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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Feb 27. 2022

[크크의 다시 읽기] #5

의사를 대하는 법

나이가 들어가니 의사 볼 일이 많아진다. 내 몸에 고장이 나고 그 고장이 쉬이 고쳐지지 않기도 하거니와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다닐 일도 자꾸 는다. 이래저래 다양한 의사들을 만나며 최근 경험한 것들. 


몇 년째 만나온 내 주치의가 코로나 백신 접종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맞으세요. 맞으라는데 맞으세요. 의사들은 이미 모르모트가 되어서 다 맞았어요.”


전문성 갖춘 훌륭한 의사라고 생각해왔는데, 순간 낯선 느낌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또 다른 종합병원 의사. 예후가 어떤지 묻는 내 질문에 뜬금없이 의료수가가 어쩌고 의료체계가 저쩌고 하더니 끝내 “이놈의 사회가 의사를 무시한다”라고 덧붙였다. 난감해진 나는 옆에 선 수녀 간호사만 멀뚱히 바라봤다.


아무리 사회가 바뀌었다고 해도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 대부분이 여전히 의대 진학을 최우선 목표라고 말한다. 아직도 의사는 최고의 직업인데, 정작 그들의 직업 만족도는 낮아 보인다. 그럴 때 이 책이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 발간되었으니 언급된 의료 현실이야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지만, 의사의 세계를 다방면에서 보게 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저자의 탁월함 때문이다.  


믿고 보는 의료 에세이 최고의 저자


아툴 가완디는 이 책을 쓸 때 일반외과에서 8년의 훈련기를 마쳐가던 외과 레지던트였다. 그에게 레지던트라는 자리는 내부자로서 의료의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에 개입하지만 의학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독특하게 유리한 위치였다. 거기에 실험실 과학자, 공중보건 연구원, 철학도와 윤리학도이자 정부 보건정책의 자문위원 등 그의 다양한 이전 경력이 풍부함을 더했다. 그 위에 2000년 의료 관련 에세이 최고 저자로 꼽힌 그의 글쓰기 능력이 더해졌으니, 책은 단숨에 읽힌다.

총 3부로 이뤄진 내용의 각 부제는 1부 오류 가능성, 2부 불가사의, 3부 불확실성이다. 저자가 의학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소제목들 아래 어떻게 해서 의료과실이 발생하고, 설명이 불가능한 통증이나 이상 증상들에 맞서 어떠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지, 현대 의학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상세히 적혀 있다. 부제는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원제는 Complications.


책머리에서부터 저자는 의사들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고백한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이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이 든든해지고, 다 읽고 나면 깊숙한 감동까지 느껴진다. 무엇 때문일까?

일단, 의학드라마를 넘어서는 흥미진진함이 깔려 있다. 응급실 한복판에 서 있듯 묘사가 박진감 넘치고, 환자와 의사들 각각의 생각과 감정이 절묘하게 드러나 있다. ‘글 쓰는 의사’라는 그의 호칭이 결코 허명이 아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2002년 전미 도서상 최종 후보였다는 사실이 절로 수긍된다.


의학은 사람이 하는 일


그러나 이 책의 핵심은 저자의 시각에 있다. 아툴 가완디는 의학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의학을 과학이라고 이해한다. 과학이 우리에게 준 수단들, 즉 각종 검사와 의료기기, 약품, 수술 등으로 의술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준 수단을 실제로 작동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의사다. 알고 있는 것과 아직도 익히고 있는 기술 사이에 불가피한 간극이 있는 의사, 진단에서 개인적인 경험의 영향을 제거하기 어려운 의사, 컨디션이 좋기도 하고 나쁜 날도 있는 의사라는 ‘사람’을 통해서만 우리는 치료를 받는다. 그래서 그들도 자신들의 인간적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하는데, 그 한 예가, 의학드라마에 늘 등장하는, 의사들이 사례를 발표하고 토의하는 콘퍼런스다. 미국에서는 M&M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M&M은 자기 회의와 부인이라는 두 가지 부정적 태도가 끼어들지 못하도록 주도면밀하게 계획되지만, 다소간의 수치심이 따른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매우 미국적인 사고방식을 강력히 지지하지만 M&M 콘퍼런스 존재 자체가 과실이 의학의 불가피한 일부분임을 인정하는 증거나 마찬가지다. (88쪽)


의사가 자신들의 과실과 의사들 간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 


어떻게 할 것인지 치료방향에 대한 명백한 과학적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의사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답을 알지 못한다. 실제로 의료결정 검토를 의뢰받은 전문가 위원단은 자궁적출술을 시술한 수술 건수의 4분의 1, 소아에 대한 중이 환기관 유치술의 3분의 1, 심장박동기 삽입술의 3분의 1의 경우, 그 처치가 해당 환자에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했다. 판단의 근거가 될 만한 증거와 알고리즘의 부재 속에서 의사들은 감으로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운다. 의사 개개인의 경험과 판단력에 의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320쪽)

눈부신 발전을 해왔지만 아직도 불완전한 과학에 머물러 있는 의학의 현주소를 보여주면서 저자는 그것을 구현해내는 의사의 인간적 한계를 담담히 고백하고 있다. 의사들의 수기에서 접할 수 없던 씁쓸한 이면들, 좋은 의사가 어떻게 나쁜 의사가 되어가는지, 경험을 통해서만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의사들이 환자 몰래 도둑질처럼 연습을 한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 완화 의료가 왜 인정되어야 하는지, 식탐과 안면홍조증, 의학적으로 규명되지 않는 통증 등의 증상을 환자와 의사가 어떻게 대처해나가는지, 질병으로 인정되자 곧 사라지고 말았다는 호주의 손목증후군처럼 질병이 얼마나 사회적인 것인지, 의학의 다양한 면면을 볼 수 있게 도와준다. 결론은 의학은 보기보다 덜 완벽하며, 동시에 보기보다 더 특별하다는 것.


이제야 이해되는 의사들


책을 읽으면서 생각난 또 다른 의사들. 검사한다고 척수를 뽑기 위해 차례대로 등장했던 인턴, 레지던트, 전공의. 그 2시간여 동안 나는 척추가 드러나도록 다리를 안고 옆으로 누운 채 미동도 없이 기다렸다. 한 인턴은 수액 바늘 꽂은 자리가 항아리처럼 부어올랐는데도 괜찮다며 다른 팔에 계속 맞겠느냐고 물었다. 어떤 레지던트는 내 동맥에 주삿바늘을 한 번만에 꼽았다고 선배에게 칭찬을 받았고, 주치의는 효과가 기대 이상이라며 약 선택이 탁월했다는 걸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그들은 기술을 익혀가는 과정에 있었던 것이고, 다른 환자들에게 쌓은 경험 덕분에 내가 덕을 본 것일 수 있다.


앞으로도 나는 의사를 계속 만날 것이다. 의사가 과학자이면서 인간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의사를 대하는 자세부터 바로 잡아야겠다. 의학은 불완전하며, 의사들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의사나 환자나 둘 다 인간이라는 한계를 지닌 존재이며,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애쓰고 있기에 마지막 선택은 내가 내린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  최선의 선택을 위해서 언제든 맞닥뜨릴 죽음과 상실을 인정하고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의 우선순위를 매겨두는 게 좋겠다. 그게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다양한 의사들을 대하는 나만의 방법이 될 것이다.


다시뉴스 필진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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