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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피사. 그래서 가 본 피사

반백살 싱글언니 시간여행 (12)

궁금한 피사. 그래서 가 본 피사

어쩌다 피사로!


원래 피사는 내 여행루트에 없던 여행지였다. 1년 전 오늘 지중해 해안절벽마을 친퀘테레 중 하나인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날인 오늘. 창밖에서 바라보는 산동네 이 작은 마을, 바다 그리고 하늘이 너무 예뻤다. 마치 전날 개고생하면서 무거운 배낭과 캐리어를 질질 끌고 힘들게 숙소까지 올라온 나에게 주는 선물처럼 하늘도 바다도 창밖 풍경이 너무 예뻤다.

이탈리아 마날로라 숙소 창밖에서 바라보는 풍경

하늘을 보니 맑고 뭉개 구금이 몽글몽글! 갑자기 난 이 주변이 아닌 다른 데를 가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이 산동네 친퀘테레 마나롤라에서 나는 엿새를 지내야 했기에 시간이 여유가 있었고, 이제는 마나롤라 숙소가 그냥 집 같았다. 그래서 또 다른 여행지를 꿈꾸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전날 피렌체에서 친퀘테레 마나롤라로 가기 위해 환승했던 피사를 가기로 했다. 이탈리아에 대한 공부를 하고 온 것 이 아니어서 피사가 친퀘테레 인근 도시라는 것도 몰랐다. 환승지역이라도 미리 확인했었더라면, 아니 피사에 무엇이 있는지 조금만 알아만 봤더라도, 환승하는 시간을 여유 있게 만들었더라면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친퀘테레에 며칠 동안 쉴 생각으로 머물렀기에 다른 도시를 둘러볼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피사의 탑을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전날에는 힘들게 올라왔던 길이 내려가는 길은 가뿐하고 주변도 보인다. 짐을 가지고 다니기엔 힘들었던 골목길과 돌길이 그저 이쁘기만 했다.

 

마날롤라 숙소 밖에서 바라본 숙소

친퀘테레는 알록달록 하다. 독일처럼 딱딱하게 정렬된 느낌도 없고 그냥 시간이 지나는 대로 그 시간을 정리하지 않고 쌓아둔 것처럼 보였다. 마나롤라 기차역도 그다지 좋지도 깨끗하지도 않았지만 그 오랜 시간을 바람과 파도에 부딪혀 견디어 낸 흔적들이 보였다.

이탈리아 친퀘테레 마나롤라 기차역에서

그 세월의 흔적을 맛보면서 나는 역사의 도시라는 피사에 도착했다. 역시 대도시여서 기차역도 이 조그마한 산골동네 마나롤라와는 다르다. 기차로 40분 거리인데 피사와 마나롤라는 완전히 다르다.

피사 기차역에서

피사역에서 피사탑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이다. 역 근처에는 그냥 조용한 마을이었다. 마나롤라 산동네에 있는 집들을 보다 피사역 근처 주택지를 보니 대도시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이 주택지를 따라 걸어가니 여행 카탈로그에서 많이 보던 그런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피사

피사의 탑은 피사 대학에 있다. 여기에 오니 확실히 여행객들이 붐비었다. 여기저기 패키지여행에서 보는 듯한 가이드들이 안내해 주는 말도 들렸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도 들렸다. 나는 영어보다 독일어게 좀 편해서 살짝 독일 사람들 옆에 서서 피사에 대한 이야기를 엿듣기도 했다. 들었던 내용 다 기억은 안 나지만 피사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 것 같았다.


말로만 들었던 기울어진 피사의 탑을 진짜 보니 피사탑도 신기했지만 사람들의 피사탑 앞에서 사진 찍는 모습이 더 재미있었다. 


피사의 탑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피사의 탑은 가까이 가면 갈 수록 기울어져 있다.

그런데 나는 피사의 탑을 보러 또 다른 여행자로 왔지만 나는 피사의 탑보다 이 날 나에게 준 선물 파아란 하늘과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피사의 탑이 더 좋았다. 만약 하늘이 회색빛이었으면 이 하얀 대리석으로 된 피사는 그 빛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다 피사의 탑을 보러 피사까지 왔지만 피사는 수고한 나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이었다. 비록 집 떠난 지 열흘 넘게 세탁도 제대로 못해서 거지처럼 다니지만 거지에게도 선물은 주는 것 같았다. 피사에서 다시 지중해 절벽마을 친퀘테레 마나롤라로 가는 기차에서 거지 같은 이 날 나의 모습을 영상으로 재미있게 만들면서 나 혼자 웃는다.


마라놀라 행 기차를 타면서 만든 나의 영상

어쩌다 우연히 떠난 피사의 탑. 다시 나의 보금자리가 있는 마나롤라 기차역에서 바라보는 바다풍경도 또 다른 선물이었다.

친퀘테레 마나롤라 기차역에서 바라본 일몰

가끔은 이렇게 계획 없이 어쩌다 떠나는 여행에서 생각지 않는 선물을 받는다. 그런데 그 선물은 항상 내 주변에 있는 것이다. 단지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 그것을 깨닫는 것 자체도 선물일 수 있다.


1년 후 오늘. 이 날은 진짜 빡센 날이다. 하루종일 디지털배움터에서 시니어분들과 함께 있는 날이다. 서포터즈로 도와주고 있지만 1대 1 맨투맨으로 한 분 한 분께 말씀을 드리면서 대응을 해야 하기에 목도 아프고 머리도 아픈 강도가 높은 날이다.


이 날은 디지털배움터 교육실에 도착했는데 복도벽이 좀 달라졌다. 벽에 예쁜 말이 또 나에게 선물을 준다.

안성맞춤 아트홀에 있는 디지털배움터 복도에 있는 예쁜 글귀

꼭 나에게 주는 선물. 위로의 말 같았다. 이 날 하루 강도가 세서 힘든 날이었지만 나는 이 글귀를 가지고 하루종일 성격이 급하신 시니어분들에게 복도에 있는 글 보고 오시라고 했다. 성격과 마음이 급하신 시니어분들 그러나 처음이어서 손이 빠르지 않아 아웃풋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 같아 조급해하시는 분들. 항상 강사쌤과 나를 부른다. 왜 이것 안 되냐고?

이 날은 그냥 복도에 있는 이 글귀로 이 분들의 급한 성격을 다독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 분들 더 재촉하셨을 텐데 이 날만큼은 그냥 웃으신다. 

안성맞춤 아트홀에 있는 디지터배움터에서 공부하시는 시니어


천천히 가도 괜찮아! 너를 응원해!


이 글귀는 이 날 나에게 또 다른 선물을 준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파김치로 기진맥진되었을 나였지만 이 글귀로 차분해지시고 웃으시는 분들 덕분에 나도 많이 웃었다. 이 날은 일보다 그냥 수다와 같은 힐링의 날. 그런 날이었다.


그래. 늦으면 어때!
천천히 가도 좋아!
나의 닉네임 랑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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