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를 꾸리던 책상, 패스트푸드점 테이블

일을 잔뜩 싸들고 패스트푸드점으로 갔다

by 조인

생계를 위해서였다.

기 위해서는 일해야 한다는 가혹한 현실은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내게 훅 들이닥쳤다.


부모님은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학비를 대지 못하셨고,

용돈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가끔 그게 나의 독립적인 삶의 태도를 위해 유익했다는 말을 부모님의 입에서 들을 때면

나는 화가 난다. 물론 도움이 되기는 했다만,

그 말은 내 입에서 나와야 억울하지가 않다.


학자금은 엄마가 친절히 알려준 학자금 대출로 해결했다. 일단은 급한 대로 용돈 정도 벌어 쓰면 되는 일이었다만, 돈 버는 일이 쉬울 리는 없었다.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시작한 첫 일은

빵집 아르바이트였다. 공장이 달린 꽤 큰 빵집에서 빵을 포장하고 정리하고 계산대를 오가며 쉼 없이 5~6시간씩 일을 했다. 잘한다는 소리도 듣고 일도 즐거웠지만 당시 이 천 원 정도의 시급밖에는 안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꽤 길었던 통학길을 오가며 그렇게 한 학기 정도 고생을 하고 나서, 나는 돌파구를 찾아 헤맸다.


국문학과라는 얄팍한 명함 하나를 들이 밀고 논술 첨삭 지도 일을 따냈다. 름의 고수익 알바라는 말에 솔깃해서, 3학년 재학생 이상이라는 자격 조건을 무시한 채 지원서를 들고 찾아갔다. 당당한 척했고, 실은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함에 두려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간에 자유가 있었고, 시급이 아닌 장 당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게 큰 메리트로 느껴졌다. 포기하거나 3학년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나름의 테스트가 있었다. 정성을 다해 첨삭을 해서 가져갔고, 무사히 통과했다. 처음에는 나를 신뢰할 수 없으니 열 장 남짓 일을 맡겨 주었다. 열심히 해서 가져갔더니 점점 일을 늘여 주었고, 마감 시간 한 번 어기지 않고 기를 쓰고 해내는 나의 성실함과 꾸준함에 나는 나름 에이스 알바생이 되어 점점 많은 일을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덜 받겠다고 해도 더 얹어주는 사태까지.



플러스 펜 세 가지 색깔을 번갈아 사용하며,

어긋난 형식을 수정해 주고 논제의 핵심을 잡아주는 첨삭의 작업은 나름 재미도 있었고,

공부도 되었다. 그러나 일은 일이었다.

늘 시간에 쫓겼고 스트레스도 받았다.

잠이 부족했고 체력이 달렸다.

미리미리 해 두고 싶었지만 삶은 바쁘고 난 늘 피곤했다. 빨리 첨삭본을 돌려주어야 하는 회사 측의 입장도 있었으니, 마감일은 항상 촉박했다.


일의 압박으로 잔뜩 쪼그라든 나는 마감일이 임박할 때마다 일을 전부 싸들고 패스트푸드점으로 갔다. 간단한 음료와 간식을 주문했지만 그건 옆쪽으로 옮겨 두고, 테이블 중앙에는 잔뜩 나의 일을 펼쳤다. 주변의 시선이 있지는 않을까 조금 불편했지만 오래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다.


집에서 할 때는 피곤이 밀려오고 집중력이 떨어졌지만 그곳에 가면 집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장 당 4~50분이 걸리던 일이 한 해 두 해 지나고 익숙해지며 나는 25분에 한 편의 첨삭을 완성해 내는 나름의 베테랑이 되었다. 주변 친구들 4명에게 이 일을 소개했지만 한 명만 남고 모두 혀를 내두르며 포기했을 만큼 나름의 극한 알바였다. 풋풋했던 두 번째 학기부터 시작한 이 일을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이어갔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이 일을 하며 연명했다. 비도 벌고 밥값도 벌고 책도 사고 옷도 사고 커피도 마시며 살았다. 물론 매우 자주 패스트푸드점을 드나들었다.





지금 같았으면 카페에 갔겠지.

카페에 앉아 좀 더 우아하게 좀 더 기품 있게 일하지 않았을까. 그땐 왜 겨우 패스트푸드였을까. 왜 굳이 그곳만을 찾아다녔을까. 나는 더 어렸고, 나는 더 가난했었나 보다 짐작할 뿐이다.


지금도 이 일을 생각하면, 나는 코끝에 기름진 패스트푸드 점의 향내를 함께 느낀다. 쾌적하기보다 앞사람의 흔적이 조금씩은 남아 있어 기름기나 케첩 혹은 콜라 등의 이물질을 물티슈로 슥슥 닦아 내야 했다. 행여 귀한 원고에 얼룩이라도 닿을까 정성스레 자리를 정리하고 앉아, 3~4시간씩을 꼬박 장인정신으로 해내던 나의 일.


풋풋한 스무 살 초기, 패스트푸드점 테이블에 앉아 나는 그렇게 고군분투했다. 그 테이블에서 달달한 데이트가 아닌 공부인지 일인지 딱히 경계 지어지지 않는 첨삭의 말들을 꾸준히 오랜 기간 생산해 냈다. 기름진 향내가 일고 주문하는 소리와 음식이 나왔다는 고성이 멈추지 않았지만 나는 맘 편히 몰입했다. 아무렇지 않게 한 몸 같이 테이블에 익숙해지며 일에 대해, 돈에 대해, 세상에 대해, 그리고 또한 글에 대해서도 조금씩 더욱 알아갔다.




지금은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과 포테이토를 먹으러 가는 곳. 패스트푸드점 테이블에 앉을 때면 나는 그 시간들이 떠오른다.

놀 줄도 모르고 연애도 모른 채 그저 꽤 애만 쓰며 살았던 청년의 나를 기특해하기도 하고 불쌍히 여겨보기도 한다. 기특한 시간을 딛고 가여운 시간도 딛고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귀여운 내 아들과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녹이며 즐거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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