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에 재미 들어 신나게 다니던 어느 날.
제일 일정이 빠듯한 목요일 저녁이었다. 6교시를 하고 태권도도 다녀오고, 저녁 먹고 수영까지 가는 일정이 빡빡하다 못해 여유가 없는 요일이지만, 겨루기를 하는 목요일이 좋고, 수영도 하고 싶으니 둘 중에 하나 내려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의 수영은 평영에서 접영자세를 배우는 중이었으니 체력도 더 많이 소모되고 있었다.
수영을 다녀온 아이가 눈을 뜨는 것이 버거워 보일 정도로 파르르 거리며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3학년이 시작되며 이때와는 다른 깐깐한 선생님과 맞춰가는 과정에서 시작된 눈 깜빡 임의 틱이 수영을 하고 오면 그야말로 폭주의 상태로 치닫는 것이었다. 눈이 계속적으로 깜빡이는 것이 아이도 버겁겠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내가 너무나 힘들었다. 틱이라는 것이 기다려주고 자극하지 않아야 소거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게 나중에 다른 얼굴 근육이나 음성틱으로 발전될까 봐 너무 불안했고 신경 쓰였다.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깜빡이는 눈만 보였고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태권도를 그만두던지 수영을 그만두던지, 체력적으로 버거워지면 더 폭주하는 눈 깜빡임 틱을 조금이라도 저지하려면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수영이 너무 좋은 아이는 수영은 못 그만둔다고 울었고 그럼 태권도를 정리하자고 하니 품띠를 갖고 싶어서 안된다고 울었다. 난들, 아직 어린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이런 운동들을 다 그만두게 하는 게 맞는 것인가 생각이 들면서도 지금 이런 방법 말고는 틱을 소거하는 방법이 없다 생각이 들어 결국 수영을 정리하기로 했다. 단, 틱이 소거되고 안정기에 들어가면 다시 수영을 재개하기로 했다.
아이는 밥 먹을 때 뇌에 자극이 되어 눈을 깜빡였고, 자신이 좋아하는 흥미진진한 과학이야기나 책에서 본 재미난 이야기를 하면 쉴 새 없이 눈을 깜빡였다. 3학년 2학기의 가을. 결국 아이 입에서 ‘엄마 저 눈이 너무 힘들어요’라는 말이 나왔고 다니던 소아정신의학과에서는 아이의 입에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야기가 나왔다면 이제는 약을 먹어야 하는 시기라며 약이 처방되었다.
아빌리파이정 0.5미리씩 일주일. 그 후 한 달 동안 1미리
처방된 약은 만원 밖에 하지 않았다.
친절하신 선생님께서 약에 대한 설명도 좋게 잘해주셔서 최소의 용량으로 먹여보자고 처방이 나온 거였다.
생각이 많아졌다.
아이와 서점에 가서 아이가 책을 읽는 동안 약에 대해 검색에 보니 첫 번째로 보이는 글씨가 조현병, 양극성장애, 주요 우울장애, 자폐장애와 과민증, 뚜렛장애에 효능효과가 있다고 써져 있는 것을 보니 이 약을 내 아이에게 먹여도 될까?라는 의문이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나의 불안을 최대한 숨기고 물어보았다.
“엄마는 네가 정말 힘들면 약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약을 먹으면 조금 몸이 무겁다고 느껴지고 약간 나른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대신 네가 음식을 잘 안 먹는 편이잖아? 이 약을 먹으면 식욕이 많이 생긴데~엄마는 네가 스스로 약을 먹으면 좋을지 말지를 결정하면 좋을 것 같아. 엄마는 네가 어떤 선택을 해도 존중해 볼게”
나의 맘을 아는지 아이는 내게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틱에 관련된 약을 먹고 무기력해 보였던 일과 친구가 평소보다 예민해져 있던 일을 말하며 약을 먹지 않고 조금만 더 버텨보겠다는 말을 내게 해주었다. 어쩌면 나는 아이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었던 거란 생각이 들어 엄마로서 아이에게 어려운 결정은 미뤘던 것 같아 못내 부끄러웠다.
그렇게 틱이 시작된 지 꼬박 일 년이 흘렀다.
어느 순간 나도 아이의 틱에 연연하지 않았다. 어차피 뇌에 도파민이 뿜뿜한 만 9-12세 아동들에게 누구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이 시기가 지나면 잠잠해질 거라 생각하며 아이의 눈 깜빡임도 그저 아이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처음 아이의 눈 깜빡임 틱을 보고 왜 그러냐 묻던 지인들도 이제는 모른 체 해주며 모든 상황들을 함께 넘어가주었다. 그리고 얼마 전 밥을 먹는 아이가 눈을 깜빡이지 않고 있고, 나에게 책 이야기를 흥분하며 이야기하는 아이가 눈을 깜빡이지 않고 있었다.
잠시의 소거 일지 모르지만 아이의 틱이 소거가 되었다.
일주일쯤 지켜보니 아이는 정말 틱을 하지 않았다. 그렇담 아이와의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아이가 다니던 키즈풀장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아이가 다음 달부터 다시 수영을 재개할 수 있도록 등록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태권도와 수영 요일을 따로 벌려두었다.
하교한 아이에게 수영 재등록 소식을 전했고 아이는 날아갈 듯이 신나 했다.
기다리고 노력하고 서로 애쓴 후 아이는 다시 좋아하는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행복해하는 모습에 마음이 몽글해졌다. 자, 이젠 일 년 동안 자란 아이에게 새 수영복을 사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