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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란 Nov 27. 2023

비탈길을 걷는 사람의 탄생

지난 9월이었다.

남편과 나는 며칠 전부터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았다.

"할 수 있겠지?"

"나 20년 전에 가봤는데, 그때 좀 헉헉거리면서 올라갔어. 갈 수 있지."

왜 남편은 자꾸 20년 전의 체력을 말하는 걸까.

나는 20년 전에 소주 세 병 마셨지만, 지금은 세 잔도 못 마시겠는걸.

세월은 그런 것이거늘!!!


우리는 그라우스산Grouse mountain에 가기로 한 참이었다.

왜 가기로 했더라?

아마, 내가 가자고 했을 거다.

트래킹을 해봐야겠다는 생각'만' 하기를 1여 년. 

남편 전 직장 동료들이 그라우스산에 다녀왔는데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한 번 가볼까 싶었다.

남편한테 가자고 하면 당연히 미룰 테니, 나에게 말을 꺼낸 그 직장 동료들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그렇게 결성된 그라우스산 원정대!

그들이 지난 번에 갔을 때는 편도 한 시간이 걸렸다고 했으니, 체력이 안 좋은 우리는 적어도 한 시간 반이면 가겠거니... 생각했다.


10년 전쯤, 북한산에 간 적이 있었는데... 아, 그때는 나도 체력이 좋아서 거의 날다람쥐였지.

백운대 가기 전에 만나는 그 껄떡고개.


그 껄떡고개가 한 시간 코스로 펼쳐진 곳이 그라우스산이었다.


같이 간 원정대원들은 이미 정상을 향해 까마득히 사라졌고, 20년 전에 '좀 헉헉대며' 올라갔다던 남편은 저 밑에서 숨을 껄떡대고 있었다.

그게 아직 1/5도 안 올라간 지점이었다.

1분 걷고 5분 쉬는 남편을 보아하니, 오늘 내로 정상을 찍기는 그른 것 같았다.

일단 남편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가보니... 갔네 갔어.

남편의 스마트워치에선 심박수가 170 아래로 떨어지질 않았고, 이 집의 실질적인 가장인 나는 결단을 내렸다.

"내려가자."


그렇게 우린 쓰라린 패배를 맛봤다.

물론 그라우스산 정상도 맛봤다.

하산한 다음에 케이블카 타고 10여 분만에 도착했고, 원정대원들은 이미 도착해서 놀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남편은 운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자기가 생각해도 이번 패배는 너무 처절했던 것. 이 체력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던 것.

그리고 우린 평지를 걷는 인간에서 주말마다 비탈을 걷는 인간이 되기로 했다.

목표는 내년 가을 다시 그라우스 도전!

아니, 사실 그보다 더 거창한 게 있지만 그건 잠시 마음에 묻어두고...

비탈을 걷는 인간 둘은 그 후 두 달 정도 동안 훈련을 계속했다.

두 달이 됐을 무렵에는 기능성 옷도 사기 시작했다.

장비병을 앓는 것으로 모든 준비를 시작하는 내가 이렇게 오래 버텼던 건, 마음먹기는 쉽지만 미루는 건 더 쉬운 인간이 나와 남편이라는 걸 너무 잘 알았기 때문.

어쩌다 보니, 기능성 옷을 산 이후로는 잠시 트래킹 휴식 중이지만. 


어쨌든, 이렇게 두 비탈을 걷는 인간의 트래킹 훈련기를 써보려고 한다.


이번 일을 하면서 너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었다.

원래 '이번 일만 끝나면!'이라는 말 제일 잘하는 사람이 나니까.

그리고 드디어 몇 시간 전, 이번 일을 끝냈고... 잠시 쉬는 시간이 있을 테니, 그리고 다음 일은 너무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 너무 하고 싶던 브런치 글 쓰기를 다시 해보는 것으로!


과연, 이 말은 지켜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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