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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n 23. 2021

번개 맞을까 두려워

일주일 전 밤이었다. 새벽까지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공기 중에 이유 모를 팽팽한 텐션이 만져지는 듯했다. 하루 종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겨우 지긋지긋한 겨울을 벗어나나 했더니. 봄을 훌쩍 건너뛰고 닥친 한여름의 무더위에 몸은 쉽게 적응을 하지 못했다. 한낮의 이글거리는 열기가 사그라드나 싶어 반가운 것도 잠시. 공기 중에 무언가가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다음날 출근을 떠올리며 어떻게 해서든 잠에 들어보려 했지만.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잠은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옆에 누워있는 남편도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갑자기 하늘을 찢을 듯 한 천둥소리와 함께 번쩍번쩍 거리며 빛이 들어왔다. 번개였다. 그건 예보했던 폭풍우가 이제 곧 들이닥친다는 뜻이기도 했다.


“얼른 창문 닫아야겠다".


남편은 창문을 닫으러 일어나서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쏙 내밀고 있었다. "뭐해? 빨리 닫아" 알았다고 하면서 뭐에 홀린 듯 움직이지 않고 하늘을 응시했다. 다시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창문 밖으로 여기저기 터지는 강렬한 번개빛이 찰나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폭풍전야에만 볼 수 있는 빠알간 하늘을 가르는 번개를 보자 덜컥 두려웠다. "뭐해. 그렇게 있지 마. 빨리 창문 닫아. 위험해.”


'번개라도 맞으면 어떡하려고'




남편이 겁도 없다고 생각했다. 천둥 번개가 치면 꽁꽁 숨어야지. 저렇게 창문을 활짝 열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서는 안 될 거 같았다. 창문을 꼭 닫고 커튼까지 쳤지만 번갯불이 방안에 비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누워서 그걸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집 안에 있어 다행이라는.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두려움이 많은지도.


살면서도 폭풍이 닥치고 번개가 칠 때가 있다. 심지어 정말 번개에 맞을 때도 있다. 남편이 부당한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었던 몇 달 전이 우리에게는 그랬다. 남편은 파리의 한 레스토랑의 셰프로 일하고 있었다. 그 레스토랑은 봉쇄 중에도 테이크 아웃과 배달로 주문이 넘쳐나서 코로나 이전과 매출이 큰 차이가 없었다. 예약제로 운영되던 레스토랑이 배달과 테이크아웃으로 전환하면서 주방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바빠졌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이유로 주인은 일부 직원을 휴직으로 전환했고. 감축된 인원으로 늘어난 주문량을 소화하느라 남편은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왔다. 쓰러질 정도로 일을 하면서도 남편은 이 시기에 레스토랑이 이토록 잘 되는 것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려고 했다. 이 어려운 시기를 다 같이 노력해서 통과하자는 주인의 말을 믿었다. 그 덕분에 레스토랑의 매상은 줄지 않았지만 희한하게도 월급은 늘 비었다.


월급의 상당 부분이 매달 비는 건 남편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이 같았다. 주인은 해결하겠다는 말 대신 코로나 때문이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레스토랑이 불황이어서 문을 닫을 상황이면 모르겠지만. 봉쇄 중에도 잘 되는 얼마 안 되는 레스토랑 중 하나였고. 직원들을 일부 실업으로 돌려 정부의 혜택도 받고 있었다. 반년 가까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었고.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에 남편은 모두를 대신해 강력하게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계약을 끝내겠다는 통첩을 받았다.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가 속한 세상이 우리를 태풍과 번개로부터 보호하는 아늑한 집이라고 믿었다가. 사실은 벽도 지붕도 없고 번개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할 말하고 안되면 까짓 거 그만두라고 남편에게 당당하게 외칠 때는 언제고. 막상 이렇게 되니 남편한테도 미안하고 앞날도 막막해서 잠을 못 이뤘다.




그렇게 잠시 절망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곳에서 더 일하지 않은 게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곧 바뀌었다. 그 무엇도 남편의 건강이나 우리의 행복보다 중요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지금 내가 일을 하고 있으니 당장의 생계에도 큰 지장은 없었다.


창문을 닫자 번개 소리가 잠잠해지나 싶더니 곧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길 위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남편과 자주 함께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지금처럼 온 세상을 쓸고 지나갈 듯 비가 쏟아져도. 하늘을 찢는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내리쳐도. 꼼짝없이 걷고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는 비가 오면 피하기 바쁘고. 번개치면 실내에 숨을 수 있지만. 길 위에서는 불가능하다.


지난번에는 걷다가 산 한가운데서 폭풍우를 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번개가 여기저기서 번쩍거렸는데. 거기 그대로 있는 게 더 위험할 수 있어서 뼛속까지 젖는다는 느낌으로 걷고 있을 때 남편이 말했다. "비가 오는 것도. 번개가 치는 것도. 다 당연한 건데 잊어버리고 사는 거 같아." 우리는 걸어서 그날 저녁 목적지에 무사히 잘 도착했다.


번개 맞을까 두려워 그냥 거기에 있었으면 오히려 더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삶에서 주기적으로 크고 작은 번개가 칠 것이고. 재수 없으면 번개를 맞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번개 맞을까 두려워 창문을 닫고 방 안에만 꼭꼭 숨어 지내면 폭풍우를 헤쳐나가는 즐거움은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인생이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춤추는 걸 배우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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