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에세이
토요일 오전에는 변함없이 동네 스타벅스에 앉아 글을 씁니다. 시간은 대략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요. 이런 날의 풍경이란 다소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요. 저를 둘러싼 테이블에는 영유아기의 아이들을 동반한 부부 혹은 남편들이 주를 이룹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울거나, 뛰어다니죠. 오늘은 더 유난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곁에 두고 글을 시작합니다. 제 오른편 테이블에서 유독 크게 소리를 지르는 레이시라 불리는 아이를 슬쩍 바라보니 엄마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바쁜 손동작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해요. 레이시는 그런 엄마의 관심이 필요한가 봅니다.
제 앞에는 여섯 살은 되어 보이는 아들을 곁에 두고 백일 갓 지난 또 다른 아이를 안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보여요. 큰 아들은 파니니를 손에 쥐고 엄마를 찾으며 눈물을 글썽입니다. 추측으로는 엄마에게 한가로운 토요일 아침을 선물하기 위한 아빠의 배려로 의지와는 상관없이 카페 외출을 한 아이가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각자의 사연으로 울고, 소리 지르고, 장난치는 아이들을 바라보자니 집에서 느끼는 조용한 날들이 새삼스럽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가족의 일상이란 상상 속에서만 그리는데요. 수다쟁이 에너지 가득한 남편과의 일상 하나만으로도 진을 빼는 저에게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들은 그저 대단해 보이기만 합니다.
어쩌다 보니 가족 중심 동네에 사는 토요일 카페 풍경 묘사가 되어가네요. 주중에는 홍콩에 다녀왔죠. 날이 좋아 시내에 나가 걷고, 글 쓰고, 국수도 먹고, 입에서 사르르 녹는 에그 타르트도 먹었어요. 한참만에 맞이하는 잔잔한며 날들이었습니다. 초고를 시작하고 일상 속 잔잔한 재미에 무심했어요. 그게 벌써 두 달이 되어갑니다. 여러 종류의 무심함을 앞에 두고 하나에만 집중하겠다고 시간을 쓰다 보니 마음이 바스락 해지는 듯해요. 열정을 태우는 일에 몰입하는 시간을 지나 이제 잠시 무심함을 내려두어야 하는 시간으로 들어가는 듯 해요. 마치 항해를 하듯 잔잔한 바다가 펼쳐지다, 바람과 비를 동반한 바다를 마주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의 리듬에 흔들리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내리쬐는 조용한 햇살에 몸을 뉘이는 시간처럼 느껴지죠.
초안의 목적지를 향해 가다 보면 파도처럼 오늘은 매일 다가오지만, 날씨가 변하듯 글 쓰는 시간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매일 변합니다. 나침반에 의지해 변화무쌍한 날들에 순응하기도, 맞서기도 하며 목적지를 향한 긴 여정을 헤쳐나가는 항해사가 된 듯해요. 오늘은 무심함을 내려두고 주변을 돌아보기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동시에 목적지를 향한 집중이 흐려질까 하는 염려도 함께요. 환기라는 단어를 바라보며 매일의 리듬을 잃지 않고 주변과 다정하게 조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 해요.
<마음 사전>이라는 책에는 무심함의 종류를 여섯 가지로 분류해 두었더라고요. 이 부분이 재밌기도 하고, 새겨두고 싶기도 해 메모장에 적어두었어요. 독자님들에게도 무심한 것들이 있을까요?
1. 따뜻한 무심함: 아홉 번은 무심하다 정말 필요한 순간에 다가와 위로의 한마디를 툭 던진다.... 말을 다 껴왔다가 슈퍼맨처럼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나타난다.
2. 호방한 무심함: 남들이 오늘에 일어날 일을 생각해 두는 순간, 그는 우주의 팽창이나, 지구의 종말 등을 생각하느라 바쁘다.... 그는 이 우주가 너무 좁다.
3. 이기적 무심함: 그는 오직 자신의 일에만 열중한다.... 지구가 멸망할 때도 하던 대로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
4. 유니크한 무심함: 그는 조개를 빌리기 위해 돌을 들며, 조개를 배에 올려놓기 위해 누우며, 조개의 속살을 꺼내기 위해서만 손을 사용하며, 먹기 위해서만 입을 벌리는 수달과도 같다.
5. 작전상 무심함: 관계의 질량보존의 법칙을 믿고 적극 활용하려는 그는, 스스로가 무심해야 그쪽에서 관심을 드러내리란 계산을 철저히 하고 있다.
6. 무심한 무심함: 겸염쩍기 때문이다. 진지한 것도 열정적인 것도 성취하는 것도. 오직 낯간지럽기 때문이다.... 그러다 무심함에 익숙해져서 그 방면에 관한 한 일인자가 된다.
알아도 모르는 척할 때가 필요하고, 모르면 곤란한 상황도 있잖아요. 무심함에 집중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 낱말이 가진 의미가 생각보다 훨씬 깊은걸요. 하나의 일에 집중하며 다른 일을 모르는 척하던 지금의 무심함은 어디에 좌표를 찍고 있었을까요? 그나저나 따뜻한 무심함, 너무 좋지 않아요?
이번 토요일 아침에는 이 무심함이라는 낱말에 달려들어 봅니다. 영어로는 Nonchalant 정도 되겠어요. 차분하게 어떤 상황에도 놀라거나 걱정하지 않는 경지의 태도이기도 하며, 어떤 일에 무관심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죠. 양면을 오고 가는 무심함을 적절히 조절하는 마음의 스위치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주말은 이 무심함의 스위치를 어디에서 on, off 해야 할지, 아니면 중간 어디 즈음으로 맞춰 두어야 할지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어요. 제 글을 향한 독자분들의 무심함은 언제나 off 이길 바라면서요.
새로 시작하는 한 주는 런던에서 보냅니다.
공간을 오고 가며 일하는 사람에게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시간은 주옥같아요.
아름답고 귀한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토요일에 올게요.
오늘은 여기까지에요.
잘 지내다 다시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