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현 Dec 16. 2022

나잇값, 순수함, 늦은 술자리의 상관관계

술을 마지막으로 마셔본 게 언젠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일명 ‘알쓰’의 대표주자로서 내 인생에는 대체로 술이 없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올해만 자정을 넘긴 술자리를 3번이나 가졌다. 놀랍게도 술 한 방울 적시지 않고 맨 정신인 채로.     


2022년이 밝았을 때 가장 크게 마음먹은 것 중 하나가 스스로를 편견에 가두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아보자였는데, 그래서였을까. 이전의 나라면 어림도 없던 시끌시끌한 술자리를 무려 3번이나 가지다니!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나에게는 작은 일탈이었던 술자리에서 차례로 이런 말을 들었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아요.”“혹시 노잼?”“온실 속의 화초같아요” 모두 다른 사람에게 들었지만 묘하게 하나로 연결이 되는 말들이다.     


‘야 이것들아, 니네가 대체 뭘 안다고 그래?’ 갑자기 좀 화가 나는 것은 왜일까. 자격지심 때문이겠지. 내가 스무 살만 됐어도“어머낫, 칭찬이죵? 호호호”하면서 같이 웃었을 텐데 슬프게도 난 스무 살이 아니다.     

저런 말을 건넨 이들의 진짜 의도와 속마음은 나도 모른다. 그냥 웃자고 던진 말일 수도, 아니면 진심을 담아 내뱉은 말일 수도 있다. 문제는 받아들이는 내 태도에 있다. 누가 시켰기 때문에 술을 안 마신 것도, 늦은 술자리를 피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을 즐기다 보니 관심사가 아닌 술 따위와는 자연스레 멀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와 새삼 후회라도 하는 것이니?     


술을 부어라 마시며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주 진지하게 ‘저러고 놀면 정말 재밌을까?’라고 생각하던 과거를 떠올려봐. 모든 선택은 니가 했던 거잖아. 딱히 아쉽지도 않았잖아. 그러게, 말이다. 시간이 남을 때는 친구와 여행을 다녔고 카페에서 책 읽고 집에서는 피아노를 연습하고 퇴근하면 프랑스 자수를 놓던 나의 삶을 누구보다 즐기고 만족하며 살았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 살을 더 먹으려고 기다리는 이 시점에는 나도 모르게 심술이 난다. 나이가 들면 나잇값을 해야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나잇값 못하는 사람들을 나는 얼마나 경멸했는가. “아니, 저 나이 먹고 아직도 저러는 사람이 있어?” 쉽게도 내뱉었던 말들이 지금에 와서 나를 찌르는 말이 될 줄이야.     


아름다운 것만 보고 살았던 나의 과거가 조금씩 부끄러워지고 있다. 물론 부끄럽지 않게 나이 먹기 위해서 당장 타락하는 방법이 내 딴에는 ‘술자리 늦게까지 남기’수준이라니 픽! 웃음이 나온다. 술자리와 나잇값이 대체 무슨 상관인데? 따뜻함과 순수함을 완전히 잃지 못한 나의 현실이 진심으로 걱정되는 밤이다. 친구는 이런 거지 같은 세상에 그런 마음을 가진 내가 그  자체로 장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그건 아닌 것 같아서 별다른 위로가 되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죽고 싶지는 않고 그냥 떡볶이가 먹고싶은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