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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Oct 28. 2017

애인과 사랑

연인과 꿈을 공유하는 낮은 목소리

거기 애인이 산다 / 김선호


눈썹에 사는 애인을 불러내는 목관악기의 숨구멍이 위 아래로 투덕투덕 열렸다 닫혔다 할 때마다 고등어는 냉장고에서 눈을 뜨고 보아구렁이가 들어가는 굵은 색소폰의 목구멍에서 낮은 저음이 스물스물 기어나와 온몸을 두껍게 칭칭 감아돌면 밤이 온다


어제의 슬픈 그림자는 탄지의 언어가 뒤돌아보는 콘트라베이스의 독백일지도 모른다 아 그런데 애인과 꿈을 공유하던 낮은 목소리는 지금 뭘 하고 있는거냐   질질 끌고 다니는 슬리퍼에 꾀죄죄한 하루가 붙어있고 주머니에서 꺼낸 자잘한 내일의 동전들은 버리지도 쓰지도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어 절그럭대고 있구나 그리고 오늘도 그 자리에 서서 색소폰은 그렇게 궁시렁궁시렁 대고만 있네 하지만 오늘밤은 기타에 툭툭 튀는 그리고 똑똑 끊어지는 스타카토와 뮤트를 넣어봐


차곡차곡 개놓은 애인의 양말에서 일주일이 자리 펴고 살까 아닐까 바닷가에 사는 바람은 도시로 마실을 올까 안올까 갈매기는 분명 따라오지 않을거야 제멋대로 뛰어노는 기타 줄의 허리에 머리가 흔들거리고 또 어깨가 들썩이고 있는데 그 여자의 다리는 참으로 은제 주각처럼 미끈하다 그것은 예쁜 것일까 아니면 아름다운 것일까 너무 쳐다보면 닳아 없어지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눈에 안대나 하던가


예쁜 애인의 침은 달달한 것일까 아니면 씁쓸한 것일까 아냐 너무 꿀처럼 달아서 꼴깍꼴깍 넘어가는 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팩 토라져 돌아서면 엄청 쓰단말야  그도저도 아니면 키스도 못하는 것일지도 몰라 이것은 수상한 이야기일까 아무렴 수상하고 말고 그런데 채권은 채무가 되는 것일까 그럴지도 몰라 그러면 애인은 채무 보증인 것일까 아니면 채권추심인 것일까


법원에 갈까 내가 원고가 될까 아니면 피고가 될까 애인은 증인이 될까 아니면 참고인이 될까 그것도 아니면 피의자 신분이 될까 눈썹에 산다는데 소환장은 어디다가 보낼까 마음에 보내야 하는 것일까 눈으로 읽으면 눈썹에 주소가 스며드는 것일까 세수를 하면 주소가  지워지니까 그냥 자야겠다 그냥 자려고 할 때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밤이 저혼자 논다  밤이 저혼자 놀면 꿈이 이루어지고 또 꿈은 밤 속으로 스며든다 거기 애인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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