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너는 베트남으로 와서, 온라인으로 영어교육 일을 시작했다. 우리는 노동 비자가 없었기 때문에 바로 베트남 회사에 취직하기는 어려웠다. 아직 나는 일을 못 구한 상태였고, 거너는 집에서 일을 했기에, 하루 종일 집에서 같이 붙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각자의 방이 있어서, 그리 답답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외출할 일이 많지 않으니 집에서 삼시 세끼를 다 해 먹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요리 담당인 나는 부엌에 가야 하는 매 순간이 공포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거대 바퀴들 때문에 집이 부서져라 소리를 질러대서, 나는 나대로 심신이 쇠약해져 있었고, 거너도 내 비명 소리로 집에서 조차 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더 이상 못 버티겠다고 했다.
“.. Go back to Korea.”
뭐? 나보고 한국에 가라고? 2년간 잘 만나다가 베트남에 와 같이 살기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헤어지는 건가. 애초에 베트남 드림을 꿈꾸며 온 것도 아니었고, 같이 살면서 여러 문제에 부딪힐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것도 이런 이유 때문에 헤어지는 건 상상도 못 해봤다. 이렇게 베트남 동거는 두 달 만에 끝이 나는 듯했다.
“ We are going to Korea.”
“ We?”
“ Yes, let’s go back to Korea. I can’t do this anymore.”
그의 입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나왔다. 같이 있는 게 힘들어서 각자 찢어지자고 하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같이’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얘기였다.
순간 거너에게 미안했다. 내가 스트레스받는 만큼 그도 힘들었을 텐데, 나는 거너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 상황에 갇힌 내가 불쌍하고, 어떻게 해야 내가 편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했지, 그걸 거너와 같이 해결해 보겠다는 생각은 잘 못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거너가 얘기 좀 하자고 말을 꺼냈을 때, 으레 이별을 넘겨짚었다. 그는 날 포기하지 않았지만, 나야 말고 그를 이해하는 척하면서 포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미안함, 고마움, 부끄러움 등 여러 감정이 엉켜 심장을 훅 헤집고 들어와 잠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누군들 이 벌레집에서 나가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매일 그렇게 방에 틀어박혀 빨리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랐는데도, 이상하게 막상 한국으로 가자는 소리를 들으니 망설여졌다. 내가 지금까지 여기서 한 일이라곤 집 구하고, 벌레랑 씨름하다 히키코모리 된 것 밖에 더 있나? 시내 끝에서 끝까지 족해도 2~30분이면 오가는 이 작은 도시도 미처 다 둘러보지 못 한 채, 벌레집에만 갇혀 있다 돌아가는 건 너무 바보 같았다. 무모하더라도 인생의 첫 해외살이를 해보고 싶어 여기까지 왔는데, 두 달 만에 벌레새끼한테 져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게 스스로 납득이 안 됐다. 그래서 돌아가는 건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만 해본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벌레약을 놓고, 문 틈도 막고 해 봐도 그들은 끊임없이 나타났으며, 그에 따라 내 히키코모리 생활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단순히 안 나가는 걸 넘어 내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벌레 스트레스였는데, 그다음에는 이로 인해 거너와의 관계가 흔들렸고, 밖에 나가길 무서워하면서 자존감, 의지력 모든 것들이 다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바선생들을 마주칠 때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계속 이러고 살 바에야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스스로가 믿기지 않았다. 자기애가 없는 사람도 아닌데, 저런 미물에 이런 마음이 들다니..
스트레스로 힘들어서 잠시 이상해졌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우연찮게 내 방에서는 일명 ‘자살 다리’라고 불리는 큰 다리가 보였는데, 실연이나 도박으로 삶을 포기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하도 많이 뛰어내려서 그런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붙은 다리였다. 나도 그 다리에 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바퀴집에서 살다보니 그들에 대한 공포감과 두려움이 비이상적으로 나를 지배하는 형태가 되어 있었고, 나도 그런 내가 낯설고 무서워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바퀴 문제를 넘어, 정신적으로 의지할 상대도 없고 몸도 고립되어 있으니 우울증에 가까운 상태로 가고 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물론 거너 말대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한국에도 베트남만큼은 아니어도 벌레는 얼마든지 있다. 한국뿐인가. 전 세계 바퀴 없는 곳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내가 앞으로 남은 삶을 살면서 평생 그들을 안 보고 살 수 있을 것인가. 다른 곳에서 또 마주치면, 벌벌 떨며 똑같은 상황을 되풀이할 것인가.
여기에 더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해 멀어져버린 거너와의 관계 회복에 관해서도 방법을 찾고 싶었다.
이건 혼자 마음 잡아보겠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진짜로 상황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는 특단이 필요했다. 나는 처음으로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