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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아 Feb 08. 2019

사위는 대접받고 며느리는 대접한다

엉망진창 뒤죽박죽 난장판의 향연 속에도 나름의 질서와 규칙이 존재할 때가 있다. 나의 스케줄러가 그렇다. 별 쓸데없는 자질구레한 일정과 소식을 빽빽하게 적어놓고, 글씨마저 엉망이라 남들 눈에는 정성스러운 낙서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나름의 규칙이란 게 있다.             

  

업무와 관련된 중요 일정은 빨간펜으로 체크를 한다. 개인적인 약속은 파란색으로 적어두고, 그날그날 잊지 말아야 할 일 등은 검정펜으로 기입한다. 일정은 적혀있지 않고 날짜에만 노랑 형광펜으로 체크된 날도 있는데, 그 날은 공휴일만큼이나 내게 의미 있는 날이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처럼 굳이 그 의미를 밝히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중요도 +100’을 내포하고 있는 날.               


그리고 또 하나. 분홍 형광펜으로 표시된 날도 있다. 그 날은 중요도가 +10000쯤은 되는 날이다. 3일 전부터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야 하는 날. 바로 회식 데이.            

          

음주가무를 사랑해 마지않는 나는 맛있는 음식을 신나게 먹고, 부어라 마셔라 술도 마시고, 흥에 취해 노래방까지 접수하는 회식을 손꼽아 기다린다. 내 돈 내고 해도 신나는 일을 은혜로운 사장님의 자비로운 법인카드로 흥청망청 즐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하지만 이토록 회식을 오매불망 기다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신입들이 그러하듯, 나도 회사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는 회식이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회식거부증!! (사진=SBS스페셜)

        

선배들의 재미없는 이야기를 흥미로운 척 듣다가 적절히 맞장구도 쳐야 하고, 술에 취해 인사불성 된 부장님을 댁까지 모셔다 드리는 뒤처리도 내 몫이었다. 막말 상사와 마주 앉으면 몇 시간이고 격려를 빙자한 오지랖 넓은 훈계를 들어야 했고,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에도 신선한 리액션을 날려야 하는 창의력까지 요구됐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압도적으로 가장 싫었던 것은 불판 앞에서 내내 고기를 굽는 일이었다.          

     

회식 메뉴는 누가 법적으로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도대체가 ‘고기’ 아닌 것을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삼겹살, 차돌박이, 갈매기살, 소갈비 등 약간의 변주만 있을 뿐, 어릴 때 고기 한 번 못 먹고 자란 사람들이 모인 마냥 육식을 향한 폭주가 이어졌다. 육류협회의 회식도 이렇게 고기만 먹지는 않을 것 같은데 우리 회사의 회식 메뉴 선택에는 도전정신이란 것이 너무나 결여됐다.           

      

나는 뼛속까지 정통 육식파지만 고기 회식은 진저리날 정도로 싫었다. 애정 하는 고기를 먹지는 못하고 굽고만 있어야 하니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었다. 회식에 일찍 가든, 늦게 가든, 구석에 앉든, 가운데 앉든 언제나 내 앞에는 자동적으로 집게와 가위가 세팅되었다. 막내라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나에게는 늘 식당 아주머니와 비슷한 노동력이 강요됐다.               


슨배님덜, 고기 좀 잡솨봐요(사진=신서유기)


선배들은 고기를 굽지도 않으면서 요청사항은 어찌나 많은지, 고기가 크면 성의가 없다고 구시렁대고 작으면 난도질을 했다고 타박을 했다. 비지땀을 흘려가며 고기를 굽다가 한 점 먹을라치면 고기가 탄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불판 위 고기에 젓가락이라도 닿으면 아주 큰일이나 나는 것 마냥 입으로만 고기를 뒤집어대는 통에 나는 쉴 틈 없이 고기만 굽다가 무참히 전사했다. 아마 그런 불행한 회식이 3년쯤은 계속됐던 것 같다.   

            

‘짬밥’의 축적으로, 이제 나는 회식을 피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부장님의 택시를 부르는 것은 후배들 몫이고, 상사의 잔소리를 피해 사각지대를 선점할 수 있는 노련함이 생겼다. 뜨거운 불판 위를 가르며 고기를 구울 필요도 없다. 남이 구워주는 고기만 야무지게 받아먹으니 권력을 손에 넣은 기쁨이 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꼰대가 되어가나 보다.        

       

그러던 내가     

이제와 다시     

고기를 굽고 앉아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한 달에 한 번, 시가 식구들과 밥을 먹는다. 집안일에는 일절 손을 안대는 시어머님 덕분에 집밥을 먹는 일은 없다. 식당 아주머니가 차려준 밥상에 정갈하게 놓인 숟가락만 들면 되니 나는 얼마나 복 받은 며느리인가. 설거지를 할 일도, 몇 시간씩 음식 준비를 하며 땀 흘릴 일도 없다.               


그 날의 외식 메뉴는 숯불구이였다.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 시누이 부부까지 총 여섯 명이 두 개의 불판 앞에 나눠 앉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와 시어머니, 시매부가 한 불판 앞에 앉았다.           

    

어른이신 시어머니가 고기를 구울 일은 없으니 고기 굽는 일은 시매부와 나, 둘 중 한 명이 맡게 된다. 이럴 땐 보통 먼저 집게를 잡는 사람이 독박 고기 굽기다. 내심 먼저 나서 시매부가 집게를 잡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보통내기가 아니다. 아주머니가 고기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음과 동시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놀림이 날쌔구나 (사진=무한도전)


내가 한 발 늦었다.     

식당 아주머니는 불판에 고기를 적절히 덜어 놓고는 자연스레 집게를 내게 건넸다. 나는 한숨 푹 쉬고 겸허히 운명을 받아들였다.     

          

불 맛이 그대로 베여있어 육질이 살아있는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숯불 위 고기 굽기 신공을 펼쳐야 한다. 손을 풀고 오랜만에 집게를 잡았다. 고기를 굽는 것만으로도 바쁘지만 오늘은 추가 미션까지 주어졌다. 마늘 굽기 작업이다.             

  

얼핏 보면 육즙이 가득 담긴 고기를 숯불 위에 구워내는 것이 더 어려운 작업 같지만 사실 마늘 굽기도 상당한 내공과 정성이 필요하다. 고기는 아랫면부터 익기 시작하더라도 열이 퍼지며 눈에 보이는 윗면까지 서서히 색이 변해간다. 그러니 굳이 뒤집어 확인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익었구나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마늘은 완전한 포커페이스다. 불판에 닿는 아랫면이 새까맣게 타고 있어도 윗면은 하얗고 뽀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노릇노릇 밤처럼 고소하게 익은 마늘을 먹기 위해서는 수시로 뒤집으며 섬세하게 보살펴야 한다. 잡담을 할 시간도, 반찬을 뒤적거릴 시간도 없다. 고도의 인내심과 성실함만이 성공적인 마늘 굽기를 완성한다.               


나는 고기를 굽고 마늘도 뒤집었다. 혼신의 힘으로 불판과 싸우고 있는데 마주 앉은 그는 허공에 젓가락을 저으며 잘 익은 놈을 낚아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찌나 눈썰미가 좋던지 노릇노릇 딱 먹기 좋은 최적의 상태만 골라 입으로 쏙 넣어버렸다. 내가 땀 흘려 구운 마늘도 마찬가지였다. 수 십 번을 뒤집어 맛있게 구워 놓은 마늘을 야무지게 집어 먹었다.               


"우리 사위 잘 먹네. 보기 좋다."

"고기 먹은 지 한참 됐어요. 엊그제 회식하러 갔는데 제가 막내라 굽느라고 하나도 못 먹었다니까요."    

"어머, 우리 사위 그렇게 고생해? 속상하네 정말. 오늘은 많이 먹어. 마늘도 몸에 좋으니까 많이 먹고. 악아야, 마늘 좀 더 구워줘라."


굽는 놈 따로 먹는 놈 따로 (사진=아는형님)

 

장모님 말을 잘 듣는 착한 사위는 고기 말고도 내가 구워 놓은 마늘을 참 많이도 먹었다. 마늘을 세 접시나 리필해 구우면서 나는 유심히 그의 행동을 관찰했는데, 지조 있게도 마늘 한 개를 뒤집지 않았다. 여간 심지가 굳은 것이 아니다.


나는 시어머니처럼 마음이 넓지 못해 굽지는 않고 날름 먹기만 하는 시매부가 못마땅했다. 나보다 거진 1년 넘게 입가(入家)했으니 까마득한 후배인데 선배를 대하는 태도가 영 실망스럽다. 시어머니의 사랑을 받는다는 자신감에 차있어서일까.


혹시 사위는 ‘백년손님’, 며느리는 ‘백년일꾼’이라는 구시대적 발상에 빠져있는 걸까. 나이도 많은 나를 묘하게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 이상한 것은 아무도 그의 행동에 딴지를 걸지 않는다는 거다. 시댁에 가면 그는 자연스레 소파에 앉고 나는 주방으로 소환당한다.               


그는 대접받고 나는 대접한다.            


고기를 굽는 일도 그렇다. 그는 먹고 나는 굽는다. 왜 고기 굽는 일에 사위는 당연 열외가 되는 것일까. 세상에 당연한 일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나도 모르게 불판을 휘젓는 손놀림이 점점 험악해졌다. 마늘을 뒤집는다는 것이 의도치 않게 맞은편 시매부에게로 마늘 샷을 날려버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늘은 그의 와이셔츠 가슴팍에 안착해 짙은 자욱을 내고 말았다.                    


(마늘) 나이스샷!! (사진=마이리틀텔레비전)


"어머나, 미안해요. 마늘이 왜 거기로 날아갔지."

               

악력 조절 실패로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     

마늘 먹고 사람 좀 되라는 의미는 단연코 아니다.               


시어머니는 마늘 봉변을 당한 사위 앞에서 안절부절못하였다. 물수건을 건네고 앞치마를 챙기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너그러운 마음의 시매부는 와이셔츠를 툭툭 털어내고는 ‘괜찮다’ 말하며 시어머니를 안심시켰다.               


나는 마늘을 구울 의지가 사라졌다. 까맣게 타들어갈 마늘 아랫면이 눈에 밟혔지만 일부러 뒤집지 않았다. 시매부는 무심결에 마늘을 집었다가 새까맣게 탄 것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다 탔네."

               

그 옆의 마늘을 집어도, 반대편 마늘을 집어도 모두 회생 불가능한 것뿐이었다. 시매부는 노릇한 마늘을 먹지 못한다는 것에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그는 마늘을 직접 구울 의지는 없어 보였다. 나 역시 마늘을 구워줄 아량 따위는 없다.       

     

"먹지만 말고 좀 뒤집기도 해요."

         

나는 옅은 미소를 장착한 채 시매부에게 한 마디 던졌다. 별것도 아닌 말에 시매부와 시어머니가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목격하거나 김정은이 평화통일 사행시를 짓는 것을 본다면 딱 그런 표정일 것 같았다.        

       

나는 맞은편의 시매부에게 집게를 넘겼다. 시어머니는 시매부의 눈치를 보며 또 한 번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시매부는 집게를 잡고 고기를 구웠다. 이제야 밥을 좀 먹을 수 있게 됐다.           

    

역시, 고기는 남이 구워주는 것이 가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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