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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Jun 28. 2020

미소년 J와의 부적절한 관계

연애이야기

배추가게에서 만나 내 남편이 된 J 이야기를 해보자.

앞서 말했듯이 그는 미소년의 외모와 반항아적인 눈빛, 순수함을 겸비한 청년이었다. J는 쌍꺼풀이 진했다. 나는 쌍꺼풀이 없는 작은 눈을 선호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흑심이 생겼다. 아무리 내 이상형이 장동건보다 하정우라지만, 그건 장동건과 하정우를 비교했을 때 이야기지 장동건과 박성광 중에 고르라고 하면 장동건을 고르지 않겠는가? (죄 없는 박성광 님 죄송합니다.)


J는 누가 봐도 군계일학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고, 조명을 받으며 무대를 뛰어다닐 때는 진짜 연예인처럼 보였다. 외모는 화려한데 마음은 순수했다. 어찌나 순수한지 혼자 술도 안 마시고, 친구들과 끝말잇기를 하고 놀았다. 청바지 위에 팬티를 입고 수퍼맨이라고 외치며 뛰어다니는 벌칙을 수행하는데도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유쾌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청년이었다. 패기도 있었다. 남들이 한심하다 생각하지 않을까 눈치도 안 보이는 지, 공연이 없는 날에도 거의 매일 가게에 나와 죽치고 있었다. 날 좋아하는 눈치였다. 내가 술 취해서하는 헛소리를 진지하게 받아주고, 감탄하고, 호탕하게 웃어줬다.  


그래서 그랬나? 가게 한 켠에서 자고 있는 J에게 내가 느닷없이 입을 맞추었다고 한다. 눈을 뜨면 그만둘까 봐 그는 계속 자는 척을 했는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뽀뽀를 키스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당사자가 나인데, '전해 들은 이야기 화법'을 쓰는 이유는... 미안하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필름이 끊길때까지 술을 마셨고, 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그날 이후 J는 좀 더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했다. 사람들 몰래 손을 꼭 잡거나, 사랑스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그게 싫지 않아서 나는 술에 취하지 않았는데도, 취한 척 하며 손과 어깨와 (종종) 입술을 내 주었다.


당시 나에게는 2년간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다. 결혼 이야기가 오갈만큼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나는 행실 바른 처녀가 아니었다. 남자 친구를 두고 다른 남자와 뽀뽀를 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전후사정이란게 있다.


K는 나보다 여덟살 정도 나이가 많았다. 영어강사 일을 했고, 이태원 근방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집을 쉐어해서 살았다. 외국인 친구들과의 파티나 생소한 장소 (이를테면, 게이클럽)에 종종 나를 데려가기도 했다. 이십대 초반이던 나에겐  모든 게 쿨하고 멋져보였다. 그의 세계가 얼마나 나를 압도했던지, 가끔 K의 방에서 다른 여자의 속옷이나 액세서리 등이 발견되어도 크게 문제 삼을 수 없었다. '촌스럽고  어린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더니, 쿨한 척하다 보니 정말 나는 쿨하게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 또한 그렇게 이해받기를 기대하며 종종 다른 남자들을 만났다. 대 놓고 들키는 무례를 범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암묵적 동의하에 자유연애를 했다.


그렇듯 묘한 연인관계는 5년이나 이어졌다. 그 사이에 J도 만난 것이다. K와의 인연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몇 가닥 안 남은 밧줄처럼 유지되다가, 어느날 갑자기 툭하고 끊어졌다. 밤사이 연락이 되지 않던 그가 '사실은 말이야.' 하며 당시 유명했던 여배우와 하룻밤을 보냈다고 묻지도 않은 고백을 한 것이다.


너무 영광스러워서 입이 근질근질했나보다. 나는 “와! 정말? 대박!” 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그 날 완전한 이별을 결심했다. 그가 괘씸해서가 아니었다. 전혀 질투가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공허한 연인보다 비밀없는 친구로 지내는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헤어지자마자 내 친구와 사귄다는 소식에, 그마저도 힘들어졌지만.


작은 아빠와의 동업 결렬 이후, 나는 인수인계를 마치고 뉴욕으로 떠났다. 덕분에, 미소년 뮤지션 J와의 풋풋하고 부적절한 관계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다.  J와 다시 연락이 된 것은, 2년의 세월이 흘러 아주 예기치 않은 곳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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