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가 크다.' 라는 말을 듣고.
비교대상이 되어버리는 것들
며칠전 땅바닥을 보며 아이가 말했다.
'개미가 커.'
그 말에 살펴 보니, 병정개미라 다른 개미들보다 몸집이 큰 개미가 어디론가 바쁘게 기어가고 있었다.
분명 다른 개미와 비교해 큰 개미라 말할 수 있으나 작디작은 개미에게 크다라는 표현을 쓰는게 나에게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내 어색함과 상관없이 '개미가 크다.' 는 말은 분명 주어와 비교대상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언급한 상황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명제는 이를 사용하는 개인을 기준으로 의미가 부여된 또 다른 세상이다. 그리고 이 언어가 대화나 텍스트라는 표현매개체를 통해 화자를 벗어나 청자에게 전달되면, 화자의 의미와 또다른 의미로의 세상이 청자에게 펼쳐지게 된다.
개미를 보며 '이야기 한 '작다'와 '크다'를 사람마다 조금은 다르게 인식하고 사용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으로 서로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어느정도는 온전히 다 전달하지 못한다. 천천히 두고 앞뒤로 보아야 그것의 의미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뿐이다.
잘 정리 된 문장은 잘 정리된 문장 그 자체일 뿐. 타인의 완벽하고 온전한 이해를 100% 뽑아내는 기계장치가 아니다.
sns에서도 개인의 투자성과 등의 인증에서도 이러한 경향의 이슈가 자주 발생하곤 한다.
우선 그런 인증자료들은 작성자의 감정과, 융통할 재정적상황과, 의중이 다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그렇게 태생적으로 부분적인 표현 정보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주관마다 그것을 더 크거나 더 작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분명 같은 숫자인데 계산기의 결과처럼 똑같은 정보해석 결과를 산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 자랑스러운 기록이 누군가에겐 아주 미미하고 초라해 보이는 수준일 수 있다. (물론 그 반대로 누군가에는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보이는 결과로 보일수도 있다.) 병정개미가 일개미보더 크게 느껴질 수 있지만, 흔히 '개미'라고도 불리는 개인투자자의 자금을 기관이나 더 큰 글로벌대형 투자자의 자금에 비교하면 작게 보일 수 있는 일이다.
비교는 아래로도 위로도 끝이 없다. 기준은 그저 기분의 차이일수도 있다. 나는 그저 작은것을 크다고 듣게 되었을때, 어색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것과 비교하여 초라하게 만드는 일보다 한번쯤은 웃어주는 여유가 많은곳에 찾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