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엘리엇은 시 "황무지"에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 표현했다. 겨울의 무채색이 가득하던 땅을 헤집고 피어나는 생명들은, 때로는 잔인하리만큼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나는 이 잔인함을,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의 몸부림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집 앞 텃밭에서는 부추가 힘차게 땅을 밀어 올리고, 아스파라거스의 연둣빛 싹이 고개를 내민다. 파도 어느새 튼튼한 줄기를 세우며, 세상의 봄을 소리 없이 알린다. 몇 주 전, 경사진 집 한켠에 조심스레 옮겨 심은 무궁화 나무들도 뿌리를 내려 새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영원’과 ‘회복’을 상징하는 그 나무들이, 이 작은 땅 위에 꿈처럼 뿌리를 내리는 순간을 바라본다.
옆집의 벚꽃은 벌써 만개하여 부드러운 분홍빛 물결을 이루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들이 흩날리며 공중에서 춤을 춘다. 나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걸음을 멈춘다. 언젠가 폭풍우 한 번이면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 찰나의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눈에 담는다. 덧없기에 더욱 찬란한, 봄의 기적이다.
4월의 하늘은 변덕스럽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다가도, 금세 먹구름이 몰려와 찬비를 뿌린다. 토네이도의 위험도 늘 도사리고 있다. 하늘을 주시하며 대비해야 하는 계절이지만, 그럼에도 봄이 왔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은 설렌다.
이제 더 이상 겨울의 무거운 외투를 걸칠 필요가 없다.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점점 길어지는 낮의 햇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꽃이 피고, 채소가 자라고, 나무들이 새싹을 틔우는 이 계절은, 겨울의 침묵을 깨고 삶이 다시 깨어나는 시간이다. 엘리엇의 말처럼 봄은 때로 잔인하지만, 그 잔인함 속에는 찬란한 희망이 숨어 있다.
봄은 그렇게, 우리 곁에 와 있다. 아무렇지 않게, 그러나 모든 것을 바꾸어놓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