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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싸라기 Aug 28. 2022

비를 닮은 눈물 8화

갈등

8화 갈등.


자리에 주저앉아서 소리 없이 흐느끼고 말았다. 



인천으로 이사를 온후 

두 사람은 경제적인 문제로 인하여

사이가 점점 멀어져 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근본적인 문제로는 찬혁의 잦은 이직 때문이다.

찬혁의 입장에서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살아오면서 저녁에 출근하여 아침까지 일을 하는

야간근무를 처음 하다 보니 나이가 50대 초반으로 접어든 찬혁은 체력적으로 무척 고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문제도 크지만 사출공장이라는 특수성과 

아직까지도 존재하는 텃새라든지 근로기준법을

교묘히 피하거나 지키지 않고 있는 곳 또한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현장 설비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먼지나 매캐한 가스 냄새, 실내 온도가 여름이면 40도를 육박하는 살인적인 근무환경은 그렇다 치더라도 휴게시간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12시간을 꼬박 서서 일하며 연월차는 언급도 못하는 실정이며 특근비를 준다는 명분으로 주말이나 공휴일도 출근을 강요하는 곳이 많다 보니 체력도 스트레스도 많은 것이다. 찬혁은 이런 곳에서 수년간 장기근속한 직원들을 보면 오히려 존경스럽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찬혁을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들이 힘든 환경에서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버티는 것이었다.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한 직장을 한 번 두 번...

점점 이직하는 횟수가 늘어나니 가정생활도 불안정해지며 돈 걱정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관심은커녕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늘어나며서 소소한 말싸움이 생겨났다. 찬혁이 술이라도 한잔할 때는 은미의 말투나 서운하게 느낄만한 단어 하나에 큰소리로 다투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인천으로 이사 와서 2년 동안 두 사람은 그래도 나름 행복하게 지냈다. 애교 많고 장난도 잘 받아주는 성격인 은미는 간혹 사소한 것에도 지나치게 진지해지거나 감성적인 찬혁이 불만이었만 싸움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찬혁은 외향적이면서도 내성적인 두 가지 성격의 소유자다. 애교 많고 장난도 잘 치는 은미가 사랑스럽고 좋았지만 진지해야 할 부분이나 섬세한 일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부분이 아쉽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한참 지난 뒤에야 느낀 것이지만 작든지 크든지 연애 초반에 은미가 당부한 문자 내용처럼

"먼저 사과하기, 서운한 것 있으면 말해서 풀기."

라는 내용을 두 사람이 잘 지키고 살았더라면...이라고 후회하진 않았으리라...

어려워진 가정경제는 새로 알게 된 주식과 코인도 한몫을 했다. 이익보다는 손해를 본 적이 더 많지만 나이가 50세를 접어들다 보니 장기투자나 안정적인 계획보다는 "더 나이 먹기 전에.. 빨리 벌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인하여 무리하게 손을 댄 것이 힘들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생활을 이어가던 중 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서였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늘 반주로 술 한 잔을 곁들였던 찬혁이 대화 도중 은미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해서

대화를 하고자 말을 하면서 싸움이 시작됐다.

"자기야..."

"왜...?"

"자기는 요즘 왜 말을 그런 식으로 해? 나한테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거야?"

"내가 뭘...?"

"아니... 같은 말이라도 꼭 그렇게 말해야 하니?"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술 취해 가지고 괜히 시비를 걸고 그래."

적당히 서운함을 말하고 끝내려던 찬혁이 은미의 대꾸에 얼굴이 굳어지며 말한다.

"뭐? 시비를 걸어..?"

"그럼 시비가 아니고 뭐야. 대단한 이유도 아니고 기분 좋게 말하면 될걸 가지고 인상 쓰면서 따지듯이 말하잖아."

"와 진짜 너무하네 당신은 좋은데 놀러 가고 맛있는 거 먹고 장난칠 때만 웃고 내가 뭔가 진지하게 대화하려거나 서운함을 얘기하려 할 때면 꼭 그렇게 정색해야겠니?" 찬혁은 그동안 쌓여있던 서운함까지 끄집어내며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야 만다.

"당신하고는 너무 안 맞아... 내가 평소 노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술값으로 몇백씩 쓰는 것도 아니고 반찬투정이나 뭐 하나라도 내 욕심으로 바라는 게 많은 것도 아닌데... 그저 나한테 부드럽게 대해주고 관심 좀 가져달라는 게 그렇게 무리한 부탁이니? 눈이 있으면 내 옷장과 내 물건들 좀 봐라... 같이 살면서 네가 나한테 선물이나 먼저 신경 써서 챙겨준 게 뭐가 있나... 하~정말 너무한다. 내가 이직을 그만두고 싶어서 관둔 것도 아니고... 부당한 대우나 힘든 환경에서 도저히 못 버텨 서 그런 건데 빈말이라도 기운 내라고 웃으면서 대줄 순 없는 거냐고! 그렇다고 그만두고 몇 달을 놀고먹는 것도 아니고 그래봐야 고작 며칠 정도 눈치 보며 다시 일은 하잖아! 집에 있을 때만이라도 상냥하게 대해줄 순 없는 거니? 넌 네 가족도 있고 선후배도 있지만 난 너 하나 의지하는 거야 아무도 없어! 나보다 벌이가 더 많은 것도 아니면서 왜 내가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냐고..."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던 은미가 상기된 

표정으로 받아친다. 

"당신.... 말 다 했어? 당신이 옮긴 직장이 한두 군데야?벌써 우리 결혼하고 5군데가 넘어 아니... 더 될 텐데.세상에 당신만 힘든 거 아닌 야. 다들 그렇게 살아...가족을 위해 참고 일하는 거라고. 물론 나도 당신 힘든 거 안쓰럽게 생각해... 근데 당장 그만두면 방법이 없으니까 나도 답답해서 그런 거지 일부러 당신 기분 나쁘라고 그러는 건 아니야. 왜 당신만 생각해...그리고 당신이 더 벌면 뭐해 나한테 생활비라고 준거 백만원에서 왔다갔다...여유있게 준것도 아니야.물론 전부 우리가 쓴카드값 이지만 당신이 생색낼 정도는아니라고!!"

찬혁은 자신이 그토록 얘기했으면 어느 정도

져주는 척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격분한 듯 얘기하는 은미를 처음 본다. 찬혁은 아까보다 술기운이 더 올랐지만 손찌검을 하거나 물건을 던지는 나쁜 버릇은 없었기에 더욱 격앙되어 훗날 후회할 

결심을 내뱉고 만다.

"후~~~그래 다 내 잘못이다. 둘이 만나 행복해지려고 결혼한 건데 이렇게 허구한 날 다투고 으르렁댈 거면 차라리 헤어지는 게 좋겠다."

이 말에 은미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이내 뺨 위로 또르르 흐른다.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해..."

찬혁은 자신이 성질은 나있지만 은미의 눈물을 보고는 약간 놀라며 묻는다.

"왜 우는 건데?" 

"예전에..... 당신이 잘해줄 때가 생각나서."

이 말을 하고는 은미의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고 찬혁은 성질난 것도 그렇지만 이 상황이 너무 슬프고 화가 나서 대문을 힘껏 닫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다.

1층으로 내려온 찬혁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길게 아주 길게 연기를 뱉어내고는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본다.

"하........ 도대체 뭐가... 언제부터 문제가 시작인 거지?"

혼잣말을 하곤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는 

주차장 부근을 큰 원을 그리며 제자리를 뱅뱅 돈다.

다른 층 세대에서는 저녁식사를 하며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큰 웃음도 들린다.

그런 소리가 찬혁에게는 달갑지 않게 들리면서 자신과 비교가 되어 더욱 초라해지는 것 같은 생각까지 든다. 담배 두 대를 연달아 피워댔더니 입안이 쓰고 입안은 말라버렸다.

집으로 들어와서 손을 씻고 서둘러 찬물 한 잔을 들이켜고 아내의 방 쪽을 바라본다.

사실 은미는 인천으로 이사 온 후 갱년기가 시작되었고 게다가 뇌하수체에 혹이 생겨서 수술까지 받은 적이 있었으며 찬혁의 코골이 때문에 각방을 쓰다 보니 부부관계 또한 없은지 오래된 상태였다.

이미 방문을 굳게 닫혀있었고 간간이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음이 쓰리다. 아내의 울음소리도 그렇지만 자신의 처지와 이런 분위기가 너무 슬프다.

냉장고에서 집어 든 소주를 큰 잔에 따라서 물 마시듯

들이켠다. 두 번에 걸쳐서 마신 소주 한 병....

찬혁도 눈물이 흐른다.

무언가 결정을 한 듯이 일어나서 아내의 방문을 두드리고 이내 기운 빠진 목소리로 은미를 부른다.

"은미야...."

눈이 퉁퉁 부은 은미가 눈물은 닦으며 문을 연다.

"왜.....?"

"우리 그만 끝내자... 당신도 나도 서로 못할 짓이다."

"..........."

"내가 당장은 뭐 어떻게 해줄 수는 없고 일단 여기 계약이 2년 남았으니 그때까지 돈 문제 서로 계산해서 이혼 합의서를 작성할 테니 요번 주말에 같이 검토하고 계획을 세우자."

"알았어... 맘대로 해. 그런데 당신은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마. 당신이 모두를 버린 거지. 당신은 결국 혼자가 될 것이고 끝내 혼자가 될 거야."

대답을 하고는 은미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찬혁도 씁쓸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다시 1층으로 내려간다.

담배를 다시 한대 피우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주말에 도로 위를 지나가는 차들.

건물마다 늦게까지 켜져 있는 불빛들.

찬혁은 세상에 자신만이 가장 불쌍하고 초라하게 느껴져서 자리에 주저앉아서 소리 없이 흐느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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