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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의 미학! 지중해 해안절벽 마을 이탈리아 친퀘테레

반백살 싱글언니 시간여행 (11)

불편함의 미학을 일깨워 준 지중해 해안절벽 마을 이탈리아 친퀘테레

지중해 해안 절벽마을 친테퀘레?


1년 전 오늘 집 나선 지 열흘이 넘은 11일 차 되는 날. 드디어 진짜 가보고 싶었던 지중해 해안 절벽 마을 이탈리아 친퀘테레를 가는 날이다. 마음은 이미 이탈리아에 도착한 날부터 친퀘테레에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친퀘테레에 대해 공부를 하고 온 것은 아니다. 그냥 바닷가 절벽마을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는 것. 이것만 내가 알고 있었다. 그 뒤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머물렀던 피렌체 호텔에서 내가 이미 정한 친퀘테레 마나롤라 마을까지 구글지도를 보니 159km 거리, 4시간 정도의 거리. 해안가 절벽마을이어 차들도 많이 안 다니는 마을이다. 그래서 보통 기차로 이동한다. 피렌체 역에서 마나롤라까지 가는 직행 기차는 당연히 없다. 피사에서 한 번, 그리고 라스페찌아에서 이렇게 두 번 환승을 해야만 갈 수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나는 여유 있게 시간 맞추어 무거운 캐리어와 배낭을 메고 이미 핸드폰으로 예약해 둔 기차를 타고 마지막 환승지 라스페지아까지 잘 타고 왔단.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이동거리 시간을 활용해서 최대한 공부도 하고 윌라 오디오북도 들으면서 왔다. 그런데 라스페찌아 역에서 웹 3.0에 관한 실시간 줌 라이브 수업이 있어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는 라스페찌아 역 카페에 겨우 자리 잡아 듣고 있는데 시간을 잘못 보고 기차를 놓친 것이다. 라스페찌아 역에서 내가 숙소로 잡은 마나롤라 마을까지 기차로 딱 3분 거리이다. 그런데 기차는 1시간에 딱 한 대. 바로 옆 동네이지만 절벽 마을이어서 택시를 부를 수도 없는 불편한 마을.  나는 기차표도 다시 사야 하고 듣고 있던 웹 3.0 줌수업도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완전 허둥지둥 꽝이었다. 이미 기차는 떠나고 나는 한 시간을 그냥 멍하니 기차역만 바라보고 다음 기차를 기다렸다.

라스페찌아 역에서 마나롤라 행 기차를 기다리면서

기다린 끝에 겨우 기차를 타고 3분 거리에 있는 마나롤라 역에 도착했다. 

절벽마을이어 기차역도 절벽 안에 있고 절벽 터널을 걷고 나와야만 마을 입구가 나온다. 터널까지 걸어 나올 때는 나는 몰랐다. 이제부터 고생시작이라는 것을. 터널 끝 마을입구부터 산동네 달동네이다. 




차도 안 다니는 산동네. 나는 무거운 배낭과 캐리어를 질질 끌고 또 계단에서는 캐리어를 들고 겨우 올라갔다. 20분 동안 계속 등에는 메고 손에는 질질 끌면서 숙소를 찾아 구글지도를 보면서 올라갔다. 윤여정 선생님이 좋아하는 돌길. 이서진이 왜 싫어하는지 공감하면서 돌길에서 끌리지도 않는 캐리어를 끌고 겨우 겨우 꼭대기 마을까지 올라갔다. 숙소는 교회 근처였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 여기서부터는 캐리어를 끌 수도 없는 그냥 계단 오르막길. 죽음이었다.


친퀘테레 마나롤라 숙소 근처에 있는 교회 골목길

나는 여행을 떠나면서 내가 준비한 것은 그냥 숙소와 교통 예약만 하고 아무런 공부도 없이 그냥 무작정 배낭 메고 도망치듯이 온 나에게 잘못이 있었다. 이 오름막길을 오르는데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난 이 좁고 힘든 계단 길을 올라 겨우 숙소에 도착했는데 예약한 숙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기가 막혔다. 힘들게 올라왔는데 아무도 없고 문만 굳게 닫혀 있고. 문을 자세히 보니 연락처가 있었다. 영어에 대한 울렁증이 있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숙소에 들어가려면 연락을 할 수밖에. 연락을 했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번호키를 입력해야 하는데 리스닝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아무튼 번호 숫자는 겨우 알아듣겠는데  그다음 용어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숙소 주인이 계속 반복해서 말을 한다. 

트라이앵글, 업!

근데 그게 뭐냐고?

나중에 번호키를 자세히 보니 위쪽 방향의 삼각형 화살표를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 설상 그렇다 하더라도 난 영어로 이 위쪽 방향의 삼각형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겨우 겨우 알아듣고 굳게 닫힌 숙소 문을 열었던데 이건 웬걸? 헉! 

더 기가 막혔다. 문 열자 가파른 계단이. 악!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리고 나의 방은 꼭대기 3층이었었다.

마날롤라 숙소.

지금도 생각하면 어떻게 올라갔는지 모른다. 아마 죽을힘을 다해 올라갔을 것이다. 힘이란 죽도록 쓰면 나오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올라간 숙소. 방은 내가 이탈리아에서 머물렀던 호텔 중에 제일 넓고 전망도 좋았다. 창도 여러 개 있어서 절벽마을 골목길도 보이고, 건너편 지중해 바다도 보인다. 힘들었지만 맘에 들었다. 이게 바로 불편함의 미학인 것 같았다. 이곳 마나롤라는 5일 동안의 나의 안식처였다. 


마날롤라 숙소에서 바라본 해안가 절벽마을과 뻐덕거리는 침대

짐을 대충 내려놓고 허기진 배와 동네 한 바퀴를 둘러보기 위해 다시 숙소를 나서는데 발걸음이 너무 가벼웠다. 올라올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내려가는 것은 이렇게 가뿐하다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니 예쁜 모습들이 하나씩 하나씩 들어온다. 지중해 바다도 들어오고. 내가 타고 왔던 기차역의 기차도 보이고 바다를 둘러싼 절벽마을도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아 친퀘테레 마나롤라에서 바라본 지중해 바다

너무 예뻤다. 그동안에 힘들게 올라왔던 그 고생이 이 풍경에 다 씻겨져 나갔다. 불편한 고생만큼 그 아름다움도 더한 것 같다. 남들은 50 넘으면 편하게 패키지여행을 하는데 나는 배낭 메고 캐리어 질질 끌면서 개고생 하는 것. 그래도 남들 안 하는 경험을 하니 내가 그들보다 더 나은 것 같다.

친퀘테레 마나롤라에 배낭 메고 캐리어 질질 끌고 여행하는 반백살 싱글언니

퇴사하고 어딘가 가야 할 것 같아서 도망치듯이 떠난 배낭여행. 여행하면서도 공부를 하고 앞날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아 불안했지만 불편한 동네 친퀘테레가 나에게 준 선물은 위로였다. 불편함 뒤에 아름다움. 고생 끝에 낙이라고 알려주는 암시와 같은 선물 같았다.


마나롤라에 도착한 날이었던 1년 뒤 오늘 나는 인생 여행을 하고 있다. 1년 뒤 오늘 꼭두새벽 5시도 강의 그리고 저녁 9시에도 강의가 있다. 저녁 9시에는 왕초보쌤 프로젝트에서 하는 강의다. 내가 공들이는 프로젝트. 

주말 동안 휴식 없이 달려온 나였기에 많이 지쳤던 나. 꼭두새벽에 강의를 마치고 일단 부족했던 수면을 다시 보충하고 저녁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갔다. 이 날도 마찬가지 나의 여행을 공원에서 시작했다.

안성맞춤랜드에서 새로운 인생여행

공원 내 가로수길을 걸으면서 나의 머리를 정리하고 나의 새로운 인생 친구 거위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길을 걷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오래전 독일에서 공부를 할 때도 나는 도서관에서 모든 것을 했었다. 방보다는 도서관을 좋아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다가 요즘에 다시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서 뭔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30년 전에 뭔가를 도서관에서 했던 것처럼. 도서관 화장실 앞 벽에 이렇게 쓰여있다.

안성 보개도서관 화장실 앞 벽 문구

이 작은 도서관에서 나는 모든 것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강의도 준비하고. 

저녁 9시에 시작한 나의 왕초보쌤 프로젝트 강의. 두어 시간의 강의였지만 내가 강의한다는 것보다 내가 이들에게 더 많이 배우고 위로를 받는다. 따뜻한 글에서도 나는 힐링의 선물을 받는다.

나의 인생 여행 친구들

너무 너무 감사한 선물이다. 1년 전 오늘 나는 여행을 혼자 떠났지만 그 후 1년 뒤 오늘 나는 친구들과 여행을 이렇게 다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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