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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Aug 08. 2022

VIP 고객이 되는 비결

나는 오늘의 우수고객이다

 주문한 물건이 일주일째 감감무소식이다. 택배 조회를 해보니 아직도 상품 준비 중이란다. 난 당장 전화해서 따지기로 했다. 


 하지만 고객센터에 항의를 하려고 전화할 때 이런 멋진 다짐을 해보면 어떨까?  

 "그 상담원에게 오늘 하루 중 제일 최고의 고객이 되어보자." 

 마치 [오늘의 우수 고객] 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다짐하면 내 목소리에 얼마나 멋짐이 들어가고 얼마나 지혜로운 단어를 쓰려고 노력하게 될까? 그렇지 않을까? 만약에 온 국민들을 상대로 오늘 하루 모든 전화통화를 통틀어서 가장 기분 좋고 예의 있고 존중하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상금을 준다던지, 아파트를 준다고 한다면 어떨까? 억지로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까? 아니, 그런 엄청난 행운의 선물이 있는데 억지로 할까?  


 그런 행운의 선물은 뒤로 하고, 난 전화를 하기 전에 다짐을 해봤다. 최대한 존중과 예의를 가지고 통화를 하기로 말이다. 왜 그런 다짐을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때는 나도 영업이라는 것을 해봤고 누군가를 고객으로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던 탓이었는지, 입장을 바꿔보면 그런 고객 한 명을 만나면 정말 삶이 괜히 더 의미가 있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고되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이라고 해도,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비타민을 먹은 듯 기분이 좋고, 활력을 얻는다. 그리고 내가 그런 입장이었을 때에도 괜찮은 고객을 만나면 난 상대방을 최고의 VIP처럼 대했다. 어떤 면에서는 당연지사인데 생각보다 고객의 위치가 되면 쉽지 않은가 보다. 아마도 지금 내가 전화를 할 때 이른바 '품위'를 지킨다면 그 직원도 역시 날 최고의 VIP로 대해줄 것임에 분명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 통화를 했다. 최대한 정중하면서 정확하게 내가 궁금하고 불편한 것들을 말했다.  

 "지난주에 주문을 했는데 아직도 택배 출발을 안 한 걸로 조회가 되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요즘 택배가 파업을 하던데 그 때문인가요??"

 "아, 네 고객님, 불편을 드려서 너무 죄송합니다. 고객님 정보를 주시면 정확하게 조회해보겠습니다."

 "아뇨. 심각하게 불편한 건 아니고 궁금해서 문의드렸습니다."

 그리고선 정보를 불러주고 잠시 시간이 흘렀다. 상담원은 너무 죄송하다고 연신 거듭해서 말했다. 난 계속 괜찮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어느 정도 더 기다리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상담원은 정확하게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고객님꺼 따로 표시해서 빨리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회신을 주었다. 그리고 이틀 뒤에 물건이 왔다. 


 정말 그렇게 바쁜 와중에 특별하게 처리한 건지 아니면 내 물건에 대한 배송을 잠시 놓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게 특별한 고객으로 자처하면 오히려 일이 잘 풀린다. 고객이 왕이라며 갑질하듯 진상 부리고 소리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냥 진상은 진상일 뿐이다. 아주 가끔 진상 짓을 하는 사람들을 본다. 어떤 면에서는 상대방이 잘못한 것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진상 짓을 하는 원인의 100%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불편함 중에서 일부러 엿 먹이려고 그러는 경우는 없다. 만약에 엿 먹이려고 일부러 나에게 못된 행동을 한다면 그에 대해서는 응징이든 진상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그런 곳은 없을뿐더러 금세 망한다. 굳이 진상짓이나 갑질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에도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상짓을 하든 안 하든 일은 어떻게든 진행이 된다. 


 마트에 가든, 음식점에 가든 그런 마음 가짐은 모두를 달라지게 한다.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기억에 남을만한 고객이 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식당에서 가서 밥 먹을 때에도 식당 주인과 직원이 기억할만한 그런 존재라고 스스로 다짐해보자.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오늘 그 손님 정말 괜찮지 않았어? 정말 멋지지 않았어? 정말 성품이 좋더라."

 누군가에게 진상이 되는 건 순식간 인지도 모른다.  

 식당에 들어가서 온갖 갑질을 해놓고서 음식이 나오면 기도를 하자면서 대놓고 큰소리로 기도하는 기독교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기독교인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거부하고 싶다. 착각해서 그런 거다. 나만 특별하게 사랑받고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참으로 웃기지도 않은 착각이다. 자기 자신이 이미 그 자리를 지옥처럼 만들어놓고 천국에 갈 생각을 하는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이미 코미디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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