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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리 Jan 20. 2020

날씨 좋은 날, 걷기를 위해 갖출 것들에 대하여.

딱 1년 전 이맘때 쓴 글을 옮겨본다. 


요즘 내가 머물고 있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날씨는 참 맑다.


파란 하늘에 낮은 구름이 몽글몽글 떠있고, 당연히 햇살도 눈부신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동남아는 언제나 무더운 날씨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사실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한국에서는 일기예보를 보는 것이 일상과 꼭 붙어있는 일이지만 사실 동남아에서 지내다 보니 날씨 (특히, 기온)를 찾아보는데 둔감해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항상 날씨가 좋은 것도 아니다.

우기일 때는 마치 회사원들이 정오가 되면 우르르 사무실 밖으로 나가듯, 거의 동일한 시간에 천둥 번개가 치면서 폭우가 쏟아지고 이때는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이 회색빛으로 변할 정도라 밖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우기가 끝난 것 같으면 헤이즈(미세먼지)가 몰아칠 때도 있었다. 

헤이즈도 없고, 우기도 끝났다- 싶으면 이상 기온(?)으로 인해 하루 종일 소나기 같은 비가 내리기도 하고, 하루에 두세 번 비가 쏟아지는 날들이 가득했다. 작년(2018)에는 심지어 이상 기온인지, 기온이 30도보다도 훌쩍 아래로 내려가서 시원하다-고 생각되는 날들도 꽤나 있었다.

여기나 저기나 이상 기온이 나타나고 있어서 나는 우스갯소리로 말레이시아 친구들에게 너희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어쩌면 말레이시아에서 눈을 볼 수도 있겠다-라고 말하곤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요즘 쿠알라룸푸르의 날씨는 변덕도 그리 심하지 않고, 무더운 맑고 좋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현지 친구들의 말로는 구정 (여기서는 CNY라고 부른다. Chinese New Year) 전 후는 항상 날씨가 이렇단다. 마침 나는 시간이 많은 백수 생활을 누리고 있으므로- 이 도시에서 많이 걸어보기로 했다. 작년 초에 샀던 Fitbit을 조금 더 공격적으로 사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도 좋겠다, 시간도 많겠다, 조금씩 걷는 시간을 늘리다 보니 새로 알게 된 사실(혹은 잊고 있던 것들)이 몇 가지 생겼다. 


첫 번째는 아주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인데 나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것보다 대화나 말을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Spotify로 걸을 때 좋은 음악, 평온한 음악, 신나는 음악 리믹스, 내가 저장한 노래들 모음 등등을 다 들어봤지만 그것보다 유튜브에서 내가 알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해주는 영상을 듣거나 팟캐스트를 듣는 것이 더 내게 맞는 동행자였다. 물론 가장 좋은건 좋아하는 친구나 연인과 대화를 나누며 걷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무조건 가볍게 집 밖을 나가는 것이 좋다는 것.

가죽 가방보다는 천으로 만든 에코백이 좋고, 에코백보다는 가벼운 복조리 형식의 백팩 (이름이 있을 텐데... 잘 모르겠다)이 더 낫다. 두 손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은 크로스백 (핸드폰과 지갑 정도만 넣을 수 있는)도 나쁘진 않지만, 오래 걷다 보면 아무래도 한쪽 어깨에만 하중이 실리는 느낌이 썩 좋지는 않다. 가까운 곳에 갈 때는 힙 벨트가 제일 좋은 것 같다. 카드나 지폐 한 장과 집 열쇠, 핸드폰만 넣는다. 소매치기 걱정도 없다.  


세 번째는 정말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적당한 두께의 양말'의 중요성이다. 

운동화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에 가서 이것저것 신어보고 편한 것을 샀는데 양말은 H&M이나 무지에 가서 얇은 발목 양말을 샀다. 그러다 보니 오래 걸으면 발바닥이 엄청 뜨거워졌는데, 나는 오랫동안 운동화에 쿠션이 부족해서 그런 줄만 알았다. (심지어 내 운동화는 러닝화인데!) 그러다 며칠 전, K의 두꺼운 양말을 신고 조깅을 했는데 정말 달랐다. 같은 운동화였지만 어떤 양말을 착용하냐에 따라 내 발의 컨디션은 천차만별 달라서 깜짝 놀랐다. 운동화는 중요하다. 하지만 양말도 진~짜 중요하다.


네 번째는 마음의 준비에 관한 것이다.

밖에 나가면 우선적으로 등이, 그다음에 가슴과 목, 겨드랑이 모두 땀으로 젖을 것을 미리 알고 (혹은 인정하고) 나면 더운 날씨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전에는 좋은 날씨란 땀이 나지 않는 쾌적한 날씨라고 생각했다. 초봄이나 초가을, 나는 그 시간 동안 참 열심히 걸어 다녔지만 땀나는 것은 정말 싫어해서 여름에는 실내에서만 놀았다. 하지만 여름 나라에 살면서 땀에 대해 조금씩 관대해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 몸은 곧 땀에 젖을 것이지만 집에 와서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면 그 기분은 또 이루 말할 수가 없으니 땀은 더 이상 큰 문제가 아니었다.


-

아, 여기까지 쓰고 나니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아, 양말 사러 가야겠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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