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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 Mar 10. 2017

함께라서 즐거운 것

La bonne heure

시도 때도 없이 마이크 테스트를...

이라고 생각한 나의 맘과 상관없이

미니는 매우 심각했다.


웍으적에 맞써 싸워야만 하니까.

.

.

.


게임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아가씨 적 나는 게임, 특히 비디오 게임하는 남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거기에 일단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거 아닌가?' 하는 편견.

우연인지 몰라도 사귀었던 남자들도 다 게임에 별 취미가 없는 이들이었는데 결혼하고 보니 우리 집 남자가 게임을 하고 있다. 게다가 비디오, 컴퓨터, 모바일을 넘나든다.


같이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편은 게임을 할 때 유별난 행동을 했는데...



게임미니 3종 패션

"밴드 밴드! 플리즈~"

"내 모자가 어딨지?"

"빨리 빨리! 내 이마 좀 가려줘!"


꼭 머리에 무언가 얹어야만 했다.

모자나 밴드가 주변에 없으면 티셔츠를 뒤집어 쓰기도 했다.

이 이상한 습관의 이유는 같이 살면서 알게 되었는데...  


미니는 평균보다 약한 눈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자신은 이것을 게으른 근육(lazy muscle)이라고 부르는데 근육이 피로하면 운동을 멈추어 버리는거다. 사람이 많은 곳, 움직이는 피사체가 많은 곳에 오래 있지 못하는 것도 그 이유다. 누워서 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할 때에는 무조건 담요 또는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이마에 올리는 습관이 있는데 남편의 어릴 적 앨범을 보니 아주 자그마한 아이일 때부터 이미 그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날의 피로는 게임으로!

같이 살다보니 알게 된 것은 또 있다.

회사 일이 고되거나 정신적으로 피곤한 날 미니는 게임을 했다. 가끔은 아주 극한 기쁨을 느낄 때 게임을 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불금. 이건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용이자 즐거움의 표현 수단이구나 라고 생각하니 그에게 게임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힘들었던 일과를 열심히 들어줄 수는 있어도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까지 내가 풀어줄 수는 없으니까.

내 남편에게도 탈출구가 필요하니까.





작년 여름.

우리에게도 그것이 오고야 말았다.

정확히는 그것들이 왔다.


그것들이 감히 샤워하는 내 남편을 지켜보고 있었고,


아~ 볼 일 보던 나를 놀라 자빠지게 하기도 했다.



우리 집을 습격한 포켓몬 고!


당연히 미니는 신이 났다.

티비를 보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포켓몬을 잡았는데 이게 어찌나 신기한지 지켜볼수록 재미있어 보이는 거다. 초기에 포켓몬 고는 아이폰에서만 다운로드가 가능했다. 아이폰 유저 미니가 열심히 레벨을 올리는동안 안드로이드 유저인 나는 군침만 삼키다가 다운로드가 가능해진 날이 되자마자 게임을 설치했다. 그리고 우리는 포켓몬을 잡으러 집 주변은 물론 파리 곳곳을 걸었다.


급기야는 도시락과 음료를 비롯한 피크닉용품을 다 챙겨서 나갔다.

덕분에 잘 안타던 버스도 많이 탔고, 평소에 눈여겨 보지 않았던 파리풍경도 많이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미니랑 산책하는 시간이 늘어나서 좋았다.


먹구름이 잔뜩 낀 어느 날엔 지인들과 그룹을 지어 나갔고.


태양이 이글거리던 어떤 날엔 몽마르뜨 언덕에 갔다.


혼자 가도 같이 하게 되는 신기한 게임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튈르리 정원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어 더 좋았다.

사진에 보이는 이 날은 유난히도 날씨가 좋았는데 그래서인지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절반이 훨씬 넘는 이들이 포켓몬을 잡으러 나온 듯 보였는데 그 중엔 아빠와 딸,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 새로 시작하는 연인, 노부부를 비롯한 수많은 관계의 사람들이 있었다.


미니의 실제 사이즈와 그림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라고 말해 달라는 남편의 주문이 있었어요.  ^^;


그리고 그 날 그 공간에서 내가 제일 많이 본 건 서투르지만 함께 즐기던 사람들,

가장 많이 들은 것은 그들의 웃음소리,

가장 눈에 띈 것은 행복해 하는 나의 남편이었다.



그 후 늦은 여름 우린 한국으로 한 달 휴가를 갔고 덕분에 포켓몬 고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 날의 튈르리 정원 이후 게임에 별 관심이 없던 내 마음이 달라진 것만은 확실하다.

남편이 좋아하는 게임을 나도 몇 달째 하고 있으니까.

그것도 무려 팀을 이뤄 싸우는 게임.


미니는 잘한다고 나를 추켜세워 주지만 사실 나는 순발력 제로의 게임맹탕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는데 아마도 그래서 게임을 안좋아했나?

괜찮다. 그래도 남편이랑 뭔가를 함께 한다는 건 즐거우니까.


게다가 내 상상속에서만큼은

나는 세계최고 싸움쟁이!

멋진 뇨자!!

같이 사는 것.

함께 한다는 것은 이런거겠지...



"미니, 나 공격하게 병사 좀 보내 줘."

"벌써(보내려고 준비해놨어)! 이런 남편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내가 착한거지!"

"아니!"

"ㅋㅋㅋ"

"ㅋㅋㅋ"


나에게 있어 게임은 함께라서 즐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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