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사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정서, 불안과 두려움
불안과 두려움에 둘러싸인 교사들
교사는 질투받는 직업이다. 정해진 퇴근 시간, 긴 방학, 직업의 안정성, 사회적으로 받는 인정... 하지만 교사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부러움의 요소들 아래로 짙에 퍼져 있는 회색이 자리잡고 있다. 그 회색의 실체는 바로 '두려움'이다.
이 어두운 감정은 어디서 온 것일까. 교사가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수업 중에 교사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학생들, 학부모의 민원전화, 미디어에 연이어 보도되는 자극적인 사건들. 교사들은 이들을 접할 때 마다 자신을 둘러싼 의심을 느낀다. 그리고 이들은 종종 불안과 두려움이 되어 교사의 뒷통수 한켠에 자리잡는다.
교사들이 두려워하는 것들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들은 학교에 어떤 색깔을 칠하고 있을까. 그들을 하나씩 곱씹어 보는 일은 학교의 회색 풍경의 실체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수업, 두려움이 된 일상
수업은 교사가 학교에서 맡은 역할들 중 가장 비중이 높고, 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과업이다. 교사가 수업 이외의 시간을 보낼 때 가장 많이 투자하는 시간은 '수업을 준비'하는 일이며, 이 시간이 충분할수록 수업의 질도 올라간다. 그러니까, 수업은 교사의 가장 중요한 일상이다. 그러나 교실로 향하는 교사들 중 많은 이들이 두려움을 안고 교실로 향한다. 만족할 만한 수업을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이 많아지고, 또 그 경험이 쌓이면서 실망이 절망으로, 절망이 두려움으로 전환되는 중이다. 수업은 왜 두려움의 원천이 된 것일까. 무엇이 변한 것일까.
먼저, 교과 지식의 권위가 과거보다 떨어졌다. 과거에는 ‘선생님만 아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수업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교사의 설명보다 더 쉽고, 더 잘 만든 영상과 교재들이 넘쳐난다. 사교육 시장의 강사들, 교육 전문 플랫폼의 콘텐츠들은 (특히 강의식)수업의 강력한 대체재가 되었고, 교사의 ‘설명’은 갈수록 경쟁력을 잃고 있다.
학교가 가질 고질적인 문제인 입시 중심의 경쟁체제도 수업의 중요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교실에는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경쟁에서 이탈한 학생들도 있다. 각자 시기와 이유는 다르지만, 더이상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점점 수업을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그러다 입시를 아얘 포기한 학생들도 생겨난다. 이 학생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필요 없기 때문에' 수업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저는 대학 안 가요'
이 한 마디면,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설명이 된다.
또다른 상황도 있다. 입시가 너무 중요해서, 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내용의 경우에는 배우려 들지 않는 것이다. '입시에 필요 없는 과목은 안 들어도 돼요', '성적에 안 들어가요' 라는 말들이 교실 한편에서 들린다. 교사는 교과서를 펴기도 전에 이미 수업의 절반을 잃은 셈이다. 이 입시에 절여진 학생들의 냉소는 어떻게든 그 내용을 수업해야 하는 교사들에게 곤란함과 상처를 준다.
한편, 문해력의 전반적인 저하는 수업의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집중력 하락, 긴 글을 읽지 못하는 현실도 문제지만 특히 어휘력의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다. '세습', '즉위'와 같은 고전적인 한자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과거보다 훨씬 많다. 한자어를 잘 모르니 어려운 텍스트를 스스로 읽지 못하고 교사의 설명도 이해하지 못한다. 코로나 이후 한결 심해진 이 문제에 많은 교사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지역 간의 격차가 만들어 낸 학교 간의 서열화와도 맞물려 있다. 학교의 유형(일반고와 자립형 사립고, 외국어고, 과학고 등)과 위치(흔히 ‘학군’으로 구분되는 기준)에 따라 수업의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일부 학교에서는 여전히 수업 중심의 문화가 유지되지만, 다른 곳에서는 수업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거나 아예 ‘시간 때우기’로 전락해 있기도 하다. 교사의 수업 만족도는 교사 개인의 태도와 역량에도 관련이 있지만 배치된 학교의 구조적인 여건에 따라 상당부분 좌우되는 일이다.
수업은 여전히 교사로 하여금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같은 하루 중에서도 수업이 잘 되었을 때에는 천국에 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가 다른 시간에 수업이 잘 되지 않으면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는 것이 교사들이다.
특히 수업이 잘 되었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연결되었다는 느낌은 교사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내적 감동이다. 아쉬운 점은, 이 내적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환경적인 요인들은 점차 줄어들고 불안과 두려움의 씨앗들은 사방에서 뿌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가와 감시의 눈 : 학교 밖의 시선들
교육학의 이야기를 한번 더 소환해 보자. 이론상 학부모는 학교 교육의 동반자이자 협력자로 그려진다. 가정과 학교가 서로 협력하여 학생들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 이것이 교육학 교과서가 그리는 이상적인 삼각관계다.
그러나 현실에서 교사들에게 학부모는 까다로운 ‘민원의 주체’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누구누구 학부모 입니다’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긴장의 시작이다. 학부모는 민원을 제기하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법적 소송을 벌일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일에 연루되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일 수 밖에 없다. 소송의 결과 직을 잃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학부모는 상식적이고, 자녀 교육에 진심을 다하는 분들이다. 또한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도 교사는 대하기 불편한 사람이며, 많은 경우에 교사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또 존중한다. 하지만 100명 중 단 한 명의 학부모가 보이는 불합리한 민원이나 지나치게 강경한 태도는 교사에게 있어서 긴 시간동안 깊이 있는 정신적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어떤 학부모는 자녀가 받은 주관식 점수 1점을 문제삼아 수차례 전화를 걸어오고, 어떤 학부모는 아이의 진로상담 이후 “선생님이 자녀에게 잘못된 목표를 심어주었다.’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아동학대와 같은 문제로 소송을 당하게 되면 교사의 몇 년은 그 재판의 결과와 관계없이 심각한 심리적 고통으로 채워지게 된다.
학교를 찾아와서 상담을 요청하는 학부모님들은 대부분 비슷한 패턴의 이야기를 한다. 자녀의 특성이 이러이러 한데, 학교에서 거기에 맞춘 어떤 조치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자녀를 아끼는 부모님의 이런 말씀은,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학교는 소수의 교사와 다수의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자연히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교육은 현실 속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리고 이 ‘요구와 현실의 간극’이 학부모들을 화나게 했을 때, 이것이 새로운 민원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교사는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람들인가
학생인권 역시 논쟁적인 문제다. 교사들 중 상당수는 학생 인권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다만 ‘인권’이라는 말이 현장에서 해석되고, 또 적용되는 방식에서 문제가 생긴다. 학생인권에 대한 설명과 그 적용이 결국 학교에서 어떤 말과 행동의 제약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방식으로 되어 있고 권리에 대한 설명이 있는 반면 의무는 설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식은 학교에서 학생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잠재적 주체를 교사들로 한정짓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 상황은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하는 두 개의 권리인 양 취급하게 만든 것이다.
학생인권은 보장되어야 할 보편적인 권리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장하는 주체는 교사는 물론, 학생 자신과 학부모, 사회 전체다. 그리고 학생 인권만큼이나 교사의 인권과 교권도 상호 존중되어야 한다. 학생인권이 서술될 때에는 학생들과 직접 관련되는 당자사들의 입장이 함께 서술되었어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학부모, 미디어, 학생인권은 각각의 맥락에서는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현장의 교사들에게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원천이 되고 있다. 교사를 둘러싼 외부적 시선은 불안과 두려움의 깊은 원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교사 개인이 아니라 사회와 교육 시스템의 관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행정 업무, 구조가 만드는 피로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은 특이하게도 교사가 곧 행정인력인 구조를 띠고 있다. 행사 계획과 예산 집행, 각종 회의록, 공문 작성, 온라인 시스템 보고, 각종 공문과 실적 정리 등, 교사들은 ‘교육 전문가’인 동시에 행정문서의 처리 담당자로도 존재한다.
행정 업무가 교사의 시간을 빼앗아 수업준비를 비롯한 본연의 업무를 다하지 못하게 한다는 지적은 학교 현장에서는 참으로 오래 된, 그러나 고쳐지지 않는 문제다. 행정업무가 야기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교사의 집중력과 에너지가 분산된다는 점이다. 교실 밖에서 문서 처리와 업무 협의에 몰두한 후에 바로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수업에 몰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교사의 뇌는 계속해서 전환을 요구받고, 이는 결국 수업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기안문과 엑셀 시트는 교실 풍경과 거리가 멀다. 사람의 머리는 Alt + tap키를 누르면 한순간에 전환되는 컴퓨터가 아니다. .
행정 업무는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해마다 새롭게 만들어진 정책이나 시범 사업이 학교를 향해 밀려들어 온다. 교육 정책의 결정은 일관성이나 타당성, 신중함 보다는 새로운 변화와 신속성을 선호한다. 정책이 결정될 때 마다 기존에 처리한 행정 업무는 없던 일이 되고 새로운 무언가가 공문의 형식을 타고 학교로 배달되어 온다. 그 정책들의 적절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금방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학교에서 그 공문들은 ‘그 시점에 처리해야 할 행정업무’일 뿐이다. .
두려움이 만든 학교,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들
교사의 ‘두려움’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교육에 관한 구조 전체가 교사에게 요구하는 역할과 기대가 현실과 괴리된 지점에서 시작된, 멈처지 않는 냇물이다. 문제는 이 두려움이 교사 개인의 차원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교사의 두려움은 결국 학교의 분위기, 교육 방식, 학생들이 경험하는 배움의 내용을 회색으로 만든다.
교사들에게 학교는 삶을 지탱하는 생업의 공간이기도 하다. 생업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수업과 평가 방법, 외부 인솔을 해야 하는 체험활동이나 수학여행을 기꺼이 수행하고자 하는 교사가 얼마나 있을까. ‘힘들고 부담스러운 업무’와 ‘위험한 업무’는 성격이 다르다. 교사를 둘러싼 두려움의 기제들은 모두 현실 속에 실재하는 것들이다. 교사들은 자연히 교육의 적합성보다는 안전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이런 풍토는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은 교사로부터 단지 지식을 ‘전달받는’ 존재로 머무르게 되고, 수업은 점점 더 ‘형식적인 전달’의 장으로 축소된다. 모험적인 시도가 없는 교실은 학생들에게는 더 적은 경험의 공간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곧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배움의 크기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이 현실을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다섯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교사들이 이 중 한 가지라도 체감할 수 있다면 현장의 두려움이 어느 정도는 줄어들지 않을까.
너그럽고 따뜻한 시선.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교직사회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교사의 수업과 판단, 관계 형성을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노력, 혹은 전문성의 발휘라고 생각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학교의 교사들에 대해서 최소한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우리 사회에 통용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생산적이고 많은 교육적인 시도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하다. 드라마와 영화, 뉴스는 교사를 너무 희화화하거나 극단화하지 말고 학교를 둘러싼 여러 모습들을 여러 각도에서 묘사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를 향한 사회의 여러 대화들이 교사를 향한 무조건적인 비난, 또는 옹호만으로 채워지지 말고 건설적인 생각으로 흐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누구 잘못이야’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해?’가 학교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질문이어야 한다.
지켜주는 법의 존재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해서는 국가의 제도가 보호해주어야 한다. 특히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관해 교사에게 지나친 책임을 묻는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모든 상황을 교사가 통제해야 하고, 또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는 실현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그 책임이 ‘법적’으로 지워지는 일은 교사에게는 생업을 잃을 수도 있는, 정말로 깊은 두려움의 원천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는 교사와 교사
교사 집단 내부의 회복적 관계,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교사의 불안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동료 교사다. 서로의 불안을 털어넣고, 해결책을 함께 찾고, 또 서로를 격려하는 문화, 혹은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교사의 불안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혹은 ‘당신이 약해서 불안한 게 아니에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관계가 많을수록 교사들이 견뎌 나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움의 색은 바뀔수 있을까.
불안과 두려움은 교사의 마음을 짙은 회색빛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색이 진할수록 학교의 그늘도 크고, 또 짙어질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학교를 덮어 버지리 않도록 격리의 벽을 쳐 나가야 한다. 그리고 행여 그것에 감염되더라도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백신이 필요하다. 학교에 조금이라도 밝은 색을 칠하기 위하여.
* 이 글은 완성된 원고 '학교의 회색 풍경'중 한 챕터를 간추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