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마음속에 있는 누군가가 떠오를 것입니다.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사귀었던 사람일 수도 있고, 마음에만 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할수록 빠져 들어가고, 때로는 행복하기도 하지만, 힘든 마음에 빠져서 헤매고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사람은 사랑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일어서서 움직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상당기간 동안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사랑의 보살핌이 필요한 것이죠. 그리고 그 사랑은 본능적인 것입니다. 마음에도 없으면서 논리적이고 윤리적인 마음으로 누군가를 보살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사랑은 본능적인 것이죠.
사랑을 아가페적이니 에로스적이니 구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게 의미 있는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본능적인 것이고 자발적인 것인데 철학적으로 세워진 의미를 굳이 공부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들은 그들에게 맡겨두면 될 것입니다.
소중한 것을 기억하는 마음
사랑이 사람의 삶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본능이라는 것만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주 잊는 것은 공기와 물이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도 잊고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물과 공기가 이토록 오염이 되어도 그 오염을 막기 위한 노력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사람의 아음이 어리석은가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욕정이나 탐욕과 동일시하게 되면, 충족이 된 후에는 오히려 쉽게 잊어지기 쉬운 것이기 때문에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사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어떻게 하면 잊지 않고 늘 마음에 둘 수 있을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나에게도 사랑이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이죠.
필요한 것을 받으면 기뻐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욕정이나 탐욕을 가지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사람을 바라보면, 결코 기쁨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겁니다. 힘들기만 하겠지요. 채우기 위해서 고민을 해야 하니까요.
채워지지 않으면 고통을 하게 될 것이고, 그 고통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스스로 사서 하는 고통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머니
아주 아주 어렸을 때, 엄마의 젖을 빨 나이가 지났지만, 스스럼없이 엄마의 가슴을 파고 들어서 안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엄마는 웃으면서 나를 안아주셨지요. 그 포근함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자라면서 그 기억이 많이 사라졌기에 때때로 엄마가 챙겨주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서 화를 내기도 했고,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고 문을 꽝 닫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긴 세월을 그렇게 보내다 보니, 그 포근했던 기억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기억에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아주 어린 시절에는 나에게 완벽한 사람. 내가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적극적인 행동이란 어머니로부터 승낙을 받는 일이었지요.
거절받을 만한 요구가 없었기도 했지만, 항상 아들 넷을 챙겨주시던 분이었고, 넷을 위해서는 스스로 희생하시는 모습이 늘 보였기 때문에 안심이었습니다.
사랑이란 그런 모습에서 가슴에 새겨지는 것 같습니다.
나를 완전하게 안전을 지켜주는 모습. 그래서 의지할 수 있고 즐겁게 살 수 있는 매일.
결혼이라는 새로운 삶
전혀 다른 환경에서 긴 세월을 살았던 사람과 한 집에서 살게 되면서 그때까지의 삶보다도 멋진 삶을 살게 될 거라는 희망에 세상은 장밋빛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둘이서 가꾸며 살아왔지요.
짝꿍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머니와 같은 포근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었지요.
어머니도 때로는 내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수 없을 때가 있었기 때문에, 채워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편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라는 존재가 너무도 완벽한 사람이라는 나의 고정관념이 지나쳤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면서 하나 둘 알게 되었지요.
'내가 이 나이 때 어머니는 나에게 어떻게 해 주셨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 나이 때의 어머니는 아직도 세상을 모르는 것이 많은 나이였던 것이죠. 30대에 알면 얼마나 아셨겠습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되면서 어머니의 인내와 사랑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지요.
나는 늘 내가 먼저였는데, 어머니는 우리가 먼저였던 것이죠.
그러면서 내 짝꿍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 짝꿍이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많이 부족한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해되었다고 해서 내 성격이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사랑은 애착
같이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추억들이 쌓여갑니다.
좋았던 일, 고마웠던 일, 미안했던 일, 화났던 일, 슬펐던 일, 부족했던 마음......
이런 것들은 서로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쌓여 왔던 것이지요.
그 어느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좋았던 일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일들이 말이죠.
만약에 따로따로 살면서 마음만을 주고받는 사이었다면 이런 애착은 크지 않았을 겁니다.
애착이 있기 때문에 소중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애착이 더욱 커지는 것.
이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앞에서 먼저 이야기를 했습니다.
며칠 전에 어떤 분이 그러시더군요. 나이가 들어갈 수록 친구들 만나기가 싫어진다고 말이죠. 모두 자기주장만 하고 들어줄 생각들을 안 한다는 것이죠. 자기 말이 무조건 옳다고만 우기니 아까운 시간 그런 친구들을 만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너무 잘난 사람은 사랑받기 어렵습니다. 관심의 대상은 되지만, 만나서 포근한 시간을 갖기 어렵지요.
좀 부족한 듯 보이는 사람이 만날 수록 좋아집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나를 존중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이 사랑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하버드 성인발달연구를 40년 넘게 이끌어 오면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 관해서 많은 글을 써 온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 수록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이 행복하다"
이 말은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난 체 하지 말고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으로 만나라"
그렇게 되어야 나를 더 만나고 싶어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