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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현중 Nov 19. 2024

다시 한 번 소피스트의 시대

전문가들의 전문가


소크라테스가 가졌던 논리적 강점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말하고 있는 상대에게 관련 질문을 던지며, 결국 그것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데 있다.
예를들면 [용기]를 알고 있다며 이것을 설명하길


 '용기란 적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


이라고 정리하는 사람 에게


'불리한 상황에선 물러나 다음을 도모하는 것.'


은 용기가 아니냐고 되묻는 것이다. (너무 압축적으로 정리했지만)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이런 방식을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라고 부른다.

소크라테스가 이런 방식을 사용한 이유를 교과서적으로 정리하자면. 당시 문화와 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사람들이 '소피스트'라고도 불리는 시시각각 입장을 바꾸고, 자신이 생각한대로가 진리라고 떠드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산파술은 시대 맞춤형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유튜브 대흥행 이후, 레거시 미디어가 점차 힘을 잃고 있는 이 시점의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 '소피스트의 시대와 많이 닮아 있지 않나?' 하는 감상이 느껴지곤 한다.

스마트폰을 조금만 만지작 거려도 '전문가', '박사' 등의 단어로 포장하고 얼굴을 들이미는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현대사회의 소피스트 들이다.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시시각각으로 입장을 변경하고 (의견이라는 개념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입장은 조금더 신중히 말해야 한다고 본다), 자신의 생각을 마치 미래를 보고온 전지적 예언이나 진리처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그리고 또 자주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인싸이트를 제시하며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레 제시하는 자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세계적 석학들도 자신이 틀릴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들은 인터넷 댓글 등을 기준으로 삼은 가난한 논리로 자신의 옳음을 관찰시키려 한다.
그리고 과거처럼 산파술을 당한다 한들, 자신의 모름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지우고 싶은 내용을 슬쩍 지워버리고는 무슨문제가 있었냐는 듯이 넘어가 버리고 만다. 대부분 그런식의 흐름이다.

과거 소피스트들은 발전하지 못했던 문장체계를 발전시키거나, 외교술등에서 좋은 결과를 도출하곤 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소피스트들은 인터넷 트래픽 증가나, 그들의 개인적인 부의축적 활동이외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는것 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계속 등장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누군가가 양분을 계속 지급하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다른것은 몰라도 이러한 풍토는 인문학이 천시받은 토양에서 자라난 씨았임에는 내 눈에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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