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구멍 뚫린 하늘 아래 친퀘테레 우비 여행

반백살 싱글언니 시간여행 (13)

구멍 뚫린 하늘 아래 친퀘테레 우비 여행 

친퀘테레에서 비 오는 날의 수채화


1년 전 오늘은 이탈리아 지중해 해안 절벽 마을 친퀘테레 중 몬테로소알마와 베르나챠 두 마을을 보러 가기 위한 날이었다. 이 마을들은 내가 머물고 있던 마날로라 마을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눈으로도 보이니 마을이 산동네만 아니면 걸어서 20분이면 갈 마을이다. 하지만 친퀘테레 마을 전체가 해안가 절벽 마을이어 등산을 할 경우 두어 시간, 그리고 대중교통은 기차로만 가능하기에 기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로 3~4분 진짜 가깝다. 


피사의 탑을 보러 갔던 전날과는 달리 이 날은 창 밖에서 빗소리는 유달리 더 크게 들렸다. 바닷가여서 그런지 유악 더 크게 들렸다. 우산도 없는데 막막했다. 그렇다고 창 밖 비만 쳐다보면서 숙소에 머물러 있기에는 시간도 돈도 아까웠다. 폭우여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는 하루를 그냥 버릴 것 같아 그냥 작은 가방을 메고 문을 나섰는데 길거리에 우비를 가고 기차역으로 가는 여행객들이 보였다. 기차역으로 가는 도중 우산을 사기 위해 작은 선물가게에 들러 국민학교 때 이후 처음으로 우비를 사서 입어봤다. 우산으로만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아 나도 길거리 배낭여행객처럼 우비를 구입한 것이다. 우비를 사는데 이 조그만 구멍가게 같은 선물가게 여자 사장님이 날씨가 안 좋아서 여행하기에 힘들 텐데 너무 안타깝다며 나를 토닥인다. 춥고 비 오는 날 이 분의 말 한마디가 추웠던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 주었다. 우비를 입고 기차를 타니 기차에는 나랑 비슷한 우비를 입은 여행객들이 눈에 띄었다. 기차 창문에 나의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우비소녀.

비오는 날 친퀘테레 우비여행

이렇게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 몬테로소알마에 도착하여 걷기 시작하는데 비는 점점 더 거세어졌다. 바닷가여서 바람도 심하게 불고, 이런 날에 돌아다녀 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여행지에서는 비가 와도 여행을 한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배낭 여행객들은 나처럼 우비 여행을 할 것이다. 


폭우 속에 해안가를 걸으니 걷기에는 길도 미끄럽고 힘들지만 나름 비바람에 파도치는 해안가는 이쁘다. 

비오는 날 몬테르소알마레 해안가


해안가를 따라 마을로 올라가 보니 비에 젖은 길도 마을도 아늑하고 예쁘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가 따로 없는 듯했다. 

몬테르소알마레 비오는 마을

비 오는 날에도 이 마을 한 바퀴를 둘러보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오전 9시 넘어 출발했는데 점심시간까지 할 게 없었다. 그래서 다시 기차역으로 발을 돌려 친퀘테레의 또 다른 마을 베르나챠에 걸어갔다. 기차역으로 가는 중 보지 못했던 해안가 절벽 바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몬테르소알마레 해안가 절벽바위 풍경


폭우 속 절벽 바위 풍경 그냥 짠했다. 절벽에 만들어진 사람 모양의 동상. 어깨에는 또 다른 무거운 다리를 메고 폭우를 견디어 내는 모습에 그냥 울컥했다. 비 오는 날 우비 맞으면서 그냥 이렇게 걷고 있던 나 자신이 초라하고 거지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 동상을 보니 이 동상에 비하면 내 신세는 아무것도 아니란 것. 거친 비바람을 맞으면서 꿋꿋하게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동상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위로를 받으면서 나는 그다음 마을 베르나챠로 향했다.


베르나챠는 몬테로소알마레와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몬테르소알마레는 직선같이 정렬된 느낌이었다면 베르나챠는 그냥 자연 그대로 곡선의 분위기 같았다. 그냥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거기에 아무런 조미료를 치지 않고 그 위에서 사는 것처럼 보였다. 

바위 위에 지어진 건물

집들도 신기했다. 그냥 바위 위에 바위 아래는 물이 흐르고 바위 구멍에 집에 들어가 지어진 집 너무 신기했다. 베르나챠는 해안가 마을도 아기자기, 정감 가는 부둣가 마을이었다.

친퀘테레 부둣가 마을 베르나챠

이 부둣가에서 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들어섰는데 비가 와서인지 식당 안에는 여행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음식을 뭔지도 모르면서 시켰는데. 왠 걸? 멸치튀김이 보였다.

베르나챠 부둣가에 있는 식당과 멸치튀김

한국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멸치튀김을 이탈리아에서 먹을 줄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그것도 비 오는 날 부침개 대신 멸치 튀김을 먹다니.. 그런데 부침개보다 멸치튀김이 더 감 칠 났다. 추웠던 내 몸을 멸치 튀김이 따뜻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았다.


이 날 나는 코르닐리아르 들리고 저녁 때 즘 기진맥진한 상태로 나의 숙소인 마나롤라에 도착했다. 숙소 근처에 오래간만에 약국에 문이 열려 혹시 모를까 봐 아스피린을 구입했다. 내가 아는 약이라고 아스피린 밖에 없어 혹시 열나고 머리가 아플까 봐 약국에 들렀다. 여행지에서 아프면 안 되기에 생존을 위해 아스피린과 챙겨 오지 못한 얼굴로션과 세안제를 구입했다. 

아스피린과 세안제

세안제가 없어 바디워서로 며칠 세안을 했으니...

비 오는 날 반백살에 진짜 배낭여행객처럼 여행을 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니 그냥 웃음밖에 안 나왔다.


거지같이 하고 다니던 배낭여행이었지만 1년 뒤 오늘 돌아보니 그 여행도 다시 가고 싶다. 1년 뒤 오늘 나는 여전히 칸트처럼 오전에 도서관 가기 전 공원을 들렀다. 이렇게 공원을 걸을 수 있다는 자체도 작은 선물이었다. 걷다가 공원 내 화장실 내 유리창에 보인 나의 모습을 보니 1년 전 오늘은 우비를 쓰고 사진을 찍었지만 1년 후 오늘은 또 추위를 감싸줄 모자를 쓰고 다니고 있다.

1년 후 나의 모습

이 모습이 그다지 싫지 않다. 꾸미지 않는 모습은 1년 전 오늘이나, 지금의 오늘이나 아마 1년 후 오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아침운동을 하고 도서관에서 맞이하는 나의 하루 시작. 도서관 계단에 이렇게 쓰여있다.

안성 보개도서관 창문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그래! 난 지금은 거지처럼 초라하지만 난 오늘 눈 부시게 살 거야.


이렇게 나에게 말을 건네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왜냐하면 1년 후 오늘을 위해서.

이전 12화 궁금한 피사. 그래서 가 본 피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