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허세다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람을 제법 알아본다고 생각했다. 뭔가 꼼수를 부리는 사람을 알아본다던지, 진실되지 못한 느낌을 알아채는 그런 차원 말이다. 나름대로 성실한 사람이나 요령을 부리는 사람을 구분한다는 차원도 그렇다. 더 나아가서 나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 내가 신뢰할만한 사람인지, 반대로 나를 신뢰하고 있는지의 여부도 제법 구분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완전하게 아니었다.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겪으면서 알게 되고 나 자신의 모습도 시시때때로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참으로 미련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또,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하다가 오늘 만난 한 사람을 떠올리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오늘 만난 사람은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다. 그 사람과 그의 아내와 함께 만났을 때 그는 적극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랬다기보다 아내가 더 말을 많이 했다. 나중에 그 사람을 종종 보게 되었는데, 아내의 부모님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뭔가 힘이 빠져 있었고, 주눅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난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아주 유약하게 보았다. 자기표현에 서툴고, 성향이 강한 사람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어 자기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그는 외모도 아주 선한 인상에 많이 마른 체형이었다. 그리고 오늘 처음 보았을 때 보다 더 마른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의 삶에 스트레스가 많고 자존감도 많이 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단둘이 만났을 때는 전혀 다른 사람을 발견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비전이 확실하고, 하고 싶은 일도 정확했다. 심지어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야망도 있었다. 그동안 전혀 느끼지 못했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So cool", 아주 멋있었다.
그랬다. 그는 유약하고 주눅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 그저 겸손했던 것이었다. 겸손과 약함을 구분하지도 못하다니 정말 민망스러웠다.
큰 목소리로 뭔가 말하는 사람을 보면서 화를 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열정이 넘치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일을 빨리 처리하는 사람을 보면서 성격이 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적극적인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의 성격이나 성향, 그리고 능력들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확연하게 달라진다. 뚱뚱한 사람도 게으르고 먹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넉넉하고 여유로운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비단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부족하고 힘들고 못마땅한 것들을 찾으려면 어디 한두 가지뿐일까? 나만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거울을 볼 때 얼굴의 어떤 특정 부위를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면 그 부위가 왠지 더 커 보이는 것 같다. 코만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코가 별로인 것 같고 블랙헤드도 더 엄청나게 또렷하게 보인다. 귀만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괜히 귀가 안 예쁘고 별로인 것 같다. 평소엔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뚫어지게 귀를 바라보면 점점 귀가 자라나는 듯하다.
사람을 보는 눈은 결국 마음에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새삼 더 알게 된다. 그러고 보면 아이도 마찬가지다. 내 아이는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도 예쁘고 완벽해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아이는 그냥 그렇다. 주변 친구들에게 내 아이 사진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보여줘도 그냥 시큰둥하다. 영혼 없는 리액션으로 가득하다. 반면에 자기 아이의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거나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에는 그렇게 열정적일 수가 없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든 존재이든 동물이든 환경과 상황이든 속단하고 쉽게 단정 짓지 말자. 생각보다 자주 내가 그런 쉽게 단정 지어지는 대상이 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