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010. 아무튼, 요가: 요가 첫 수업을 듣고
기록하는 습관 010_2020.01.01
“요가는 해 본 적 있으세요?”
“아니요.”
“그럼 다른 운동은?”
“아니요, 없어요.”
대답을 하고 민망해서 웃음이 나왔다. 나는 강산이 세 번 바뀌도록 운동을 꾸준히 해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예전엔 요가에 별 생각이 없었지만 최근에 흥미가 생겼다. 주변에서 요가를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내가 아는 멋있는 사람들은 죄다 요가를 하는 것 같았다. 마침 동생도 요가를 하겠다고 해서 나도 얼떨결에 따라 등록을 하게 되었다.
“그럼 처음에는 좀 힘들 수 있어요. 너무 힘들 때는 무리하지 마시고 조금 쉬었다가 다시 따라 하시면 돼요.”
실장님이 약간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리하지 않는 것은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부턴 될 수 있으면 화장은 하고 오지 마세요. 매트에 묻을 수 있거든요.”
실장님의 마지막 말에 나는 살짝 당황했다. 등록을 하고 바로 운동을 할 생각이라 피부 화장과 입술만 간단하게 칠하고 나왔기 때문에 문제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요가복을 갈아입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는 수강생들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거의 대부분이 맨 얼굴이었다. 여자들의 맨얼굴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다들 자연스럽고 생기 있어 보였다. 나 혼자 부자연스럽게 허연 얼굴과 붉은 입술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도 옷을 갈아입고 뒷줄에 엉거주춤 자리를 잡았다. 요가복은 몸에 딱 달라붙어 군살을 여실히 드러냈다. 나는 괜히 처음 온 사람 티를 내며 주변을 살폈다. 스튜디오 안은 고요했다. 시험지를 받기 전에 느껴지는 긴장감 있는 정적이 느껴졌다. 어쩐지 경건해지기까지 했다. 다들 저마다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나도 눈치를 보며 다리를 쭉 뻗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좀처럼 발에 손이 닿지 않았다.
선생님이 들어왔다. 그냥 걸어 들어와 앉았을 뿐인데 움직임이 가볍고 사뿐했다. 합장을 하고 “나마스테” 인사를 했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지만 나는 생전 처음 내뱉는 인사말이 어색하고 신기했다. 그 뒤로 바로 동작이 이어졌다. 동작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선생님의 자세를 따라 하는 방식이었는데 초보자는 많지 않은지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동작을 다들 잘 따라 했다. 나는 동작을 따라 하기에도 바빴다. 다리 너비는 얼마나 벌려야 하는지 고개는 어딜 향해야 하는지 힘은 어디에다 줘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유지해야 하는 자세가 따라 하기 너무 어려웠다. 처음 간 날에 배운 게 ‘하타 요가’였는데 나중에야 그게 초급자가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 절반 넘는 동작을 버티기는커녕 제대로 한번 하기도 어려웠다. 선생님이 돌아가면서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할 만한 데 했던 동작이 교정을 받고 고통스러운 동작이 되었다.
등 뒤에서 손을 뻗으라고 하는데 도저히 근육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온몸이 기름칠하지 않는 고철 덩어리 같았다. 다리를 양 옆으로 넓게 벌리는데 90도만 겨우 벌리고 거대한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는 사람처럼 앞으로 내려가질 못했다. 대부분이 머리가 매트에 닿는데 나는 작은 절을 하는 수준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민망했다.
혼자서 동 떨어진 채 잘 따라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기죽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계속해나갔다. 나를 기죽이려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자기 자세에만 집중하고 호흡을 유지하려고 신경 썼다. 남 따라 한다고 바쁜 건 나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그 공간이 왠지 뭉클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공간에서 눕고 웅크리고 뻗으면서 호흡을 가다듬는 그 시간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이런 생각이 든 건 사실 맨 마지막에 누워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쉴 때이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그날 바로 도서관에서 요가와 관련된 책을 신청해서 읽어보았다. 내가 하고 있는 운동이 어떤 운동인지 이 묘하게 고통스럽고 개운한 감정을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다음날이 되자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허리 근육과 다리 근육이 뻐근했다. 평소 쓰지 않은 근육을 처음 써서 그런 것 같았다. 운동이라면 질색하던 사람이었지만 이 뻐근한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직 요가를 시작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쩐지 이 운동을 좋아하게 될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4개월을 끊었으니 이제 2020년 봄까지는 꾸준히 해야 한다. 2020년의 첫 목표는 될 수 있는 한 빠지지 않고 수련을 이어나가는 것. 1월 1일 새벽에 쓰는 첫 다짐이다.