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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의 말 한마디가 오래 남을 때

by 게으른루틴

그 말이 크게 들린 건
볼륨 때문이 아니라, 타이밍 때문이었다.

회의가 끝나갈 무렵,
다들 마무리 정리에 들어갔고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불쑥 팀장님이 말했다.

"OO님, 요즘 집중이 좀 흐트러진 것 같아요."

정확히 뭐가 문제였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아무리 아닌 척해도
내 안에 있던 불안한 마음이 바로 반응했다.

‘집중 못했나?’
‘티가 났나?’
‘내가 요즘 좀 무기력하긴 했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내 하루를 하나씩 되짚게 만들었다.
별말 아닌 듯 시작된 문장이
종일 마음을 건드렸다.

사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요즘 내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고,
집중도 예전 같지 않았다는 걸.

하지만
그걸 누군가가 꺼내 말하면
마음은 또 다르게 반응한다.

꼬리를 감추고 있던 감정이
툭 하고 터져 나오는 느낌.
생각보다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아 있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이어폰 너머로 아무 말도 안 들릴 때
그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집중이 좀 흐트러진 것 같아요.'

그 말은 조언이었을까,
실망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스쳐 지나간 멘트였을까.

나는 혼자서
그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결국 결론은
내가 지금
나 자신에게도 말 못 하고 있었던 걸
누군가 먼저 짚어줬다는 것.

그래서 서운했고,
그래서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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