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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수집가 Jun 06. 2024

추워하는 엄마 손을 잡고 아이가 한 말

아이의 따뜻한 말 한마디  

하루는 아이 하원하고 비가 왔다. 하원할 때쯤 하늘에 구름이 가득 끼더니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당일 아침까지만 해도 비 예보는 없었는데 오후에 보니 비가 온다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우산을 챙겨 수지를 데리러 갔다. 버스에서 내린 수지는 여느 때처럼 놀이터에 가려고 했지만 오늘은 비가 와서 못 갈 것 같다고 얘기하니 수지는 "그럼 우산 쓰고 산책하자" 라고 했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놀이터 안 가고 집으로 바로 가나 싶었는데 수지는 순순히 그러지 않았다.


하원하고 노는 게 즐거움인 수지는 비가 와도 자기의 즐거움을 야무지게 챙긴다.




그래서 우산 쓰고 장화 신고 빗속 산책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내린 비에 우산 없이 급히 뛰어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비가 오는 탓에 아이들은 다 집으로 바로 간 건지 평소에 많던 아이들도 이 날은 없었다.


덕분에 나는 아이와 같이 빗소리만 들리는 고요함 속에서 우리만의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좋아하는 유니콘 우산을 쓴 수지는 우산을 썼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기분이 좋았다. “엄마 이거 봐바, 여기 안에 유니콘이 많아!” 하며 까르르 웃는다. 아이가 들기엔 아직 조금 커 보이는 우산인데 수지는 작은 두 손으로 손잡이를 꼭 잡고 걸었다.


그리고 빗물 맞고 있는 나뭇잎과 돌을 보고 한 마디씩 인사도 한다. 비가 온 지 얼마 안 돼서 땅에 빗물이 고여 있지 않자 "물이 왜 없지?" 하며 물을 찾기도 하고, 공원 정원에 있는 돌 위를 걸으며 "엄마 징검다리야" 하며 폴짝폴짝 뛰기도 한다.


비가 와서 풍경은 우중충한데 이 와중에 수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환해 보였다. 아이는 비 오는 날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즐겼다. 비가 오니 수지의 해맑음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디에 있든 자기만의 고유한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아이는 비 오는 회색빛 풍경도 환한 노란빛으로 만들었다.

 



아이랑 같이 빗속 산책하는 게 참 좋다는 걸 새삼 느꼈다. 아이 발길이 닿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나도 비 오는 날을 즐기고 있었다. 물이 고인 곳에서는 물도 첨벙첨벙 밟아보고, 빗물에 젖은 나뭇잎은 어떻게 생겼는지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그 순간을 즐겼다.


그런데 얇은 반팔 블라우스 하나 입었던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추워졌다. 수지에게도 춥냐고 물어보니 수지는 “난 괜찮아. 그런데 조금 추워”라고 말했다. 수지도 조금 추운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 수지가 우산을 계속 들고 있는 게 힘들다고 해서 내 우산을 같이 썼다. 한 손엔 수지의 손을 잡고 한 손엔 우산을 들었는데 내 손을 잡은 수지의 손이 너무 따뜻했다. 따뜻한 수지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내 손을 녹여주었다. 수지 손을 잡고 내가 말했다.


“수지야, 수지 손은 어쩜 이렇게 따뜻해?”


“엄마 손 따뜻하게 해 주려고.”


이 말에 감동이 밀려왔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이쁜 말이 내 마음에 닿으면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울컥한다. 어쩜 이렇게 이쁘게 말을 하는 건지. 그리고 감동받은 마음을 아이에게 고마움으로 표현했다.


“수지야 엄마 감동받았어. 어쩜 이렇게 이쁘게 말하는 거야 우리 수지는.”


수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내 손을 잡고 여전히 즐겁게 빗속 산책을 했다. 몸은 추웠지만 수지가 잡은 손은 내내 따뜻했다. 내 마음도 참 따뜻했다. 비 오는 날의 행복한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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