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9개월간 직장인으로 살았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워킹 비자를 캔슬하고 베트남과 태국에 잠시 여행을 다녀오니 90일 무비자로 말레이시아에 머물 수 있는 관광객으로 신분이 변했다.
일부러 집 계약을 퇴사 후 두 달까지로 연장해 둔 상황이라 쿠알라룸푸르에서 두 달 살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초반에 내 소심한 계획은 6개월 정도 시간 부자의 생활을 누린 후, 완전히 다른 일을 시도를 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비슷한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학생 때 방학도 두 달 정도였으니 이미 6개월이란 자유시간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을 선물로 주는 셈이다.
이상하게 하루하루가 아까웠다.
알람을 듣고 일어나는 것도 그리 힘들었는데, 알람도 없이 눈이 번쩍번쩍 떠졌다. 그것도 아침 일찍. 생생한 에너지가 내 몸에 가득한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살아보고 싶었던 하루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아침에 필라테스를 갔다가 빵오쇼콜라가 맛있는 빵집에 들어 빵 두세 개를 사 온다. 집에 와서 프렌치프레스로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며 빵을 먹는다. 그 후에는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을 대충 끝내고, 샤워 후 장을 보러 간다. 오늘은 뭘 먹을지 생각하며 장을 보고 (야근 후 내 위를 괴롭히기 위해 먹던 불닭볶음면은 당기지 않았다.) 집에 와서 요리를 하고 밥을 먹고 소파에 앉은 채로 책 한 권을 다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혹은 이것저것 써보기도 한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파란 하늘에 감탄하고 또 어떤 날을 비 오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서너 시가 되면 K와 함께 좋아하는 동네 카페에 가서 각자 할 일을 한다. K는 일을 하고 나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것들을 조용히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