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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May 06. 2022

나에겐 만날 사람이 70억이나 남아있다

누군가 배신했다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살 필요는 없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배신을 당한다. 이른바 뒤통수를 맞는 거다. 보통 그렇게 배신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사기꾼도 아니고 생면부지의 사람도 아니고, 나와 원수지간으로 지내는 사람도 아니다. 배신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와 가장 친한 사람이고, 내가 가장 믿는 사람이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 사람이 보통 배신을 한다. 그래서 배신이라고 하는 거다.


 배신을 한문으로 살펴보니 딱이다. 背(등 배) 信(믿을 신). 믿었던 사람이 등을 돌리는 거다. 깊이 있는 관계가 아닌 사람이 나에게 실수를 하든 불이익을 주든 그걸 배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관계가 그다지 없는데 등을 돌리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것이 어느 선을 넘으면 우리는 '사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배신을 당하면 여러 모로 힘들다. 심리적으로는 기본이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일상이 무너진다. 심지어 그 뒤로 누군가를 잘 믿지 못하게 된다.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 큰 과제가 되는 셈이다. 결국 배신도 당하고, 내 인생 여러 가지 면에서도 손해를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날 배신한 사람은 어떻게 지낼까? 배신의 대상자인 나에 대해서는 어떤 면으로는 불편할 수 있겠지만, 사실 생각보다 잘 산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을 배신을 한 사람이 결국엔 인생이 잘 안 풀리고, 나중에 주인공이 멋지게 복수를 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겠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배신을 당한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폭삭 망했으면 좋겠고, 그저 소심하게 길을 걷다 넘어져서 코가 깨지기라도, 아니면 똥이라도 밟았으면 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설령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게 날 배신한 것에 대한 대가로 일종의 벌을 받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냥 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이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뭔가 좀 억울하다. 난 정말 그 사람에게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할 수도 없고, 뭔가 분하고 억울하다. 내가 그렇게 잘못 살았나 싶다. 그런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도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내가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상대방이 생각할까?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그렇게 생각했다면 아마도 배신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한 거 아닌가?
 배신을 했지만 되려 상대방이 나쁘다고 말한다. 그건 또 왜 그럴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기주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져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관계가 깨진 이유에 대해서 설득력 있게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깨진 관계에 대해서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설명하기 가장 쉬운 것은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제일 편하다. 한마디로 “난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다 저놈 때문이다.”라는 것으로 관계가 충분하게 깨질만했다고 증명 내지는 변명을 하고 싶은 거다. 관계가 깨진 것에 대한 책임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상대방에게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쯤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관계다.


 이런 상황 속에 있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나를 배신한 사람은 잊어야 한다. 어떻게 잊을 수 있냐고? 맞다. 잊기 어렵다. 하지만 잊어야 한다. 기억이 아예 없어지도록 하는 차원이라기보다 더 나은 내 삶과 관계를 위한 차원이다. 그런 차원에서 인간관계의 재미있는 현상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흔히 인간관계의 지속시간이 길수록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보통 배신을 하는 사람이 엊그제 만난 사람일까? 아니다. 제대로 된 사기꾼이 사기를 칠 때에도 하루 이틀의 시간으로 작업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다. 왜 그럴까? 지속시간이 길수록 신뢰할만하다는 일종의 기본 고정관념 때문이다. 물론 오랜 시간 함께 하면 신뢰할만한 요소들이 충분히 존재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정말 십수 년, 그 이상 된 사람들이 보통 배신을 하기도 하고, 연락이 뚝 끊기기도 한다. 반면에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 나에게 큰 것을 베풀거나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 수도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있을까? 인간관계를 손익 관계로 보는 사람은 오랜 시간을 관계를 해도 딱 그 정도만 나와 관계하는 것이고, 인간관계를 관계 그 자체로 보는 사람은 손익과 상관없이, 시간의 길고 짧음과 상관없이 인간 자체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된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아주 큰 힘을 쏟을 필요는 없다. 다른 것 없이 그냥 오래된 관계뿐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키기 위해서 뭔가 힘을 많이 쏟아야 할 정도면
그 관계는 한번쯤 살펴봐야 한다.

 물론 나와 오랜 시간 지속된 관계는 그 자체로 소중하지만 그것이 깨지는 것이 두려워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다는 차원이다. 내 마음을 다 보여주고 모든 것을 다 쏟을 만큼의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알고 지냈으니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나, 또 나의 지인과 아는 사이니깐 '그래도 내가 좀 더 조심해야겠지' 같은 생각들 말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관계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오해가 없길 바란다. 그렇다고 관계를 가볍게 여기거나 이미 이루어진 관계를 불편하게 바꾸라는 건 아니다.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첫째 딸과 둘째 딸의 나이 차이는 4살 차이지만 첫째가 1월생이고, 둘째가 8월생이어서 정확하게는 4년 7개월의 차이가 있다. 적지 않은 차이다. 보통 첫째 때에만 돌잔치를 할 때 주변 지인들을 많이 초대하고 둘째 때에는 가족 위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난 그 터울의 간격 때문인지 덕분인지 첫째와 둘째 모두 돌잔치를 나름 갖추어서 진행했다. 신기하게도 가족 친지를 제외한 지인들이 첫째 때와 둘째 때가 전혀 겹치지 않았다. 오히려 전혀 다른 영역의 사람들이 참석한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렇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 완전히 친해지고 좋은 관계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내가 앞으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지금 전 세계에 살고 있는 70억 이상 정도가 되는 셈이다. 너무 억지스러운 것 같은가?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마냥 억지스럽게 볼 일만은 아니다. 심지어 온라인의 글들도 실시간으로 번역하면서 소통할 수 있다. 최근에는 미국에 있는 대학 교수님과 트위터로 대화를 했다.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뿐 아니다. 난 음악 프로듀서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환경에서 악기 연주자들을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서 섭외하고 진행하였다. 콜롬비아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악기 연주자들과 함께 작업을 했고, 프랑스에 있는 아티스트가 드럼과 베이스 기타를 연주해 주었다. 비즈니스적인 차원에 불과할까? 아마도 이후에도 그 사람들과 일을 또 함께 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 내가 그 지역을 가게 될 경우에 연락해서 만날 수도 있고, 반대로 그들이 우리나라에 온다면 난 그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되지 않을까? - 정말 진심으로 그들이 온다면 난 가이드를 자청해서 하고 싶다. 내가 조금만 적극적으로 부지런하게 소통을 한다면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친구의 친구도 연결될 수 있다. 최근에는 시카고에 있는 한인방송국과 일하기로 했다. 내가 마인드에 관한 이야기들을 - 바로 이렇게 쓴 글들을 - 녹음해서 보내기로 했다. 그런 뒤로 며칠 후에는 뉴욕에 있는 한인방송국과 연결이 되었다. 심지어 생방송을 한다. 그 첫 방송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이었다. 전화 인터뷰로 매주 위로와 격려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난 그곳에 어떤 로비를 하지 않았다. 오랜 지인들을 통해서 알게 되고 만나고 연결된 사람들을 통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긴 것이다. 회사명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계속되는 연결들을 통해서 난 뉴욕에 살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의 회장님 가족과 연결되기도 했다. 이런 내용이 좀 의심스러울 정도 아닌가? 하지만 사실이다. 난 그 회장님의 뉴욕 집에서 3주간 함께 지냈다.  


 그게 아니더라도 가만히 생각해보자. 같은 언어를 쓰는 우리나라에만 5천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내가 앞으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더구나 그런 차원에서 좋은 환경을 가졌다. 요즘에는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지만 흔하지 않았던 예전에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전화 한 통만 쓸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쓰게 해 주었다. 담뱃불을 빌리는 것도 모르는 사람과 가능하다. 그것만 가능할까? 담뱃불을 빌리고 나서 담배를 피우면서 간단한 대화도 시도한다. - 아쉬운 건지는 몰라도 난 이제 담배를 끊었다. 남자들은 군대에 가서 전혀 몰랐던 사람들과 만나서 2년 정도를 같이 몸 부대끼면서 산다. 훈련소에서 4-6주 정도 같이 훈련한 동기들과 평생을 연락하기도 한다. 수많은 동호회들은 설명을 일일이 하기도 벅차다. 가벼운 북클럽이나 다이어트 클럽을 통해서도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난 신혼여행 때 패키지에 묶였던 어떤 커플과 15년이 지났는데도 연락하고 만난다.   


그래서 뭐?   

그래서 내가 지켜야 된다고 생각해서 끙끙 앓고 있는 그런 관계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관계를 버리고 리셋하라는 것이 아니라, 너무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누군가 배신했다고 세상 끝난 것처럼 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자. 배신할 사람은 언젠가는 배신하기 마련이다. 사람을 믿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미 배신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게 정의하는 것이 편하다는 뜻이다. 날 배신한 사람 때문에, 내가 배신당했다는 그 억울함 때문에 내 인생이 별로인 것도 내 인간관계가 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다. 그만큼 신뢰하고 깊었기 때문에 충분하게 힘들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당신 삶의 순간순간이 너무 아깝고 정말 소중하다.   


 보험업계에서는 대체적으로 한 사람의 인맥을 200명~300명 정도로 본다. 내가 10명을 알고 있다면 그 10명과 연결된 사람 2,000~3,000명의 가능성이 일단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것을 넘어서 수천만 명, 수십억 명을 봐도 충분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배신한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그 사람이 잘못되기를 바라거나, 길을 가다가 맨홀에 빠져서 죽기를 바라지 말라는 거다. 배신한 사람은 그냥 버려라. 훌훌 떠나보내라. 그리고 당신을 위해 준비된 잠재된 수많은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배신한 사람이 다시 찾아와도 상관없다. 그때쯤 되면 쿨하게 다시 받아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여전히 수천만 명, 수십억 명 중의 한 사람에 속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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