 나에게 있어 방송국 급 소식통이다. 워낙 상냥하고 친절해서 다른 사람의 고충도 잘 들어준다. 그러기에 이웃의 자잘한 소식들이 그를 통해 들려온다.
남편의 전부인에 대한 안좋은 마음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내 앞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독일인답지 않게 감정을 잘 표현한다. 독일인들은 처음 사귀기 힘들고, 일단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면 깊이 통하게 된다. 라우라가 바로 그런 경우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그녀가 이제는 가족이 멀리 여행갈 때면 우리집에 열쇠를 맡긴다.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가 더 나이들어갈수록 좋은 친구가 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자주 '넌 좋은 친구야'라고 표현해준다.
다른 친구인 엘리는 불가리아에서 왔다. 그녀는 자신의 국가에서 고등학교 역사선생님이었다.
유명한 설치예술가의 아내로 잘 살았는데, 십 년 전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면서 아들이 공부하고 일하는 베를린으로 왔다.
그녀를 만난 건, 6년 전 시리아 난민들이 독일에 왔을 때 난민촌 아이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치고 돌볼 때였다.
그곳에서 아이 돌보미를 했던 엘리를 만나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리스 정교를 믿는 그녀는 신앙심이 아주 두터웠다. 그녀도 독일에서 외국인이기에 우린 서로의 처지를 잘 이해한다. 불가리아에 아직 자신의 하우스를 처분하지 않아 여름마다 고향으로 간다. 이번 여름엔 함께 불가리아에 갈 수 있냐고 나에게 물었다.
불가리아 원조 요거트도 이참에 먹어 보나?
중년의 나이가 되면서 많은 것을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특히 행복에 대한 지나친 관심도 내려놓는다. 만남도 미래의 잠재적 도움에 상관하지 않는다. 이해타산적이고, 비즈니스적인 만남은 최대한 줄인다. 그렇게 맺은 관계를 위해 친구에게 최선을 다한다. 뭐든 지속성을 위해 내 몸을 돌보고 정신을 단련하고 영혼을 닦는 것도 연습한다. 그저 오늘 하루에 집중하고 관리한다.
중년의 삶의 시작은 사회적 친구를 통한 삶의 연대와 정서적 친구인 책을 통해 자유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저속노화로 가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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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자살한 아저씨의 창문 가는 여전히 장식된 조화(造花)들이 놓여 있다.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건지, 그의 물건이 아직 정리가 안 된 모양이다.
남겨진 이의 정리가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가슴 한 켠이 씁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