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티브 발생과 원인 분석까지
아마 남자라면 대부분 면도기 브랜드 서너 개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도루코를 군대에서 만나보았을 테고 그 다음은 대형 스타들로 광고하는 질레트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관심 있는 사람은 쉬크 정도 더 알고 있을 것 같다. 혹시 노브랜드를 쓰고 있다면 도루코에서 생산에서 납품하는 거라 도루코 제품을 사용 중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SNS에서 열심히 광고를 하고 있는 브랜드가 있는데 와이즐리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나는 18년도에 처음 와이즐리를 접하고 제품 사용 경험이 있는데 그 당시 성능이 별로라고 생각해 구독을 중단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뒤 신제품 출시 소식에 사용해봤는데 체감상 성능이 좋다 졌다고 느껴졌다. 일회용을 쓰다 써서 그런지 그전에는 빡빡하게 안 밀리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건 잘 밀리고 부드러워졌다. 여하튼 와이즐리를 알게 되고 면도기라는 진입 장벽이 높은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켜 나름 주의 깊게 관찰을 해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제품도 써보고 관련 글이 있으면 읽어보곤 했다. 그리고 나는 브랜딩에 관심 있고 이슈를 공부하자는 취지에서 관찰기를 쓰게 되었다. 그럼 최근 와이즐리에서 발생한 네거티브에 대해 기록해보고자 한다.
Youtube에 와이즐리를 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콘텐츠는 EO라는 채널 김동욱 대표와의 인터뷰이다. 문제는 이 콘텐츠에 많은 악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와이즐리라는 기업을 찾아보면서 이 정도의 외부적인 네거티브가 발생한 것은 처음이다. 댓글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393개의 댓글 중 적어도 50% 이상은 와이즐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었다. 일단 동감한다는 엄지를 많이 받은 상단의 댓글들은 모두 와이즐리에 부정적인 댓글이다. 여기서 크게 2가지 주된 네거티브 내용에 대해 논해보기로 한다.
주로 보이는 의견은 질적 측면에서 비난이다. 이 부분은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와이즐리는 신생기업이고 질레트는 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거대 기업이다. 2016년에 설립됐으니 갑자기 4년 만에 기술력을 한꺼번에 따라잡을 수 없는 노릇이다. 나 역시도 와이즐리 1세대(편의상 처음 버전을 1세대라고 부르고 개선된 버전을 2세대라고 부르겠음)를 쓰다가 구독을 그만둔 이유가 잘 안 밀려서였다. 하지만, 와이즐리는 최근 2세대 출시로 개선된 면도기를 선보였고 품질 개선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어넣어주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건 그들이 중요시 여겼던 고객 경험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다. 아마 나처럼 1세대 제품에 실망한 고객들이 부정적인 마음을 아직 가지고 있을 것이다. 2세대의 고객 경험을 퍼뜨려 실망한 고객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빠른 시일 내에 품질 개선이 추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선이 반복될수록 이런 종류에 네거티브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
빠르게 개선안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개선이 늦다면 아마 네거티브들은 또 다른 네거티브를 양산할 시간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선안을 내놓는다면 개인적으로 털의 타입에 따른 제품군을 늘리는 쪽으로 생각해보고 싶다. 면도 경험은 털이나 피부에 따라 정말 다르기에 질적 개선인 종적인 개선보다는 타입에 따른 면도날 다양성을 확보해 횡적인 개선안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이런 의견에 대해 많이 실망스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혁신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을 것 같았다. 대부분 이런 댓글들을 보면 단순히 카피캣이라는 비난과 베끼면서 포장하지 말라는 네거티브이다. 까놓고 생각해보면 따라 하면 안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구독 서비스는 구독 경제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퍼져있다. D2C 역시도 고객에게 직접 물건을 파는 원초적인 방법이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점을 찔렀다는 점에서 똑같은 아이디어라고 치부하거나 그래서 이 모든 것을 그대로 해서 카피캣이라는 논리면 우리나라에 카피캣은 넘쳐나고 카피캣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 중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혁신을 주장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색다른 방식으로 시작하고 성공까지 거둬야 한다는 동화책에 갇혀있다. 사실상 그 모델 자체를 한국에 들여와서 시도하는 것 자체도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성공했다고 한국에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달러 쉐이브 클럽이 다른 기업에 팔렸건 말건 와이즐리와 상관없듯 달러 쉐이브 클럽이 미국에서 성공한 이야기는 와이즐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다. 외국에서 선진 문물을 가져와 한국 사람들에 맞는 카피와 홍보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물건을 전달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혁신 아닐까 싶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논리와 달리 네거티브는 계속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다. 아마 달러 쉐이브 클럽과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생산해야 이런 무의미한 비난도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와이즐리에게 큰 숙제가 될 것이다. 이들의 논리가 카피캣이라는 세 글자로 단순하듯이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아이템이 나와 단순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불합리한 시장을 바꾼다는 이야기가 지금은 이들에게 설득되지 않고 있지만 김동욱 대표가 이야기한 추후 아이템인 탈모 샴푸 그리고 그다음 아이템이 계속 더 해진다면 시장을 바꿔간다는 논리가 통하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평판이 나쁜 기업이라고 항상 악플이 대량으로 달리는 것은 아니다. 악플도 감정 소모하는 일로 촉매제가 있어야 적극적으로 움직임을 보인다. 그렇기에 기업의 기존 평판과 별개로 한 콘텐츠에 다량의 네거티브가 발생하는 것을 유의미하게 살펴볼 부분이다. 나는 크게 2가지를 원인으로 생각했다.
와이즐리는 불합리한 시장의 변화를 주장하면서 시작된 기업이다. 그럼 이 말은 누군가는 시장을 불합리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동안은 이 대상들을 대기업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 묘사했지만 이번 인터뷰 영상의 썸네일에서는 직접적으로 질레트를 언급하고 있으며 혼내준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 표현은 와이즐리 공식 페이스북에도 나와있다. 메시지가 한 층 더 구체화된 것이다.
이는 질레트 옹호자들을 결집시키는 계기를 주었고 그들로 하여금 네거티브를 발생시키도록 만들었다. 본래 네거티브는 네거티브를 만든다. 정치 토론을 보면 상대를 힐난하는 내용들이 오고 가는데 절대 한쪽만 힐난하는 경우는 없다. 한쪽이 시작하면 다른 한쪽도 자연스럽게 맞받아친다. 질레트 옹호자들은 반박을 하거나 상대편 진영을 비난하려들 것이다. 옹호자 혹은 와이즐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논리는 이렇다.
1-1. 우수한 기술력과 먼저 시장을 개척해 성장한 기업을 매도하지 말라!
질레트는 과연 혼날 짓을 한 걸까?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나도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먼저, 질레트 포함 몇몇 기업의 독과점은 면도날에 높은 기술 장벽이 기여했다. 면도날은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요구한다. 얇게 만들어야 하고 날카롭게 만들면서 동시에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면도날을 만들 수 있는 국가는 몇 개 없다. 미국, 일본, 독일이고 아마 소수의 몇 개국 만이 가능한 정도이다. 높은 수준이면서 한정된 국가에서 보유한 기술이 들어간 제품이 가격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판매 대상은 전 세계 남성 인구이니 말이 필요 없다. 그리고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높은 가격 책정을 하고 또 그것이 잘 팔린다면 굳이 내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기업은 자선단체가 아니다.
1-2. 스타마케팅과 신제품 출시?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신제품 출시는 당연한 거고!
또 다른 질문으로 스타 마케팅과 무의미한 신제품 출시가 고객들에게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 먹히니까 하는 것이다. 질레트는 하이 엔드 제품으로 고급진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스타 마케팅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런 걸 좋아하는 소비자들도 많다. 우리의 우상 손흥민이 쓰는 면도기 나도 한 번 써보자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사실상 신제품 출시는 기업에게 당연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고 고객에게 더 맞춰진 상품을 개발하는 것은 기업의 연구 개발 의무이다. 비록 기술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더라도 지속적인 신제품 출시는 소비자들에게 발전하는 기업의 모습을 어필할 수 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가격 비교로 인해 고객 항의를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고객들의 지지도 시장의 불합리성을 바꾸는 메시지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질레트를 언급하면서 비교 대상을 구체화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인터뷰 내용과 기존의 메시지가 상충된다고 느꼈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불합리한 시장을 바꾸는데 질레트와의 대립이 필요하냐 안 하냐이다. 다른 질문으로 바꿔보면 불합리성을 바꾸는데 불합리성에 집중할 것이냐 합리성에 집중할 것이냐라고 물을 수도 있다.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지만 무엇을 앞에 두느냐에 따라 소비자들의 인식은 크게 달라진다.
질레트를 이야기하면서 불합리성에 집중한다면 아마 와이즐리는 대기업과 싸우는 기업으로 인식될 여지가 높다. 아마 그들의 제품은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고 대기업과의 경쟁하는 것은 맞지만 경쟁이란 이미지에 치우쳐 본래의 시장을 바꾸겠다는 취지가 가려질 우려가 있다. 여담이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와이즐리가 힘든 상태인지 궁금해졌다. 원래 힘들 때 자극적인 메시지에 꽂히는 법이기 때문이다.
다음 선택지는 시장을 바꾸겠다는 메시지와 본인들의 제품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회사까지 찾아오는 고객들이 있을 정도면 회사 제품에 자신감을 갖고 임할 필요가 있다. 굳이 질레트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질 좋고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는 메시지는 전달 가능하다. 그동안의 와이즐리의 성장은 면도날이 비싸다는 것에 소비자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적당한 가격으로도 좋은 제품을 얻을 수 있다는 합리적인 소비를 먼저 이야기하고 자연스럽게 합리적인 기업으로 소비자 마음속에 포지셔닝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다르게 이번 인터뷰와 같이 경쟁 대상을 질레트로 구체화하고 동일 선상에서 언급한다면 오히려 와이즐리에겐 악재로 작용될 수 있다. 동일 선상에 보았을 때 사람들 인식 속에서는 질적으로 질레트가 우위에 있고 앞선 댓글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실제 질적 차이보다 인식 차이는 더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면도기가 비싸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지만, 더 나아가 질레트의 가격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 불합리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산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와이즐리가 지속적으로 질레트를 걸고넘어진다면 현재 상황에서는 질적 차이를 부각해 오히려 질레트의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는 계기로 발전할 수 있다. 과연 2세대 출시와 면도 제품군 확보로 다음 도약을 위해 달리고 있는 와이즐리의 다음 메시지는 무엇인지 기대된다.
면도기 회사, 와이즐리 관찰기(2)-해결방안 모색 편에서 계속
관련 인터뷰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NEi5uNo4TC0&ab_channel=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