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배신했다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살 필요는 없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배신을 당한다. 이른바 뒤통수를 맞는 거다.
그런데 배신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사기꾼도, 생면부지도, 원수도 아니다. 다름 아닌 가장 친한 사람, 가장 믿었던 사람이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 사람이 배신을 한다. 그래서 배신이다.
배신(背信). 한자를 뜯어보니 더 아프다. 등 배(背), 믿을 신(信). 믿었던 사람이 등을 돌리는 것.
깊이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면 그저 '실망' 정도로 끝났을 텐데, 깊이 믿었기에 '배신'이 된다.
배신당하면 일상이 무너진다. 심리적 충격은 기본이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그 뒤로 누군가를 쉽게 믿지 못하게 된다는 것. 사람을 신뢰하는 것 자체가 큰 과제가 된다.
그런데 날 배신한 사람은 어떻게 지낼까?
놀랍게도, 생각보다 잘 산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인과응보가 바로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그 사람이 넘어지길, 똥이라도 밟길 바라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내 인생을 살뿐이다.
더 속상한 건 배신한 사람이 오히려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주변에 관계가 깨진 이유를 설명할 때, 자신을 정당화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를 악역으로 만드는 것이니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다 저 사람 때문이야."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 부조화'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것. 배신한 사람도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기에, 상대방을 악마화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잊어야 한다. 아니, 정확히는 용서해야 한다.
심리학자 로버트 엔라이트(Robert Enright)는 용서를
"상처 준 사람에게 분노할 권리를 포기하고, 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선택"이라고 정의했다.
주목할 점은 '선택'이라는 단어다. 용서는 감정이 아니라 의지적 결정이다.
용서의 심리학 연구들은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 용서는 가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 자신을 위한 것이다. 스탠퍼드 대학의 프레드 러스킨(Fred Luskin)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용서를 선택한 사람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23% 감소하고, 우울증과 분노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여기서 인간관계의 흥미로운 현상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관계의 지속 시간이 길수록 신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그럴까? 십수 년, 그 이상 된 사람들이 배신하기도 하고, 반대로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목숨을 걸고 나를 구하기도 한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올까? 인간관계를 손익으로 보는 사람은 시간이 길어도 계산적이고,
관계 그 자체로 보는 사람은 시간과 무관하게 진심이다.
벌써 오래전 겪은 일이다.
첫째와 둘째의 돌잔치 때 초대한 지인들이 전혀 겹치지 않았다. 4년 7개월 차이인데, 그 사이에 내 인간관계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신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의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 이론이 이를 설명한다. 우리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오히려 느슨한 관계의 사람들이라는 것. 새로운 직장, 새로운 기회는 대부분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해 온다.
몇 년 전 펜데믹 기간에 이를 직접 경험했다.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온라인으로 전 세계 연주자들과 협업했다. 펜데믹으로 직접 연주자들과 녹음실에서 작업하기가 어려웠던 탓이었다. 콜롬비아와 미국의 현악기 연주자, 프랑스의 드럼 연주자. 트위터로 미국 대학 교수와 대화하고, 시카고와 뉴욕의 한인방송국과 연결되어 방송까지 하게 되었다.
특별한 로비나 오랜 인맥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연결의 연결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다. 심지어 뉴욕의 한 글로벌 기업 회장 가족과도 연결되어 그들의 집에서 3주간 지내기도 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내가 앞으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람은 전 세계 80억 명이라는 것이다.
억지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온라인으로 연결된 지금 시대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같은 언어를 쓰는 우리나라에만 5천만 명이 있다. 군대에서 만난 동기,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 신혼여행 패키지에서 만난 커플. 나는 십 수년 전 신혼여행에서 만난 커플과 아직도 연락한다.
보험업계에서는 한 사람의 인맥을 200-300명으로 본다. 내가 10명을 안다면, 그들과 연결된 2,000-3,000명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6단계 분리 이론'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최대 6단계 안에서 연결된다는 것. 페이스북의 연구에서는 이것이 3.5단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던바(Robin Dunbar)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는 약 150명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숫자다. 평생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무한하다.
그래서 뭐?
배신당했다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살 필요 없다는 거다.
날 배신한 사람이 불행해지길 바라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거다.
용서는 망각이 아니다. 상처를 인정하되, 그것에 매이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는 27년의 감옥 생활 후 이렇게 말했다.
"원한을 품고 사는 것은 독약을 마시면서 상대가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배신한 사람은 언젠가는 배신하기 마련이었다. 차라리 지금 알게 된 게 다행이다.
당신이 배신당했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 신뢰하고 사랑했다는 증거다.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당신의 능력이다. 다시 그렇게 신뢰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배신한 사람은 그냥 보내라.
훌훌 떠나보내라. 그리고 당신을 위해 준비된 수많은 만남의 가능성을 보라.
언젠가 그 사람이 다시 찾아와도 상관없다. 그때쯤이면 쿨하게 받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여전히 80억 중의 한 명일 뿐이니까.
오늘도 세상 어딘가에서 당신을 만나길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배신의 상처에 갇혀 있기엔 당신의 남은 만남들이 너무 아깝다.
당신에겐 아직 만날 사람이 80억이나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