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l 27. 2019

종달새에서 올빼미까지

나의 키워드는 사랑, 무모함 그리고...

올빼미는 딸이 내게 지어준 별명이다. 지혜로운 엄마라고... 그리고 눈이 부리부리 크다고... 그래서 엄마를 그려준다며 올빼미 그림까지 그려서 안겨주었다. 사람이 지혜로운 때도 있고, 바보 같을 때도 있지만, 딸에게 지혜롭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올빼미를 좋아한다. 부엉이도 좋다. 사실 영어나 불어에서는 하나의 단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차이가 없다. 영어로는 owl. 그리고 불어로는 la chouette. 그래서 라슈에뜨를 닉네임으로 잡았다. 불어에서 chouette는 멋지다는 말도 된다. C'est chouette!  이렇게 하면 멋지다고 표현하는 말이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나를 설명하자면, 나는...


사랑에 목숨을 건다


그렇다. 나는 늘 사랑을 꿈꾸며 살았다. 간도 쓸개도 다 빼놓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 그렇게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었다. 모든 관계에 사랑이 필요하고, 그만큼 믿을 수 있어야 진정한 관계라고 믿는다. 미워하는 마음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늘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믿는다. 그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참으로 오랫동안 외로웠기도 했지만, 딸아이를 통해서 사랑을 배웠고, 또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이 사랑이 이성 간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새롭게 배우고 있다.


나는 무모하다


어릴 때 성적표에는 늘 담임선생님이 "조용하고, 얌전합니다. 착합니다." 뭐 이런 말만 써줄 만큼 없는 듯 살았던 나였는데, 사실 그 안에는 "인생 뭐 있어? 도전하는 거야!" 이런 마인드가 깊숙이 숨어있었나 보다. 조용히 있다가도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불쑥 사고를 치는 것이 내 전공이다. 가만히 있다가 불쑥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고, 복사가게 갔다가 거기에 붙어있는 포스터 보고서 갑자기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기도 했다. 아이가 학교 힘들어하자 선뜻 팔 벌려 홈스쿨링을 해줬고, 결국은 반평생을 다 살고 난 다음에 새로이 결혼하고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오기까지 나는 시종일관 무모하고, (좋게 말해서) 용감하다.


인생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즐거움의 기준은 누구에게나 다 다르겠지만, 지겨운 것을 꾹 참고 사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같은 환경에서 좀 더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또한 즐겁지 못한 환경은 즐겁게 개선하며 살아가고 싶다. 현실에 안주하고,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며 살기엔 아직 젊다고 생각한다. 이젠 백세시대니까.



나는 엄마다


이 세상에 엄마는 참 많다. 그런데 굳이 좀 특이한 엄마라고 주장하겠다. 아이를 응원하고 사랑하고 키우는 방식에서, 남들과는 좀 다른 길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이와 함께 학교에서 나왔고, 그 이후로 대학 갈 때까지 쭈욱 홈스쿨링으로 아이를 키웠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냥 아이와 행복하고 싶다는 한 가지만 흔들리지 말자며 끌고 왔더니 어느새 그 과정을 다 넘어서서 아이를 품에서 떠나보내게 되었다.


아이는 반듯하게 자라줬고, 자기 몫을 잘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어려움에 부딪칠 때에도 다시 설 용기를 늘 찾아내는 성실하고 강한 어른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지시하는 엄마가 아닌, 들어주는 엄마가 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그 어떤 친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꼭 글로 정리하고 싶다.



나는 아내다


내조를 잘하는 아내라든가, 살림을 잘하는 아내라든가 하는 게 아니고,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다. 이게 뭐 대수라고 이렇게 적느냐 하면, 나에겐 정말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첫 결혼에 실패하고 다시는 그런 거 안 하겠다고 하던 사람이, 기꺼이 아내가 되면서, 새로운 사랑에 눈을 떴고, "내 주변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매일 듣고 사는, 사랑받는 아내다. 이 이야기가 내 이야기의 반을 차지할 것이다.



건강한 음식을 좋아한다


밥하기는 싫어해도 요리는 좋아한다는 여자들이 많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이제는 밥하기도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그리 즐겨하지 않던 한식 요리는 주로 내가 주관하고, 남편은 양식을 주관한다. 식사 준비부터 정리까지 모두 함께 하고, 어떤 음식이든 감사하며 먹으면서 음식 만들기가 훨씬 더 수월하고 즐거워졌다. 


나의 음식에는 설탕이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매실액도 물엿도 들어가지 않는다. 내가 먹을 것에는 단맛을 전혀 넣지 않지만, 디저트를 만들어 나눠먹기 위해서는 자일리톨을 가끔 사용한다. 향신료도 최소화하고, 건강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해서 되도록이면 재료 자체의 맛을 살려 요리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무설탕에 밀가루 없는 여러 가지 레시피를 올릴 예정이다.



한때 바느질 쟁이였다
By The Sea  (107cm x 160cm)


한때라고 함은, 이제는 손을 놓고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느질을 해온 지 20년이 넘었고, 퀼트도 하고, 옷도 만들고, 작은 실용품들을 만들어왔으며, 수강생을 모집해서 수업을 하고, 함께 전시회도 13년간 해왔다. 그리고 이 전시회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랑과 나눔도 배웠다. 바자회를 함께 해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청소년들을 도왔으며, 함께 가는 길이 얼마나 소중한지 직접 체험했다.



영어공부를 돕는 사람이다


영어 선생님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아이를 학원 안 보내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게 도왔으니 스스로 영어 도우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그리도 영어를 싫어했는데!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원서 읽기를 통해서 영어를 배울 수 있게끔 하는 종류의 일도 했었고, 언제든 쉬운 표현을 통해서 영어를 가까이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다. 이것도 나의 글 주제 중 하나이다. 쉽고 즐겁게 영어를 배우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종달새 같은 사람이다


앗! 앞에선 올빼미라며?


대학시절 불어 전공 시간에 읽었던 교재 내용 중에서, Jules Michelet가 종달새에 대해서 언급했던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을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고, 어쩌면 이렇게 나랑 비슷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구절이다.


대략의 내용은 이렇다. (불어 안 한 지 하도 오래되어서 엉성한 번역을...ㅎ)

Espoir, c'est la vieille devise de nos Gaulois, et c'est pour cela qu'ils avaient pris comme oiseau national cet humble oiseau si pauvrement vêtu, mais si riche de cœur et de chant. L'alouette fait son nid à terre, tout près du pauvre lièvre. Que de soucis, que d'inquiétudes! On pourrait croire que cette infortunée participera à la mélancolie de son triste voisin, le lièvre, mais le contraire a lieu: par un miracle de gaieté et d'oubli facile, l'oiseau national, à peine hors de danger, retrouve son chant et sa joie. Autre merveille: ses périls, ses épreuves cruelles, n'endurcissent pas son cœur; elle reste bonne autant que gaie, offrant un modèle, assez rare parmi les oiseaux, d'amour fraternel; l'alouette, comme l'hirondelle, au besoin, nourrira ses sœurs.


희망, 그것이 옛 프랑스 땅에 살던 골족의 좌우명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깃털은 보잘것없어도 풍요로운 마음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종달새를 국조로 삼았다. 둥지도 땅바닥, 가여운 토끼 옆에 짓고는 늘 근심 걱정과 위험에 가까이 살았지만, 멜랑콜리 해지기 쉬운 그 환경에서도, 막상 어려움에서 빠져나오면 곧바로 근심을 잊고 다시 유쾌함을 찾는 새였다. 또한, 반복적으로 이런 시련들을 겪으면서도 절대 야박해지는 법이 없었고, 늘 박애심을 갖고, 필요하면 동기도 먹여 살리는 특별한 새다.


그 무엇보다도 나는, 어려움을 겪어도 거기에 침수되지 않고, 또다시 유쾌함을 찾아내는 쪽으로는 참 잘하는 것 같다. 음, 자랑의 의도는 당연히 아니고...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부분인데, 그냥 선천적으로 잘 웃고 명랑한 듯하다. 아니, 어쩌면 저 글을 읽고 내가 점차 더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난 다시 밝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쭉 갖고 살아왔다. 아무튼, 나는 잘 웃는 사람이고, 작은 일에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더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그렇게 행복해지는 나의 성격에서 하나를 더 한다면, 혼자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고, 그렇게 남들이 행복해지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내 꿈이다. 예전에 한 인터넷 카페에서 장래희망을 적으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적은 것은 "산타할머니"였다. 언젠가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없이 떠버린 첫 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