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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강 작가의 독일삶 Aug 01. 2021

나는 독일의 요양보호사다

슈미트 할머니의 세레나데

 일 주일 간의 꿀맛 같은 휴가를 마치고 다시 일터로 향했다. 맨 먼저 방문을 두드린 곳은 단연 슈미트 할머니 방이었다.

 

 “굿텐 모르겐! 프라우 슈미트!”


참고로 독일어로 프라우(Frau)는 결혼한 여성 즉 부인을 뜻하고 헤어(Herr)는 남성을 뜻한다. 물론 성인이 되면 통상 여성에겐 프라우, 남성에게 헤어를 성 앞에 붙여준다. 

그렇게 우렁차게 외쳐대면 1초도 안 되어 반응이 와야 당연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인기척이 없었다. 방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서늘한 침묵만이 어두운 방을 비추고 있었다. 할머니가 누워 있던 침대 위에는 하얀 레이스 실로 뜨개질한 식탁보가 놓여 있었다.


 독일은 간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3교대 근무에  육체적인 힘을 써야 하는 일이라 사명감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에 기피직종이기도 하다. 나보다 6살 위인 언니도 간호사다. 언니가 간호대학을 다닐 때 집에 와서 종종 우리집 멍멍이의 엉덩이에 주사를 놓곤 했다. 실습한다고 애꿎은 강아지에게 영양제를 투여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동물 학대다. 멀쩡한 강아지는 영양제를 투여받고 더욱 건강해지긴 했지만 주사기의 공포는 강아지여도 싫었을 것. 

나는 어릴 때부터 피만 보면 머리가 어질해지는 통해 의료 관련 직업도 꿈에도 꾸어보 적 없다. 하지만 평소에 어르신들을 돌봐드리는 봉사활동을 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실상은 외국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도 이유였다.

직업교육을 받아 시험을 본 후 생각지도 못하게 합격했다. 일자리는 많았다. 그중 유독 이 양로원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가 일하게 된 양로원은 베를린의 아담하고 멋진 공원 한 가운데 있었다. 햇빛이 좋은 날이면 점심을 마친 어르신들이 양로원 입구 벤치에 앉아 태양을 마중하곤 했다.

 처음 면접 보던 날, 양로원 입구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얼핏 여느 독일 할머니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내 촉수를 건드린 건 하얀 털실에 둘러싸인 스웨터와 그녀를 둘러싼 눈부신 후광이었다. 하얀 백발의 머리가 태양 속에서 환하게 빛났다.

안경을 코 아래로 늘어뜨리며 열심히 뜨개질을 하던 슈미트 할머니였다.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읽었던 딱 그런 풍경이었다. 그녀 옆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실타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고, 그런 고양이를 가만히 제지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였다. 고양이는 할머니의 손을 잽싸게 피해 실타래를 풀어놓고는 실타래 위에서 재주를 부렸다. 그러면 할머니는 반복적으로 손을 들어 고양이를 협박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 광경이 나에겐 어린 시절 추억의 장면처럼 풋풋하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 내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분이 입었던 털실 바지를 버리지 못했다. 보통 집안에 누군가 돌아가시면 고인이 입었던 옷들을 태우는데 어머니는 유독 그 털실바지는 고이 간직했다. 얼마 후 할머니의 바지 털실을 모두 풀고는 다시 그 실로 뜨개질을 하시곤 했다. 그러다가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면 다시 그 실을 풀어버리곤 했다. 한 번은 의아해서 ‘왜 다 만들어놓고선 풀어버리냐’고 했더니 ‘외할머니 냄새를 오래 맡고 싶어서’라며 웃었다. 뜨게질을 완성해버리면 다시 할머니의 냄새를 기억하지 못할까봐 반복적으로 풀고 만들고를 계속 한 것이란다. 당시 우리집에서 키웠던 고양이는 늘 어머니 옆에 누워 실타래가 움직일 때마다 동그란 눈을 반짝이다가 어머니의 손놀림에 맞추어 달려들어 실을 엉켜놓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고양이를 제지하는 듯 마는 듯 엉킨 실타래와의 전쟁을 하곤 했다. 난 그런 고양이가 얄미워 목을 잡고는 머리를 쥐어박기도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냥 둬! 저 녀석도 할머니가 그리운 게지. 인생을 아는 거야.’라는 영문 모를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슈미트 할머니의 광경이 유년시절의 어머니의 모습과 오버랩되자 마음은 더 깊숙이 그녀를 향하게 되었다.


 슈미트 할머니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떠올리자 기분이 좋아졌다. 양로원 면접을 마친 후 슈미트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내가 인사를 하자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아마도 그녀 눈에 키 작은 동양여자가 낯설었던 모양이다.

 난 슈미트 할머니의 잔상 탓인지 이 양로원을 직장으로 선택했다. 5층으로 이루어진 양로원은 각 층마다 간호보조 인력들이 배치되었는데 나는 1층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층은 주로 치매환자와 뇌졸중, 파킨스 등 중증환자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내가 맡은 어르신들 중 한 분이 슈미트 할머니였다. 이는 그녀와의 운명적 만남을 암시했다.


슈미트 할머니는 암 말기 환자였고 치매까지 앓고 있었다. 처음 그녀의 몸을 씻기려고 할 때였다. 할머니는 내 손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톱으로 내 팔을 긁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뜨개질하던 할머니의 푸근한 첫 인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할머니의 가족이나 친구 등 어느 누구도 방문하지 않았다. 그녀의 침대 위 벽에는 젊은 시절의 추억이 가득 담긴 사진들이 놓여 있었다. 그녀에게도 젊고 아름다웠던 시간들이 있었다.

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있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할머니는 마음을 열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고양이가 엉켜놓은 뜨개질 실타래처럼 우리들의 관계는 좀처럼 풀어질 기미가 없었다.

난 간호사실에 기록된 그녀의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독일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슈미트 할머니는 초등학교 프랑스어 선생님이었다. 아들이 있었지만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난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불어를 공부했을 때 배웠던 상송을 기억해냈다.

나나 무스꾸리의 ‘사랑의 기쁨’이었다. 여고시절, 몸이 뚱뚱했지만 날렵해서 ‘날으는 돈까스’라는 별명을 지닌 불어 선생님이 계셨다. 나는 혀 꼬부라진 상송을 부르며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키워갔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후로 가끔씩 슈미트 할머니 방에 들어가서 발음도 어눌한 프랑스어로 ‘사랑의 기쁨’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을 씻기면서, 대소변을 챙기면서, 침대시트를 갈아주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이었다. 하루 근무가 끝나가기 전에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할머니는 늘 하던 대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나를 보자 환하게 웃더니 ‘사랑의 기쁨’을 프랑스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활짝 웃으면서.

우리는 함께 ‘사랑의 기쁨’을 부르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치매환자였지만 그날 만큼은 치매환자가 아닌 평범한 할머니처럼 느껴졌다.

 “슈미트 여사님! 이 실로 무엇을 만드나요?”

 “응. 이거 식탁보야. 우리 어머니가 자주 만들었지.”

 “와! 누구에게 선물하나요?”

 “음. 이거 비밀인데...... 바로 간호사 박에게 선물로 줄거야.”

그러고는 마치 비밀을 지켜달라는 듯 손가락을 내 입에 가져다댔다. 슈미트 할머니는 갑자기 레이스실로 만든 식탁보를 내 머리 앞으로 내밀었다. 그때의 느낌은 마치 자신의 추억을 나에게 고스란히 선물하겠다는 의지처럼 보였다.

 “응. 일 주일 정도 후면 마무리 될 거야. 요즘엔 눈이 영 침침해서 느려.”

그렇게 말했던 슈미트 할머니는 내가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후 마지막 악수도 없이 내 곁을 떠났다.

난 슈미트 할머니가 남겨둔 식탁보를 들고 간호사실로 향했다. 간호사들이 일제히 날 향했다. 그걸 왜 갖고 올라왔냐는 눈치였다.

 “슈미트 할머니는 어디 계셔?”

헐떡이며 이야기하는 날 향해 수간호사가 고개를 돌리더니 직업적인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저기 꼭대기 층.”

 “뭐? 5층으로 가셨어?”

 “아니 더 꼭대기.”

 “…….”

 “아휴, 어차피 암 말기였고 더 좋은 곳으로 가신 거지. 아참, 그리고 그  식탁보 너 주겠다고 계속 슈미트 할머니가 그러던데?”

수간호사는 귀찮다는 듯이 톡 쏘며 간호사실을 빠져나갔다. 간호사들은 어르신들의 죽음을 많이 목격하기에 의례적인 행사인 것처럼 대했다.

옆에 서 있던 간호사 페트라가 멍한 내 눈빛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슈미트 여사는 네가 휴가 간 후 많이 아파서 병원으로 후송했어. 병원 다녀와서는 좀 괜찮은 듯 하더니 이틀 전에 혼수상태에 빠져서 저렇게 허망하게 가셨네.”

난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겨우 슈미트 할머니와의 실타래를 푼 느낌인데 분신인 식탁보만 남긴 채 떠난 것이다. 식탁보를 보니 슈미트 할머니와 함께 불렀던 ‘사랑의 기쁨’이 처연하게 귀에 웅웅거렸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그녀는 떠났다. 사실 기쁨은 잠시였고 사랑의 슬픔만 남았다. 하지만 또 하나 남겨진 것은 레이스 식탁보가 주는 영원한 추억의 시간이다. 나도 아마 이 레이스 실을  풀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할 것 같다. 마치 내 어머니와 슈미트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 같다. 유산처럼 내게 다가온 레이스 식탁보가 자꾸만 오늘도 풀어달라고 떼를 쓴다. 추억이 묻히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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