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엘러 재단 미술관 Beyeler Foundation Museum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장소는 희미해지고, 어떤 기억은 왜곡되고, 어떤 순간은 하나의 이미지나 느낌으로만 남아있게 된다. 매일 새로운 것을 접하는 여행은 더욱 그렇다. 그래도 강렬한 인상과 감상을 주는 곳들이 있기 마련이다. 스위스 바젤 외곽 리헨(Riehen)에 위치한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Beyeler Foundation Museum)도 그중 하나다.
사실 나는 그때 정확히 어디 가는 줄도 모르고, 조수석에서 익숙하지 않은 내비게이션을 보느라 더 바빴던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도로표시, 익숙하지 않은 지도와 길, 운전하는 사람도 조수석에 앉은 사람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점점 사람도 차도 적은 한적한 주택가로 접어드니 불안해진다. 혹시 길을 잘못 든 건 아닐까. 그런데 갑자기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알려준다. 눈이 녹아 질척해진 흙길 한가운데에서.
청명한 공기와 큰 나무가 반겨주는 아늑한 작은 마을이었다.
조각이 놓여있는 정원을 따라서 미술관 입구로 들어가는 길.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미술관이 이렇게 눈에 띄지 않기도 힘들 것이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힌다던데 그냥 동네에 묻혀 있다니.
담장 안으로 들어서도 경사인 데다가 나무에 가려져서 여전히 건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미술관 건물 입구로 봐서는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다. 건물이 높은 것도 아니고 입구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모양이 특이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미술관 외벽의 붉은 돌이 조금 낯이 익다. 바젤에 도착하던 날 방문했던 유쾌한 팅겔리 미술관과 비슷한 것 같은데? 사소하지만 스스로 발견한 것이 대견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두 미술관의 돌은 그냥 색깔만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의 돌은 무려 남미 파타고니아에서 공수해 온 것이다. 그래도 바젤의 대표적인 미술관들이 선택한 걸 보면, 이런 붉은 빛깔이 바젤에서 흔하고, 주변과 잘 어우러지는 색인 모양이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을 설계한 것은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이다. 피아노라니, 이름만으로도 어쩐지 호감이 가는 건축가가 아닌가! 렌조 피아노는 청년 시절 리처드 로저스, 피터 라이스와 함께 파리 퐁피두센터를 설계했다. 그 후로 미술관 설계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퐁피두처럼 파격적인 것보다는 단정한 디자인으로 나아갔던 것 같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은 1층에 모든 전시실을 넣은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나머지 부속 공간은 경사를 활용해 모두 지하로 내려갔다. 들어오면서 본 것처럼 경사진 땅 뒤로 숨어있는 것 같은 건물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억지로 땅을 파서 들어갔다기보다는 주변의 풍광 속에 편안하게 들어앉은 것 같다. 한겨울이라 눈이 무릎보다 깊이 쌓여 있어서 미술관 옆으로 돌아가 볼 수가 없었지만, 옆에서 보면 낮은 건물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길게 놓여 있다. 길이가 120m나 된다고 한다.
길게 뻗은 건물은 그 모양대로 길게 구획을 나눠 크고 작은 전시실을 넣은 형태다. 그런데 단층이라 칸이 나눠진 실내의 전체적인 모습이 쉽게 한눈에 들어오진 않는다. 사진으로 담기도 힘들다. 직접 걸어서 체험하는 수밖에.
미술관 내부를 자연광으로 채우기 위해 지붕은 하얀 철제 프레임과 유리로 빛을 끌어들인다. 건축가 남편이 잘못 붙어있던 안내표만 믿고 영어인 줄 알고 실수로(!) 구입한 독어와 불어로 된 미술관 책이 있어 펼쳐 봤다. 그림만 슥슥 봐도 이 지붕을 만드는 데 꽤 공을 들였던 것 같다. 빛이 어떻게 여과되어 들어오는 게 가장 좋을지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스케치하고 모형도 만든 과정이 보였다. 그 결과 직사광선이 아니라 빗면을 세워 놓은 지붕에서 빛이 한 번 걸러져서 온화하면서도 화사한 느낌이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이 완공된 지 20년이나 됐고, 기술적으로는 별로 대단할 것 없는 방법일 것이다. 그래도 그 환한 천장 아래 서 있는 기분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좋았다. 렌조 피아노는 이후에도 같은 원리를 조금씩 변형하면서, 지붕이 채광창으로 된 미술관을 여럿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술관을 구경하다 보니, 한적한 시골마을에 잘 보이지도 않게 자리 잡은 미술관 치고는 작품의 면면이 퍽 화려하다. 정원에 있던 칼더의 모빌 작품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고흐, 모네, 피카소, 몬드리안, 마티스, 자코메티,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 등의 작품과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조각품으로 가득하다.
엄청난 소장품의 비밀은 미술관의 이름에 있다. 예술품 딜러였던 에른스트 바이엘러(Ernst Beyeler)는 세계적인 미술품 시장인 ‘아트 바젤’의 창시자이다. 바이엘러가 그의 아내 힐디(Hildy Beyeler)와 함께 50여 년 동안 구입한 개인 컬렉션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바이엘러 재단을 만들었고, 그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해 만든 미술관이 바로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인 것이다. 아무래도 미지의 작품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보니 설계 과정부터 바이엘러의 소장품들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모네의 수련이 있는 전시실에 들어가면 누구나 ‘아!’ 하고 탄성을 내게 된다. 한쪽 벽면을 커다랗게 차지한 모네의 그림과 어우러진 창밖의 연못 때문이다.
미술관 입구 쪽에서 보이던 창과 연못이다. 밖에서 봤을 때 연못에 반영이 된 하늘과 미술관도 좋았지만, 안에서 바라보니 이 커다란 창이 만들어낸 풍경 하나하나가 그대로 작품이다.
여름이면 연못에 정말로 수련이 핀다고 한다. 모네의 수련만으로도 가슴이 뛰는데, 연못에 꽃이 피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이 공간은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과 더불어 모네의 수련을 가장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일 것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스위스에서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작품을 촬영할 수 없기에, 아쉽지만 모네의 수련과 함께 보는 연못의 풍경은 눈과 마음에만 담아왔다.
옆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자코메티의 거대한 조각상이 걸어가고 있다. 교과서의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자코메티의 작품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큰 창을 배경으로 걸어가는 듯한 조각상이 주는 느낌은 막힌 공간에서와는 또 달랐다. 전시실을 둘러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그 군상 중 한 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시실은 작품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채광을 위한 창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창을 전시한 미술관이 흔하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 전시실 바깥의 긴 복도에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시원한 창도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책을 읽거나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해 질 녘 붉게 물들어가는 들판과 눈 덮인 나무를 바라본다. 아늑하고 따뜻하게 편한 의자에 앉아서 이렇게 큰 창으로 스위스의 전원을 바라볼 수 있다니.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시간과 공간을 잊게 하는 풍경이다. 앞에 유리가 있다는 것조차도 잠시 잊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이 아름다운 그림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는 듯이 창의 프레임조차 가느다랗다.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문에 아예 프레임이 없어서 그냥 유리벽처럼 보인다. 햇빛이 들어오는 천장, 서쪽 유리창, 엘리베이터. 모두 최대한 얇고 투명하게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이렇게 얇은 선을 연결한 투명함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런던의 마천루 샤드(The Shard)의 느낌과 닮았다. 너무 간결해서 차갑게 보이기도 하지만, 단순명료하게 맑고 투명하다. 빛을 머금은 얼음처럼.
여행기를 정리하기 전에 바이엘러 재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미술관 앞의 넓은 잔디 언덕에는 지금 한창 새 미술관 건물을 지을 계획에 있다고 한다. 미술관 앞 공원이 훨씬 커지고, 그곳에 약간의 전시공간과 함께 지역주민들의 문화 커뮤니티가 될 공간을 만들려는 것이다. 미술관이 값비싼 작품들을 모셔놓기 위한 곳이 아니라,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렌조 피아노에게 처음 미술관을 의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예술과 자연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제 그에 더해 그곳의 사람과도 조화를 이루는 미술관을 만들 생각인 것 같다. 렌조 피아노가 미술관을 1층으로 디자인해서 주변 풍경과의 조화를 꾀했다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은 건축가 피터 줌터(Peter Zumthor)는 큰 건물 대신 용도별로 작은 건물 세 채를 지어 마을과 비슷한 느낌을 줄 계획이라고 한다. 작품보다는 사람에 방점을 둔 셈이다.
몇 년 후 새로운 미술관 건물들이 완성되고 나면, 아마도 건축가 남편은 다시 슬그머니 스위스 지도를 펴놓고 미처 다 보지 못한 스위스 구석구석의 건축기행을 계획할 것이다. 그럼 나도 못 이기는 척 저렴한 비행기표를 알아봐야겠다. 이번에는 정원의 눈사람과 눈인사를 나누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다시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에 올 때는 수련이 곱게 피는 계절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날도 꼭 노을이 아름다운 오후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