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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09. 2021

호박의 연애상담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을 둘러보며 체크하는데, 자고 나면 많은 꽃들이 새로 피어 나를 반긴다. 여름철에 양귀비는 만 하루가 채 가지 않기 때문에 아침을 놓치면 즐기지 못한다. 마당의 물도 오전 중에 줘야 하고, 밤새 뭔가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는지 체크하다 보면 오전은 다 가게 마련이다.


아침을 열어주는 양귀비 꽃


그중에서 호박꽃 체크는 필수다. 암꽃과 수꽃이 동시에 피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늘 잘 체크해야 한다. 요새는 날이 더워서 수꽃이 주로 피는 바람에 암꽃 구경이 하늘의 별따기이다. 때로는 암꽃만 피고 수꽃이 없으면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는데, 그럴 때를 대비해서 수꽃을 냉동해놓기도 한다. 하지만 올해 우리 집에는 호박을 많이 키우고 있어서 국제결혼까지 시킨다면 수꽃 부족 현상은 막을 수가 있다. 


위쪽이 수꽃, 아래쪽에 있는 것이 이미 애호박을 달고 있는 암꽃이다.


호박꽃의 암꽃과 수꽃은 어떻게 구분할까? 아주 쉽다. 딸린 식구 없는 수꽃은 혼자서 우아하게 피지만, 암꽃은 이미 열매를 달고 시작한다. 호박이 작게 붙어있어서 멀리서 봐도 눈에 척 띈다. 그리고 꽃 안쪽을 들여다보면, 수꽃은 하나의 수술이 올라와있고 거기에 꽃가루가 붙어있다. 암꽃은 그보다 복잡하게 생겼고 꽃가루 없이 매끈한 모습이다. 


호박 수꽃. 꽃가루가 잔뜩 붙은 수술이 올라와있다.


암꽃에는 꽃가루가 없다. 매끄럽고 복잡하게 생긴 암술이 있다.


수정이 되는 시간은 보통 오전 중이다. 암꽃은 11시만 넘어도 입을 오므리기 일쑤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된다.


따라서 나는 아침마다 호박꽃들을 체크하며 수정할 꽃이 있는지 확인한다. 일명 호박 연애 상담이다. 어떤 녀석들을 짝지워줄지 고민하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수꽃만 잔뜩 피고 암꽃이 없다. 그러면 기분을 내서 수꽃을 따서 호박꽃 튀김을 만들면 된다. 크림치즈를 넣어서 튀기면 간단한 식사를 할 때 애피타이저로 곁들이기 딱 좋기 때문이다. (레시피 : https://brunch.co.kr/@lachouette/196) 아니면 만두피 대신해서 만두를 빚거나, 샤부샤부에도 넣어 먹으면 풍미가 좋다. 사실 우리는 요새 수꽃이 넘쳐나서 매일 호박꽃을 먹는다!



암꽃을 발견하면, "심봤다!"를 외치며 다가간다. 보통은 같은 종류끼리 중매를 시키지만 같은 종류의 수꽃이 피어있지 않다면 아쉬운 대로 다른 종류에서 꽃가루를 가져온다. 국제결혼을 한다고 그리 다르게 생긴 열매가 달리지는 않지만, 그 안의 씨는 당당히 달라 지기 때문에, 나중에 씨를 받아서 다시 심고자 한다면 이 호박의 씨앗은 피하는 것이 좋다. 자식 세대에서 어떤 모습의 열매가 달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지금 키우고 있는 호박은, 한국 애호박, 조선호박, 단호박, 주키니, 버터넛 스쿼시, 노랑 스쿼시, 펌킨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다양하게 키울 생각은 없었는데,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점점 늘어나서 이제는 호박 부자가 되었다.


주키니와 옐로 스쿼시는 이렇게 중심에서 자란다. 
그 외의 호박들은 대부분 이렇게 덩굴로 한없이 뻗어나간다. 심지도 않은 펌킨이 자라는 모습


펌킨은 심은 것이 아니고, 작년에 먹고 버린 씨가 비료 통에서 대기하다가 봄이 되자 밀고 올라와서 엄청나게 많은 싹이 났고, 덕분에 생각지도 않게 키우게 되어서 여기저기 기르고 있다.


주키니는 씨앗을 심었는데, 너무 많아서 솎아서 나눔도 하고, 남은 것은 산기슭에 버리다시피 심었는데, 신통하게도 거기서 호박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우리의 텃밭에는 3개를 남겨뒀는데, 그게 거대한 크기로 성장을 해서 텃밭을 온통 뒤덮어 버렸다.


호박 키우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편이다. 햇볕이 잘 들고 기름진 땅에 심어준다면 알아서 잘 자란다. 씨앗도 굉장히 굵게 나오기 때문에 발아도 수월하고, 옮겨 심어도 잘 살아남는다. 다만 화분에 심는다면, 다분히 거름을 밝히는 편이기 때문에 비료를 줘야 열매를 맺을 것이다. 만일 베란다에서 마음을 비우고 키운다면, 큰 화분에 심어서 베란다를 기어다니게 해주면, 열매까지 맺지 못해도 호박잎 쌈은 원 없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주의사항이라면, 이렇게 기어 다니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오거나 하면 흙탕물이 튀고 축축해져서 곰팡이 균이 발생하기 쉽다. 흰가루병의 징조가 보인다면 바로 그런 잎은 정리해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열심히 자라느라 영양이 닿지 않아 누렇게 변하는 잎도 정리해주면 좋다. 너무 많은 잎은 아무래도 힘들기 때문에 꽃과 상관없는 곳의 잎이라면 과감히 따도 좋다. 그래서 호박잎 쌈이 흔한 것이다. 


수정 전에는 이렇게 조그맣게 달려있다.


애호박은 두 그루, 단호박도 조선호박도 두 그루씩 심었는데, 엄청나게 번성해서 잎이 무성한데 다들 암꽃이 자주 피지 않아서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대로 조금씩 결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와중이다 보니 암꽃은 애지중지 단계이다. 피기만 하면 바로 달려들어 수정을 시킨다. 만일 수정을 못 시키면 이미 과실 모양으로 꽃 밑에 달려있었더라도 곧 시들시들해지다가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수정을 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붓을 이용한다. 달라샵에서 파는 아주 저렴한 미술용 붓 중에서 가는 것을 구입해서 아예 마당에 내놓고 사용한다. 사람에 따라서 일회용 면봉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일회용보다는 다회용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 수꽃의 수술을 훑으면 이렇게 많은 가루가 묻어 나온다. 그러면 조심스럽게 이동을 해서 암술에 발라주면 된다. 꼭 어느 부분이라 할 것도 없다. 그냥 적당히 발라주면 된다.


붓이나 도구가 없다면, 수꽃을 따내서 꽃잎을 버리고 수술 부분을 막대기처럼 들고 가서 직접 암술에 비벼줘도 된다. 하지만 아무래도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에 나는 붓으로 간편하게 해결하는데, 성공확률은 상당히 높다. 중매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수정만 되고 나면 쑥쑥 눈에 보이게 자란다. 그래서 짝짓기만 성공한다면 어느새 탐스러운 호박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호박으로는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아서 좋다. 양식에서도 한식에서도 쓰임새가 많다. 우리는 이렇게 노랑 스쿼시를 여러 번 수확하는 바람에, 여름이면 꼭 만들어먹고 싶은 라따뚜이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여기서 : https://brunch.co.kr/@lachouette/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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